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만나가 멎은 이유/ 어미 소 두 마리로 길을 가게 한 이유 | 카테고리 | 성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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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정임 | 작성일2015-03-08 | 조회수1,627 | 추천수1 | 신고 |
+ 샬롬(그리스도의 평화)
만나가 더 이상 내리지 않은 이유 ...
만나가 멎음으로써(탈출 16 참조) 광야 생활이 끝나고 가나안 땅 정착의 시대가 시작되었음을 뜻한다. 파스카 축제의 언급과 가나안 땅의 소출을 먹는다는 것이 이러한 변화를 강조한다.(주석성경)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생활할 때 먹을 것이 없다고 울부짖자 하느님께서 만나를 내려 주신 것은 탈출기에서 읽으셔서 이미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어미 소 두 마리로 길을 가르는 이유 ...
소들은 새끼들에게 가고 싶었지만 계약 궤에 좌정하신 주님께서 이끄시는 대로 앞을 보며 나아갈 수 밖에 없었다.(주석성경)
주석 성경의 내용을 토대로 성경 본문을 정독해 보시면 도움이 되실 것입니다. 필리스티아인들은 이스라엘 백성에게서 하느님의 궤를 빼앗았습니다. 그러자 필리스티아인들의 진영에 벌이 내려졌습니다. 그렇게 벌이 내려지자 필리스티아인들을 계약의 궤를 제자리로 돌려 보내기로 결정합니다.
그런데 새끼가 딸린 어미 소 두 마리로 수레를 끌게 합니다. 저의 개인적인 생각은 이렇습니다. 멍에를 메어 본 적이 없는 어미 소 두 마리라는 것은 새끼를 첫 출산한 소라는 의미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첫 새끼인데 얼마나 새끼에게 온 마음이 다 들어가 있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두 마리라는 의미 안에는 일치가 중요한 것입니다. 사람도 아니고 소가 그것도 첫 새끼를 낳은 두 어미 소가 한 마음으로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지 않겠는지요?
한 어미 소가 자신의 새끼한테로 가려고 할 수도 있지 않겠는지요? 그런데 두 어미 소가 하느님의 계약 궤를 싣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고 있는 지역이 아닌 다른 옆길로 가지고 않고 곧바로 이스 라엘 백성이 살고 있는 곳으로 곧 벳 세메스쪽으로 난 길을 곧장 걸어갔다는 것입니다.
소들은 울음소리를 내면서 한 길만을 따라갔다는 표현 안에는 자신들의 새끼를 향한 마음이 얼마나 간절했음에도 그 간절한 마음에 따라 움직이지 않고 하느님의 뜻을 따라 움직였다는 의미가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도움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주님의 은총이 함께 하시길 빕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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