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Re:예수님이 저희들을 위해 돌아가셨다는 ... | 카테고리 | 성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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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정임 | 작성일2015-08-08 | 조회수1,217 | 추천수3 | 신고 |
(십자성호를 그으며)
십자가의 원리 ; 나 때문에, 나를 위하여
교회는 예수님께서 왜 내 죄 때문에 돌아가셨다고 가르치고 있을까?
제가 세례받고 가장 처음으로 궁금했고 이해가 되지 않았던 궁금증이 바로 이 부분이었습니다. 예수님은 2천년 전에 이스라엘에 사셨고 이스라엘 사람들에 의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고 나는 지금 여기에 살고 있는데 어떻게 예수님께서 내 죄 때문에, 나를 위해서 돌아가셨다고 할까? 참으로 이해가 되지 않았고 궁금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성경에 답이 있을 것 같아서 성서 40주간에 초대되어 공부하게 되었고 그 답을 알고자 무던히 성경에 대한 공부를 했습니다. 그러나 혼자서 하는 공부로는 알 것도 같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완전한 이해가 되지도 않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에 대해서 강의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 강의를 일부 정리해서 나눔을 하겠습니다.
왜 예수님의 십자가상 죽으심을 내 죄 때문이라고 하나? 예수님의 죽음이라고 하는 것이 그냥 역사적인 사건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러면 그 죽음은 지금의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은 참사랑의 길이기에 영성적인 사건으로 봐야 하는 것입니다. 영적인 사건 안에서 지금도 우리들에게 강생하고 계시다. 지금도 예수님께서는 참사랑이 무엇인지 지금도 알려주시고 계시다.
베드로 사도께서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한 사건은 그냥 역사적인 사건만이 아니라 우리들 안에서도 수없이 똑같은 모습으로 예수님을 모른다고 배반하는 사건인 것이다. 내가 참사랑을 외면한 순간이 바로 내가 베르도의 모습으로 사는 사건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는 성경의 인물들이 살아 낸 삶의 모습들을 우리도 같은 모습으로 살아내고 있습니다. 성서 안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나와 무관한가요? 성서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다 나를 반영해 줍니다. 예수님을 내가 빌라도의 모습으로, 가야파의 모습으로 그렇게 못 박을 때 예수님께서는 나를 위해 기도하십니다.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루카 23,34)
지금도 예수님은 돌아가시고 계시는구나. 그걸 깨닫는 사람이 영적인 사람입니다. 2천년 전에 돌아가셨고, 내 죄 때문에 지금도 돌아가시고 계시다. 나 때문에 돌아가시고 계시다는 것은 느끼고 고백하는 사람이 영적인 사람입니다.
베르도 사도는 예수님을 따르면 뭔가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아서 따랐기도 합니다. 사랑의 길 때문에 오롯이 따른 길은 아니었지요. 우리들의 신앙의 길이기도 하고요. 지금도 그런 나의 모습을 보시면서 기도하시는 예수님, 지금도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 보여주시는 예수님을 체험하고 고백하는 사람이 영적인 사람입니다.
베르도 사도는 사랑의 길을 걸으시고 그 사랑의 길을 함께 걷자고 하시는 예수님의 사랑에 대한 깨달음을 느끼고 자기 자신을 깊이 돌아보고 난 뒤에 슬피 울었습니다. 사랑에 응답하지 못했던 자신을 깊이 보았습니다.
베드로 사도가 물고기를 잡고 있는데 예수님이 왜 다가오셨을까요? 내가 쓸모가 있어서 오신 게 아니라, 죄 가운데 오셔서 사랑이 무엇인지 알려 주시려고 오셨습니다. 그것을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내 인생을 연민하셨고, 내 인생에 참사랑이 함께 하시길 원하셔서 오셨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지금도 나를 위해서 애쓰시고 계심을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바오로 사도께서 직접 체험하셨습니다. 또한 그렇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우리들도 만나주십니다. 주님께서 먼저 우리를 부르셨기에 우리는 그 부르심에 응답하고 교회에 나온 것입니다. 주님의 평화를 빕니다.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20) 예수님의 약속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살지 않고 하느님을 멀리하며 죄를 짓고 사는 것이 바로 지금도 우리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있는 것이 되는 것이겠습니다.
곧 참사랑의 길을 거부하며 내 뜻과 내 고집대로 사는 모습이 바로 2천년 전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바리사이들처럼 우리도 그런 삶을 사는 것이나 같은 삶의 모습이겠습니다. 주님의 평화를 빕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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