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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Re:막달라 마리아.. 카테고리 |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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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정임 쪽지 캡슐 작성일2015-07-22 조회수1,700 추천수1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가톨릭 문화산책] <40> 문학 (8) 김남조 시인의 연작 '막달라 마리아'
 
지금 우리 앞에 예수님 재림을 희망하며 노래

 

마리아 막달레나는 신약성경에 12회나 등장하는 중요한 인물이다. 하지만 이 여인에 대한 후세의 평가는 상반된다. 부활한 예수를 처음 목격한 사람으로 성경에 기록돼 있고, 예수의 또 다른 제자였다는 평가가 있는 반면 창녀였다는 악평도 있다. 교황 성 그레고리오 1세는 591년, 루카복음에 나오는 '죄인 여자'를 근거로 마리아 막달레나가 창녀였다고 강론했다. 이후 1400년 가까이 마리아 막달레나는 창녀로 낙인이 찍혔다. 1988년에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그를 '사도들의 사도'로 격상했다. 마르코ㆍ루카ㆍ요한복음에 나오는 마리아 막달레나에 관한 묘사를 종합해본다.
 
등불 아래 참회하는 막달레나, 조르주 드 라 투르, 1640~45년경, 캔버스에 유채, 128×94㎝, 루브르 박물관, 프랑스 파리.
 

성경에 묘사된 마리아 막달레나

마리아 막달레나는 일곱 귀신에 들린 여인이었다. 정신을 잃고 헛소리를 해대며 입에 거품을 물고 쓰러지거나 자신의 몸을 스스로 해하는 거친 행동도 했다. 한 귀신도 아니고 무려 일곱 귀신에 사로잡혀 광기어린 행동을 했던 것이다. 이렇듯 막달라 마리아는 몸과 마음이 망가진 채 살고 있었다. 이 여인을 감싸주고 바른 길로 인도한 이가 예수였다. 마리아는 이후 예수를 따라다니며 옆에서 수발했다.

마리아와 예수의 만남은 예수가 행한 기적 덕에 이뤄졌다. 죽은 지 나흘이 돼 악취를 풍기던 마리아의 오빠 라자로를 예수가 살려내자 바리사이파 사람들까지 예수를 믿게 됐다. 바리사이파 시몬이 그 일을 축하하며 연회를 베풀었다. 마리아는 인도산 값비싼 향유인 감송유(甘松油)를 가지고 나와 감사의 표시로 예수의 머리에 조금 뿌렸다. 마리아의 돌발적인 행동을 제지하지 않고 예수는 미소 지었다. 그 자리에 있던 수많은 사람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라보는 가운데 마리아는 몸을 굽혀 의자에 앉아 있는 예수의 발에 향유를 바르기 시작했고 향기는 집안 가득 퍼졌다. 순간 유다가 일어나 소리를 버럭 질렀다.

"저런 아까운 일이 있나! 저 향유를 팔면 삼백 데나리온은 받을 수 있을 텐데!" 계산이 빠른 유다로서야 당연히 분노할 일이었다. "왜 이 비싼 향유를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지 않습니까?" 단단히 화가 난 목소리였다.

"이 여인이 하는 대로 그냥 두어라." 예수는 유다를 달래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 "내 장례 준비를 위해 그것을 장만해 두었다고 생각하여라. 가난한 사람들은 항상 그대들과 함께 있을 것이나 내가 그대들과 언제까지나 함께 있을 수는 없지 않느냐. 내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이 여인이 행한 것을 전하여 기억토록 하라."

예수는 이 말로써 마리아의 행동이 염문으로 와전될 것을 막았고, 그와 함께 마리아를 남에게 고마움을 표시할 줄 아는 여인으로 격상시켰다.
 

김남조 시인이 생각한 막달라 마리아
 
마리아는 두 가지 큰 역할을 한다. 예수의 십자가 임종과 땅으로의 하강, 묘소에 안치되기까지 최후를 지켜본 증인 역할과 부활 후 예수 발현을 최초로 목격한 이의 역할이다. 하지만 마리아가 예수의 발에 향유를 발라준 일 때문에 두 사람의 관계를 일반적인 남녀관계로 간주한 작품이 많이 나오고 있다. 영지주의(靈智主義) 외경 중엔 두 사람 연인관계로 그린 것이 있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이나 록 오페라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가 이를 따르고 있다.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에선 두 사람이 부부였다고 나온다.
 
시인 김남조(마리아 막달레나, 86)는 「나아드의 향유」라는 시집에서 처음 '막달라 마리아 1'이라는 제목으로 연작시의 첫 번째 시를 쓴 이래 7번까지 쓴다. 첫 번째 연작시가 1955년에 나온 뒤 두 번째 시가 제 9시집 「동행」에, 세 번째 시가 제 12시집 「바람세례」에, 4~7번째 시가 제 14시집 「희망학습」에 실려 있으므로 연작시 7편을 쓰는 데 걸린 시간이 장장 43년이다. 시인은 이 긴 세월 마리아 막달레나란 인물에 대해 생각했다. 왜일까?

당신이 임종하시올 때/ 더욱 당신께의 귀의를 기원하였습니다/ 주여/ 더운 눈물이 돌 속으로 스며들고/ 음산한 바람이 밤새워 부는 무덤에까지/ 일체의 비교를 넘으신/ 당신의 죽으심을 섬기려 왔사옵니다/ 주여// ―'막달라 마리아 1' 제 1연
 
마리아 막달레나가 예수에게 말을 건네는 듯한, 또는 기도하는 듯한 형식으로 전개되는 이 시의 내용은 예수에 대한 전폭적인 믿음이다. 이 시가 수록된 시집이 「나아드의 향유」인 만큼 마리아 막달레나와 예수와의 관계가 시인에게는 중대한 의미를 지닌다. 시집 제목과 같은 시 '나아드의 향유' 위에 정리한 성경 내용을 시로 쓴 것이다. 십자가 처형 이후 마리아의 입을 빌려 "우주만치 남던 자비"를 지닌 예수에 대한 시인의 찬미가이기도 하다.

신을 사랑한/ 사람 세상의 여자 마음아 여자 마음아/ 천만 줄기의 냇물의 지하수의/ 그 더 깊은 데에까지/ 끓는 단맛의 피로 흘러 흘러서/ 진홍의 폭죽/ 천하 삼월의 꽃나무로/ 처연히 솟아난다 ―'막달라 마리아 2' 끝 연
 
예수를 사랑한 마리아 막달레나의 마음을 시인은 진홍의 폭죽을 터뜨리는 삼월의 꽃나무에 비유했다. 생전엔 차마 말할 수 없어 가슴앓이를 하던 막달라 마리아가 죽어서 꽃나무로 피어난다니 보통의 순애보가 아니다. 나머지 연작시도 예수에 대한 마리아 막달레나의 갈망이 주요 모티브가 된다. "언제 어디서나/ 주를 따라 맨발로 달려가는/ 머릿단 길고 검은/ 유태 여자"(막달라 마리아 3)의 참사랑이야말로 그 무엇보다 고귀한 것이라고 시인은 믿고 있다.
 
천지간 오직 변치 않는 건/ 죽음과 참사랑뿐/ 하여 당신에게선/ 어느 새벽 어느 밤에도/ 손발에 못박는 아픔/ 그치지 아니합니다 ―'막달라 마리아 4' 끝 부분
 
마리아 막달레나는 예수의 죽음을 지켜보고 예수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여긴다. 시인은 마리아 막달레나가 예수를 연모했다는 이유에만 흥미를 느껴 여러 차례 시화했던 것이 아니다. 예수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이를 독자에게 들려주기 위해 마리아 막달레나의 입을 빌렸던 것이다.
 
부활의 아침/ 날빛보다 밝으신 어른이/ 친히 이름 부르시며 당신 앞에 보이셨기에/ 비통은 환희로 보답되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 5' 부분
 
사랑한 이와의 이별 중에서/ 신으로 승천하신 분과의 이별은/ 당신뿐입니다 ―'막달라 마리아 6' 부분
 
시인이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자신의 감정을 이입, 예수에 대한 경배의 뜻을 담아서 이런 시를 썼을 수도 있다. 시인 자신이 예수에 대한 무한한 존경과 사랑을 표시하고자 성경 속의 인물인 마리아 막달레나를 끌어왔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예수를 존경하고 따른 마리아 막달레나가 돼 두 편의 시에서 예수의 부활과 승천의 의미를 곰곰이 생각해본 시인은 연작시 7번에 가서는 그 옛날에 약속한, 재림을 할 것인지 예수에게 물어보기로 한다. 그것도 한국인으로 할 것인가를.
 
당신은 환생을 하시는지요/ 한 번은 한국인으로/ 이 땅에서 태어나실는지요 (…)// 아아 모처럼/ 형장에도 햇빛 부시듯/ 통한 중에 감격하는/ 이 한국의 봄날에/ 당신은 오실는지요 와서 그렇게/ 살아주실는지요 ―'막달라 마리아 7' 1연, 끝 연
 
화자는 어느 봄날 "통한 중에 감격하는"데, 이 좋은 봄날에 이 땅에 와서 나랑 살아줄 수 없겠느냐고 묻는 질문 속에는 시인 자신이 마리아 막달레나가 되고 싶어하는 마음이 깃들어 있다. 이 마음은 결코 세속적인 것이 아니다. 시인에게는 "당신의 장기이신/ 파도 같은 통곡과 참회/ 그리고 사랑을/ 울창한 숲으로 땅 끝까지/ 자라게 해주실" 분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이는 예수의 고통에 동참하고 예수의 사랑을 몸소 실천하려는 시인 의지의 산물이기도 하다. 시인은 마리아 막달레나가 예수를 아무 사심 없이 사랑했다고 생각해 예수를 모성으로 감싸안으려고 한다. 이윽고 만민의 구세주인 예수가 부활하여 우리 마음속에서 살아난다.
 
이 새벽 막달라의 여자 마리아는/ 맨발로 숲길을 달려가고/ 흘리신 보혈에선/ 빛의 폭포수 솟아나나이다/ 섭리하신 모든 것 성숙되었으니/ 주께서 무덤을 나서실 일만 (…)// 영혼의 밑바닥을 울음으로 흔드시는/ 그분 정녕 이상하여라/ 그 이상한 하느님 지금 살아나시네/ 부활의 주 그리스도/ 그리스도, 그리스도, 아멘.―'이제 잠을 깨시는 주여' 부분
 
앞에서는 재림을 간절히 소망했을 따름인데 제 13시집 「평안을 위하여」에 와서는 "그 이상한 하느님 지금 살아나시네" 하면서 부활했다고 말하기에 이른다. 2000년 전 그때의 부활이 아니다. 수많은 인간의 울음소리와 비명소리가 하늘나라를 울려, 예수가 마침내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낸 뒤 인류를 구원해줄 것이라는 믿음을 표명하고 있다. 구세주로서 예수가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내주기를 소망할 정도로 시인의 현실 인식은 비관적이다. 끊임없는 전쟁, 에이즈 등의 질병, 온갖 사회 범죄, 크고 작은 테러…. 시인의 슬픔은 이런 수많은 비극에 연유한다. 마리아 막달레나의 분신이 되고자 원했던 것은 현세의 슬픔에서 벗어나려는 눈물겨운 노력의 소산이었으리라.

[평화신문, 2013년 11월 17일, 
이승하 교수(프란치스코,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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