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구약] 성경 73 성경 통독 길잡이: 열왕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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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21-10-06 | 조회수3,696 | 추천수1 | |
[성경 73 성경 통독 길잡이] 열왕기
열왕기는 이스라엘 역사의 가장 긴 부분을 다루고 있습니다. 열왕기는 사무엘기에 이어 다윗 임금의 통치 말년부터 시작해서 통일 왕국의 남북 분열과 남 유다 임금인 여호야킨이 바빌론으로 끌려왔다가 37년 만에 바빌론 임금의 특전을 받고 풀려나는 사건으로 마치게 됩니다. 연대기로 따져보면 BC 970년경부터 BC 561년까지의 일입니다. 현재 성경에는 BC 3세기경 70인역을 작성한 그리스말 번역자들이 열왕기를 2권으로 나눈 것을 따라 상‧하로 구분하고 있지만, 최초 히브리말 성경에서는 한 권의 작품이었습니다.
열왕기의 구조는 크게 네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열왕기 상권 1-11장으로 솔로몬의 통치와 관련된 내용입니다. 1장 1절-2장 11절까지 간략하게 다윗 임금의 말년에 대해서 언급한 뒤 본격적으로 솔로몬 임금을 전면에 내세웁니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사실은 열왕기 저자가 솔로몬을 무조건 긍정적으로 평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예루살렘에 하느님의 거처를 마련합니다. 예루살렘 성전을 짓고 이를 하느님께 봉헌했던 것은 솔로몬 임금의 업적 가운데 가장 뛰어난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열왕기 상권 9장을 보면 하느님께서는 솔로몬의 성전 봉헌을 칭찬하시며 그를 축복해주십니다. 하지만 9장 6절 이하를 보면 하느님께서는 솔로몬에게 계명을 충실하게 지키고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말씀을 전하시면서 동시에 그러지 않을 경우 솔로몬이 봉헌한 예루살렘 성전을 내버리시고 폐허가 되게 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3장을 보면 솔로몬은 파라오의 딸과 혼인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왕족 출신 아내가 칠백 명, 후궁을 삼백 명이나 두면서 수많은 이방 여자들을 아내로 맞아들여 그들이 자신들의 고향에서 믿었던 신을 위해 산당을 짓고 제사를 봉헌할 수 있도록 허락하는 잘못을 저지름으로써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게 됩니다. 그 결과 11장에서 하느님께서는 솔로몬의 적대자를 일으키셨으며, 결국 솔로몬은 40년을 통치한 뒤 죽게 됩니다.
12-22장에서는 통일 왕국이었던 이스라엘이 남과 북으로 갈라지게 되는 과정과 예언자들의 등장을 알리고 있습니다. 솔로몬 임금이 죽은 뒤 르하브암이 뒤를 잇자 예로보암은 르하브암에게 솔로몬 임금 때부터 계속되던 과도한 부역과 조세를 줄여달라고 청합니다. 하지만 르하브암은 예로보암의 청을 거절하였고 결국 예로보암은 유다와 벤야민 지파를 제외한 북쪽의 10개의 지파를 모아 반란을 일으키게 됩니다. 이로써 통일왕국이었던 이스라엘은 북 이스라엘 왕국과 남 유다 왕국으로 갈라지게 됩니다. 북 이스라엘 왕국의 임금이 된 예로보암은 사람들이 남 유다에 위치한 예루살렘 성전에 경배하러 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 단과 베텔에 금송아지 상을 만들고 순례 축제 때 여기서 제사를 지내도록 지시하였습니다. 또한 레위의 자손들이 아닌 일반 백성 가운데에서 사제들을 임명하였습니다. 이후 북 이스라엘의 임금들은 계속해서 예루살렘 성전 제사 대신 바알 신상, 아세라 목상을 세우고 이를 위한 제단을 설립하는 등의 우상 숭배를 이어가게 됩니다. 이러한 가운데 17장부터 본격적으로 예언자가 등장합니다. 엘리야는 우상 숭배에 물든 북 이스라엘을 두고 가뭄을 선포합니다. 그리고 3년 뒤 아합 임금을 찾아가 이스라엘에 가뭄이 든 것은 하느님을 저버리고 우상 숭배를 한 잘못 때문임을 알리고 카르멜 산에서 바알 예언자들과 대결을 펼치면서 주님만이 참 하느님이심을 드러냅니다. 그리고 아합 임금이 임금의 권한을 남용해서 조상들로부터 상속재산으로 받은 나봇의 포도밭을 취하려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나봇이 이를 거절하자 아합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라는 권력을 바탕으로 나봇을 죽인 뒤 포도밭을 차지합니다. 엘리야는 그런 아합에게 하느님의 이름으로 정의에 입각한 심판을 선언함으로써 임금이라 할지라도 하느님 위에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분명하게 드러냅니다.
열왕기 하권 1-17장은 북 이스라엘 왕국의 멸망 과정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북 이스라엘은 200년 사이에 왕조가 9차례나 바뀌면서 계속적인 혼란기를 겪게 되고, 결국 BC 722년 아시리아 제국에 의해서 멸망 당하게 됩니다. 또한 열왕기 하권은 엘리사와 관련한 일화를 상당 부분 소개하고 있습니다. 엘리사와 관련된 일화들 가운데 과부의 기름병과 수넴 여인 이야기는 사렙타의 과부와 관련된 엘리야의 이야기와 흡사합니다. 이 밖에도 예리코의 우물을 되살려 사람들이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등 사람들의 직접적인 삶의 문제에서부터 시작해서 예후의 혁명을 촉발시키는 제자의 파견 이야기 등 정치 군사적인 문제에까지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모습도 등장합니다. 이러한 엘리사의 모습은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의 삶에 관계하시고, 그들의 모든 부분에 있어서 하느님의 주권이 자리하고 있음을 알려줍니다. 또한 엘리사의 이야기 가운데 주목할 만한 점은 엘리사가 고독한 예언자의 모습으로 홀로 활동했던 엘리야와 달리 예언자들의 무리와 함께 활동했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이제 앞으로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 안에 계속해서 예언자들이 등장하고, 그들이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할 것임을 예표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열왕기 하권 18-25장은 남 유다 왕국의 멸망 과정을 전하고 있습니다. 북 이스라엘 왕국과 달리 남 유다 왕국은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해서 단일 왕조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히즈키야와 요시아 임금을 제외한 나머지 임금들은 하느님 보시기에 옳지 않았으며, 특히 므나쎄 임금은 55년 동안 나라는 다스리는 동안 히즈키야가 헐어 버린 산당들을 다시 짓고 바알 제단을 세웠으며, 북 이스라엘 임금 아합이 하던 것처럼 아세라 목상을 만들고 이를 섬겼습니다. 이후 요시아 임금이 종교 개혁을 거행하면서 이를 뿌리 뽑으려고 하였지만, 아시리아라는 강대국의 정치적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못했기 때문에 이방 신들을 섬기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남 유다 왕국도 바빌론에 의해서 예루살렘이 함락되고 성전이 파괴된 뒤 멸망하게 됩니다.
열왕기의 저자는 신명기의 가르침에 비추어 이스라엘의 왕정 시대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즉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해서 한 분이신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 올바른 임금의 자세임을 선포한 뒤, 이를 기준으로 이스라엘의 임금들을 평가하고 있습니다. 특히 열왕기가 바빌론 유배를 겪는 동안 작성되었던 것임을 감안한다면, 열왕기 저자는 다윗과 솔로몬을 거치면서 자신들이 최전성기를 보내고 있다고 생각하던 시기가 오히려 외적 성장에 취해 하느님을 잊어버린 시기였으며, 하느님께 의탁하지 않은 채 세상의 방법으로 살아가려고 했던 것이 자신들이 저지른 가장 큰 잘못임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서두에서 언급한 솔로몬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 입장을 내비치는 것도 바로 이와 같은 이유에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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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공동체와 영적 성장을 위한 길잡이, 2021년 10월호, 노현기 신부(사목국 기획연구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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