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Q :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 맞는 말인가?
==▶ 김종업님께서 궁금해 하시는 내용이 신학자료실에 있어서 올려 봅니다.
참고로, 루카16,13: 마태6,24 에서 나오는 재물은 ( μαμωνα / mammonae / mammon)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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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삶을 위한 경제 4
- 하느님과 맘몬 사이의 결단으로서 경제 -
하느님 나라 - 하느님의 다스림
인간과 세상의 구원을 위해 하느님으로부터 파견되신 예수님의 사명은 하느님 나라의 선포였습니다. 하느님 나라의 도래에 관한 예수님의 메시지는 평화와 자유, 정의와 생명에 대한 인류의 갈망과 추구라는 지평에서 이해되어야 합니다. 하느님 나라는, 역사 안에서 인류가 끊임없이 추구하였던 이상임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이기적 탐욕과 욕망으로 인해 인간적 노력만으로는 도달할 수 없었기에, 하느님께서 다스림으로써 하느님만이 줄 수 있는 것, 결국 하느님 자신을 뜻합니다. 하느님의 다스림은 창조 질서를 파괴하는 악의 권세로부터의 해방, 갈기갈기 찢겨진 인간과 인간, 인간과 세상 만물 상호 관계의 화해를 의미합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하느님의 다스림과 통치가 인간 역사 안에서 인정되고 관철된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는 인간의 노력으로 획득되어질 수 없고 오직 하느님의 선물로서만 가능하며, 인간은 하느님이 자신의 참된 주인이라는 고백과 자신을 전적으로 하느님께 의탁하는 결단을 통해서 하느님 나라를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한편 ‘하느님 나라’는 예수님의 사명이었을 뿐만 아니라(마태 4,23; 루카 8,1 참조), 예수님께서 파견하신 제자들, 예수님께서 전한 복음을 결연히 받아들인 제자들의 사명이기도 하였습니다(마태 10,7; 루카 10,9 참조). 또한 예수님께서는 청중들에게 삶에 필요한 재화를 추구하기 전에 먼저 하느님 나라를 구하도록(마태 6,25-34 참조) 촉구하였습니다. 이처럼 인간은 예수님의 파견으로 시작된 하느님 나라에 살도록 초대받았으며 신앙의 결단을 통해서 초대에 응답해야 합니다.
맘몬(재물)
맘몬(맘모나 : μαμωνα)은 명사형으로 사용될 때는 ‘돈’, ‘부’, ‘세속적 재물’, ‘뇌물’, 동사형으로 사용될 때는 ‘돈을 벌다’, ‘부정 축재하다’, ‘타인의 소유를 착취하다’라는 의미를 가지는데,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맘몬은 ‘재산’, ‘세속적 물질’을 뜻하는 것으로 ‘하느님을 거부하는 물질 만능주의’를 포괄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맘몬은 ‘돈, 재물’ 그 이상으로서 하느님(과 하느님의 다스림)과 적대적인 위치에 있는 경제적, 법적, 정치적, 사회적, 종교적 요소들의 총 집합을 말하는 것으로, 불의와 폭력을 생산하는 파괴적 체제를 의미하는 ‘우상’으로서 인간에게 주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이처럼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 맘몬(재물)은 그 자체로서는 선도 악도 아닙니다. 오히려 인간의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는 기본적인 조건으로서 맘몬은 인간에게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맘몬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며, 이러한 한에서 의미를 가질 수 있습니다. 약은(불의한) 청지기(루카 16,1-8 참조)의 비유와 더불어 “재물을 많이 가진 자들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는 참으로 어렵다!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더 쉽다.”(루카 18,24-25)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은 맘몬 역시 하느님의 것이고 하느님으로부터 맡겨진 인간 생활의 수단이라는 것, 그러나 인간은 오히려 맘몬의 노예가 되어 하느님 나라에서 멀어질 위험에 처해 있다는 사실을 함축적으로 담고 있습니다.
따라서 맘몬을 정당하게 사용하는 것이 인간의 의무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이 의무를 망각하고 맘몬을 축재의 도구로 삼을 때, 맘몬은 평등성을 기초로 한 인간 상호 관계를 파괴할 뿐만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 하느님과 인간을 단절시키고, 인간을 지배하는 주인의 자리를 차지하게 됩니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경제적 권력은 무한정하고 무제약적인 권력만을 추구하는 절대적인 실체가 되어 버렸는데, 이는 성경에서 말하는 부정적인 의미의 맘몬 개념과 연결될 수 있습니다.
맘몬이 아니라 하느님을 선택하는 경제
인간은 하느님과 맘몬 사이에서 결단을 해야 합니다.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한쪽은 미워하고 다른 쪽은 사랑하며, 한쪽은 떠받들고 다른 쪽은 업신여기게 된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마태 6,24)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은 경제를 살아가는 인간에게 있어서 피할 수 없는 선택의 문제를 제기합니다. 예수님은 맘몬 자체를 부정하거나 폐기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재물 자체가 축적의 대상이 되어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지지 않는 현실을 직시하면서, 집중된 재물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공정하게 분배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지적하였습니다(마태 19,21; 루카 12,33; 16,9; 19,8 참조). 이러한 관점에서 하느님과 맘몬 사이에서의 선택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리스도교 경제 윤리는 “억눌린 자들의 권익을 보호하시며, 굶주린 자들에게 먹을 것을 주시는”(시편 146,7) 하느님 중심주의에 입각하여 인간이 만든 경제 체제를 절대화하지 않음으로써 하느님께 전적으로 의탁하는 신앙 고백으로서 경제를 바라보게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창조하셨고 완성으로 이끌어 가시기 위해 역사하십니다. 인간의 삶 역시 하느님 현존의 역사 안에서 이해될 때, 인간은 자신의 유한성과 물질세계의 무상성을 극복하고 삶의 의미와 희망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삶의 의미는 재물의 소유 여하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삶 안에서 하느님과 함께 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2015년 5월 10일 부활 제6주일 의정부주보 6-7면,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송산 주임)]
*출처: 굿뉴스 신학자료실 윤리신학/사회윤리 글번호 1240번, 제목: [사회] 인간의 삶을 위한 경제 중에서 4번글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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