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 음 : 루카 9,51-62
[묵상길잡이] 예수님은 당신을 따르려는 제자들에게 아버지의 장례까지도 포기할 수 있는 결단을 요구하시며, "쟁기를 잡고 뒤를 자꾸 돌아다보는 사람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자격이 없다."고 하신다. 제자됨의 길은 갈림 없는 마음으로 주님을 따름에 있다.
1. 철저히 버려야 완전히 얻을 수 있다.
"버림으로 얻고, 미워함으로 사랑할 수 있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인간을 노예화시키는 극복하기 힘든 대표적인 욕심이 물욕, 성욕, 권세욕이라고 한다. 물욕에서 해방된 사람만이 돈에 대해 자유로울 수 있다. 그런 사람은 사심이 없기에 많은 돈을 관리하고, 제대로 쓸 수 있는 사람이다.
마찬가지로 성적(性的)인 욕구를 철저히 끊고 뛰어넘은 사람만이 모든 이성(異性)을 참으로 자유롭게 대할 수 있고, 소유가 아닌 사랑을 할 수 있는 사람이다. 모든 권위와 권력이 지배가 아니라, 봉사를 위한 것임을 깨달은 사람만이 참으로 높은 지위를 차지할 자격이 있는 사람이다.
어떤 물건이나 사람에 대해 그것을 '내 것'으로 소유하려는 욕심이 있는 한, 결코 그것을 얻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누구나 상대방이 나를 소유하려는 것을 느끼게 되면 그 사람으로부터 도망치고 싶기 때문이다. 나의 것으로 소유하려는 욕심이 없을 때 참으로 사심 없이 대하고 위할 수 있다. 그럴 때 모든 사람은 가까이 다가오기 마련이다.
2. 깨달음을 얻는 첫걸음은 끊어버림이다.
불교에서 특별한 전통과 맥을 이어온 종파는 선종(禪宗)이라 할 수 있다. 불교가 중국에 전파되기 전부터 중국에는 이미 불교의 교리를 꽃피울 충분한 정신적 토양을 갖추고 있었다. 선(禪)불교가 중국에 소개되기 이전에 장자(莊子)는 이미 기원전 4세기에 '본질을 꿰뚫어 봄(본질직관:本質直觀)'에 대하여 깊은 가르침을 주고 있다. '본질을 꿰뚫어 봄'이란 바로 '깨
달음' 즉 '득도(得道)'를 말하는 것인데, 이 깨달음에 이르는 길을 말하면서, 심재(心齋), 좌망(坐忘), 조철(朝徹)을 이야기하고 있다.
심재(心齋)란 마음의 재(齋)를 말함인데, 마음이 제 멋대로 오락가락하도록 방치하지 말고 마음을 한 곳으로 모으는 것을 뜻한다. 즉 심지(心志)를 하나로 통일시키는 것이다. 세상만사에 대한 관심을 거두고, 깨달음을 얻는데 온 마음을 집중시키는 것이다.
좌망(坐忘)이란, '모든 것에서 마음을 거두어 잊어버림'을 말한다. 이는 '모든 것에 대한 애착을 끊어버림'이다. 심지어 살겠다는 욕심이나, 무엇이 되겠다는 생각마저 끊어버리는 '완전한 자기 비움'을 말하는 것이다.
조철(朝徹)이란, 이는 문자그대로 '아침의 맑음'을 말함인데, 새벽 여명(黎明)이 밝아 올 때 어둠이 걷히면서 온 천지가 제 모습을 드러내듯이 '모든 애착에서 벗어나고, 자신을 완전히 비움으로, 어떤 것에도 매임이 없는 고요와 평화와 맑음'을 말함이다.
이런 세 가지 과정을 거쳐야 본질직관(本質直觀)즉 깨달음에 이른다는 것이다. 깨달음을 얻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모든 '애착을 끊어버림'이다. 장자(莊子)의 가르침은 이미 선(禪)불교가 말하는 선(禪)을 통한 깨달음의 경지를 설명해 주고 있다고 하겠다.
3. 쟁기를 잡고 뒤를 자꾸 돌아보면 하늘나라를 차지할 수 없다.
'하늘나라를 얻음'은 바로 '하느님을 뵈옴'이 아닌가? 예수님은 당신을 따르고 하늘나라를 얻기 위한 추종의 자세를 역설하신다. 하느님은 아브라함을 비롯해 모세와 많은 예언자들과 성모 마리아와 사도들을 부르셨다. 아브라함은 "고향과 친척과 아비의 집을 떠나야 했다."(창세기 12,1), 모세와 모든 예언자들도 온전히 하느님의 뜻에 자신을 내맡겨야 했다. 성모마리아도 일생동안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당신의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가1,38)하는 자세로 자신을 온전히 봉헌하며 사셨다.
하느님은 양다리 걸치는 것을 용납치 않으시고, '갈림 없는 마음'을 요구하신다. 하느님은 "너희는 다른 신(神)을 예배해서는 안 된다. 나의 이름은 질투하는 야훼 곧 질투하는 신(神)이다."(출애 34,14)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손이나 발이 죄를 짓게 하거든 그것을 찍어 던져버려라."(마태18,8) 하셨다.
세례를 받아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은 하느님을 모르고 살던 때의 세속적인 모든 것을 버림으로 세상에 대하여 죽고 그리스도 안에 새로 태어나는 것을 뜻한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아버지의 장례마저도 포기 할 수 있는 즉각적이고 절대적인 추종을 요구하신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영성생활의 첫 단계는 '정화의 시기'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모든 세상적인 것에 대한 애착을 끊어버림이다. 나를 비울 때 하느님은 당신으로 나를 채워주신다.
마산교구 유영봉 몬시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