제목 | [구약] 하느님 뭐라꼬예?: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의 계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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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21-08-14 | 조회수3,838 | 추천수0 | |
[하느님 뭐라꼬예?]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의 계약
시나이 산에서 하느님을 만나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이집트 땅에서 나온 뒤 셋째 달 바로 그날, 그들은 시나이 광야에 이르렀다. 그들은 르피딤을 떠나 시나이 광야에 이르러 그 광야에 진을 쳤다. 이렇게 이스라엘은 그곳 산 앞에 진을 쳤다.”(탈출 19,1-2) 이스라엘 백성은 이집트를 떠나 약속의 땅인 가나안 지역으로 바로 가지 않고 먼 길을 돌아갔다고 했습니다. 그 길은 시나이 반도 남쪽으로 내려가는 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길은 바로 ‘호렙 산’ 혹은 ‘시나이 산’이라고 불리는 산을 거쳐 가는 길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 시나이 산에 오르기 위해 몇 달 동안이나 광야의 길을 걸어가야만 했습니다. 거룩한 하느님을 만나기 위해 준비와 정화의 시간을 가져야만 했던 것이지요.
“하느님을 만날 수 있도록 모세가 백성을 진영에서 데리고 나오자 그들은 산기슭에 섰다. … 주님께서는 시나이 산 위로, 그 산봉우리로 내려오셨다.”(탈출 19,17-20) 이스라엘 백성은 시나이 산에서 하느님을 만나고 그분과 계약을 맺었는데, 탈출기는 이를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탈출하고 광야를 행진하는 목표처럼 제시하고 있습니다. “네가 이 백성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면, 너희는 이 산 위에서 하느님을 예배할 것이다.”(탈출 3,12)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소명을 주실 때 하신 말씀에서 예고하신 대로, 이집트 종살이에서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은 이제 시나이 산에서 하느님을 섬기고 예배하게 되었으며, 계약의 관계로 하느님과 일치하게 된 것입니다.
약속, 의무, 유언
‘계약’이란 일반적으로 쌍방 간에 일정한 권리와 의무를 서로 주고받기로 약속하는 법적 행위를 말합니다. 하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계약은 이런 통상적인 ‘쌍무계약’(雙務契約)과는 그 의미가 다른 경우가 많습니다. 계약으로 번역되는 히브리어 단어로서 구약성경에서 278번 사용된 ‘브리트’의 경우, 대개 ‘약속’ 또는 ‘의무’라는 뜻이 그 의미의 중심을 이루고 있습니다. 곧 구약성경에서 나타난 계약은 단순히 서로를 법적으로 속박하는 행위를 넘어 ‘하느님의 약속’과 ‘이스라엘 백성의 의무’의 이행을 강조한다는 것입니다.
한편 그리스번역본인 칠십인역 성경은 ‘브리트’를 대부분(287번 중에 260번) ‘디아테케’로 번역하였는데, 이는 고대 그리스어에서 원래 ‘유언’(遺言)을 의미하였던 단어입니다. 고대 라틴어 번역본도 유언을 의미하는 ‘떼스따멘뚬’(testamentum, 영어로 testament)을 사용하였습니다. 유언은 그 유언을 받는 사람에게 의무를 지우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칠십인역과 라틴어 번역본 성경이 이해하는 계약은 ‘하느님으로부터 주어진, 인간이 따르고 지켜야 할 의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과 계약을 맺었다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 앞에 의무를 지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시나이 계약의 성격
구약성경에서 볼 수 있는 ‘하느님과 성조 간의 계약’은 통상적인 의미로서의 계약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하느님과 노아와의 계약’(창세 9,8-17), ‘하느님과 아브라함과의 계약’(창세 15, 17장), ‘하느님과 다윗과의 계약’(2사무 7,5-16) 등은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뚜렷한 요구를 하시지 않으신 채 일방적으로 의무를 지는 약속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 간의 계약’인 시나이 산의 계약은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 모두가 어느 정도의 의무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드러납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만을 섬겨야 하고, 자신들의 하느님이신 야훼께만 절대적인 충성을 바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절대적 충성을 위한 요구사항들을 집약적으로 구체화한 것이 ‘십계명’(十誡命)이지요.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당신이 내리신 이 계명들을 충실히 지키고 당신을 사랑할 때, 그런 그들을 보호해 주시고 축복을 내리시는 분이십니다.
탈출기가 묘사하고 있는 이 계약은 옛 왕국의 문서에서 발견되는 ‘봉신 계약’(封臣契約)의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강한 나라의 왕이 자신보다 약한 나라의 왕과 계약을 맺는 방식이지요. 시나이 계약의 경우, 계약의 제안자도 하느님이시고 계약의 조건들을 제시하는 이도 하느님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나이 계약은 어디까지나 사랑하는 당신 백성에 대한 하느님의 호의이고 자비의 선물이라 할 것입니다.
‘하느님과의 계약’은 거룩한 것이고 그래서 미소한 존재인 나와는 무관한 어떤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과 나 사이에 맺은 약속’이 바로 계약이기 때문이지요. 사람 사이에도 약속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면, 하느님께 드린 약속에 나는 얼마나 충실해야 할까요? ‘세례 때 하느님께 드린 나의 약속’을 생각합시다. 나에게 내려질 심판의 때에 가장 중요한 잣대는 약속에 대한 이행의 정도 일 것입니다!
하느님의 요구사항
“너에게는 나 말고 다른 신이 있어서는 안 된다. 너는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든, 아래로 땅위에 있는 것이든, 땅 아래로 물속에 있는 것이든 그 모습을 본뜬 어떤 신상도 만들어서는 안 된다. 너는 그것들에게 경배하거나, 그것들을 섬기지 못한다. … 주 너의 하느님의 이름을 부당하게 불러서는 안 된다. …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켜라. …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여라. … 살인해서는 안 된다. 간음해서는 안 된다. 도둑질해서는 안 된다. 이웃에게 불리한 거짓 증언을 해서는 안 된다. 이웃의 집을 탐내서는 안 된다. 이웃의 아내나 남종인 여종, 소나 나귀 할 것 없이 이웃의 소유는 무엇이든 탐내서는 안 된다.”(탈출 20,3-17)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과 계약을 맺으시면서 그 백성에 대한 당신의 요구를 명확히 하셨습니다. 그 요구를 모은 것이 ‘열 가지 말씀’ 혹은 ‘십계명’인데, 탈출기 20장과 신명기 5장에서 이 내용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의 요구사항이라고 받아들인 십계명을 원천으로 더 상세하게 구체화되어 생겨난 것이 소위 ‘토라’라고 부르는 계명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스승님, 율법에서 가장 큰 계명은 무엇입니까?” 하는 율법 교사의 물음에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태 22,34-40 참조] 계명들은 우리에게 부담스러운 짐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요구하시는 거룩한 말씀들입니다. 계명들은 한 마디로 사랑을 실천하라는 요청이고, 나를 축복하고 구원하시려는 하느님의 말씀들입니다. 이러한 요구들을 하느님을 사랑하고 사람들을 사랑하라는 초대의 말씀으로 기쁘게 받아들이면 좋겠습니다. 십계명을 비롯한 교회의 법규들에 대해 하느님과 벗들의 사랑에 두근거리며 응답하시는 레지오 단원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계약에 대한 충실의 결과
“이제 너희가 내 말을 듣고 내 계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들 가운데에서 나의 소유가 될 것이다. 온 세상이 나의 것이다. 그리고 너희는 나에게 사제들의 나라가 되고 거룩한 민족이 될 것이다.”(탈출 19,5-6)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당신의 말씀을 듣고 당신의 계약을 지키면 어떤 축복을 받게 될 것인지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소유’가 되고, ‘사제들의 나라’가 되며, ‘거룩한 민족’이 되는 것입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께서 당신이 소유하시는 보물처럼 이스라엘을 특별히 아끼시는 백성이 될 것이고, 사제들의 지도를 따르거나 사제의 직분을 수행하는 민족이 될 것이며, 다른 민족들과 구분되어 온전히 하느님께 속하는 백성이 된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소홀히 하고, 하느님과의 계약을 지키지 않으며, 하느님의 계명들을 짐스럽게 여기면서 하느님의 축복을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하느님과 인간을 사랑하라는 하느님의 요구에 성실하게 응답하지 않는 사람은 결코 하느님의 소유가 될 수가 없고, 하느님이 머무시는 집이 될 수가 없으며, 거룩한 사람이 될 수도 없는 것입니다.
“주님은 자기 이름을 부당하게 부르는 자를 벌하지 않은 채 내버려 두지 않는다.”[탈출 20,7] “그러나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이들에게는 천대에 이르기까지 자애를 베푼다.”[탈출 20,6]고 하셨습니다. 나의 응답을 기다리고 계시는 하느님께 나아갑시다! 나에게 말씀하시는 그분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분의 계명을 기쁘게 지켜나갑시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1년 8월호, 조현권 스테파노 신부(대구대교구 사무처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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