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Re:묵주기도와 반복 | 카테고리 | 천주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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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정임 | 작성일2015-08-18 | 조회수1,054 | 추천수0 | 신고 |
(십자성호를 그으며)
박병규 신부님의 요한 묵시록 해설
박병규 요한 보스코 신부 2001년 6월 대구대교구 사제수품 2002년 프랑스 리옹 가톨릭대학교 입학 2005년 동대학 박사준비 과정(DEA)수료 2005-2007년 로마 성서 대학 수학 2007?-2009년 프랑스 리옹 가톨릭대학교 박사학위 수여 (논문: 요한 묵시록에 나타난 어린양)
제1강 요한 묵시록을 어떤 관점에서 볼 것인가
심판의 예언으로만 알려진 요한 묵시록. 그 안에 하느님이 담아 주신 절절한 위로와 희망의 메세지를 읽어 냅니다. 요한 묵시록으로 성서신학 박사 학위를 받은 박병규 신부 (대구대교구 구암성당)와 함께 사랑과 위로의 하느님을 만나보시기 바랍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대구대교구 박병규 요한 보스코 신부입니다. 오늘부터 26주간 우리 여러분들과 또 시청자 분들과 함께 요한 묵시록에 대해서 한 번 배워볼까 합니다.
제가 프랑스 리옹 가톨릭대학에서 요한 묵시록, 거기서 어린양을 가지고 박사 논문을 쓰고 왔습니다. 사실 논문 쓴다고 그러면은 그 한 주제만 가지고 많이 우리가 연구를 많이 하게 되는데 요한 묵시록 전체에 대해서 우리가 특히 한국에서 요한 묵시록에 대해서 이렇게 전반적으로 다같이 살펴보는 게 조금 많이 부족하다. 이런 느낌이 듭니다.
그래서 저도 한 부분만을 봤기 때문에 저 역시 이 시간을 통해서 우리 시청자 분들 그리고 우리 여기 계신 분들과 함께 저도 한 번 배웠던 것 한번 나눠 볼 수 있는 그런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어떠한 성서, 우리 성경이라고 이름이 바뀌었지요? 성경 공부를 할 때마다 처음 시작할 때 네 가지에 대해서 한 번 제가 이렇게 말씀 드리고 시작하는게 있습니다. 무엇이냐? 성경을 우리가 어떠한 마음 어떠한 자세로 만아야 되는가? 거기에 대해서 네 가지에 대해서 한 번 말씀 드릴까 합니다.
첫번째로 제가 석사 논문을 쓸 때 지도 교수 신부님께서 늘 하시던 말씀인데 성경은 사랑하는 님의 편지다. ※성경은 사랑하는 님의 편지다
이 표현을 계속 저한테 말씀하셨어요. 그분은 늘 공부를 하실 때, 처음 하루를 시작하실 때 그날 복음 말씀을 계속 묵상하고 시작을 하시거든요. 그게 무슨 말이냐?
내가 공부하기 이전에 이 말씀이 내가 사랑하는 님의 편지로써 받아 들인다면 자, 우리 편지 한장 들고 아, 이 글이 누구에 의해서 어떤 의미일까라고 다른 사람한테 물어보는 그런 바보는 없겠지요?
이 편지의 이 글이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그 사랑의 의미를 내가 느낄려고 남한테 안 보일려고 그러지요? 예, 그만큼 내가 살아가면서 이 성경을 접한다는 것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글을 접한다." 그런 느낌으로.
괜히 신부님, 수녀님, 또 공부한 또 다른 우리 신자분들에게 "이게 무슨 뜻일까요?" 그렇게 물어보는 그런 식의 우리 모습은 조금 지양을 해야 되지 않겠는가? 첫번째로 내가 사랑의 감정을 가지고 성경을 대한다. 이것이 우리 제일 중요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두번째로 제가 생각했던 것이 성경은 결국 거룩한 독서예요. ※ 성경은 거룩한 독서이다. 그 어떤 것도 필요 없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공부는 성경을 그 사랑하는 님의 편지를 읽기 위한 하나의 보조 수단이죠. 긍극적으로 우리가 만나야 할 분은 하느님이시지요. 그래서 예전에 오리게네스라는 분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성경을 읽고 거기서 하느님을 만났으면 성경을 갖다 버려라."
※ 교부 오리게네스: 성경을 읽고 거기에서 하느님을 만났으면 성경을 버려라.
우리 이거(성경책) 글자죠? 글자가 하느님 말씀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아무도 없을꺼예요. 이 글자를 통해서 이 안에 계신, 글자 너머에 계신, 그래서 많은 교부들이 성경을 하느님을 만나가는 과정을 산을 이렇게 넘어가는, 산을 넘어 고개를 또 넘어가면 또 높은 산이 있고, 또 높은 산이 있고 그래서 스캔달룸이라는 말을 여러분 아시지요?
scandal! 그게 무슨 말이냐하면 걸려 넘어지게 하는. 그래서 힘들더라도 계속 산을 넘고, 넘고, 걸려 넘어지더라도 또 넘어서 넘어서 궁극적으로 하느님을 만난다. 그게 거룩한 독서지요. 읽고, 묵상하고 그 다음에 기도하고 관상으로 들어가는 것.
※ 성경을 대하는 자세(거룩한 독서) 읽고 묵상하고 기도하고 관상으로 들어가는 것
성경을 대하는 자세가 거룩한 독서가 되어야 된다. 하느님을 만나야 된다. 이 부분에 대해서 우리가 명확하게 생각을 해야 됩니다.
세번째로 근본주의적인 해석을 조금 우리가 조금 조심을 해야 된다. ※ 근본주의적인 성경 해석을 주의해야 한다 우리가 글자 그대로 방금 제가 말씀드리다시피 글자 그대로 받아 들여서는 안 된다. 그 의미를 살펴야 된다.
그런데 가끔씩 우리 가톨릭 신자분들도 근본주의적인 성서 해석을 할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무엇이냐? 공부를 하다보면 역사적인 배경지식, 신학적인 지식, "아, 이 성경 말씀이 이런 의미가 있었구나!"
맞는 말이예요. 옳은 소리예요. 그러나 거기에 너무 빠져 있다보면, 다른 사람의 묵상이나 성경 말씀을 통해서 "아, 나 오늘 이런 걸 느꼈어!" 그럴 경우에 "애이, 그런 거 쓸데 없고 성경은 역사적으로 이런 거고, 신학적으로는 이런 의미니깐 이 성경 말씀은 이것만이어야 돼!" 라고 말하는 모습. 이것도 근본주의적인 성경 해석입니다.
어떠한 것이든간에 말씀은 살아 있습니다. 우리가 요한 묵시록 안에서 보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살아 계신 분으로 표현되는 부분이 있는데 그때 가서 제가 생명에 대해서 말씀 드릴꺼고, 하여튼 말씀은 살아 있어야 됩니다. 현재.
그런데 그 말씀을 우리 역사의 지식속에, 신학적인 지식속에 가두어 놓는 것. 이것도 분명히 근본주의적 성경해석이다. 조심하셔야 됩니다.
네번째로 마지막으로 우리는 이 성경 말씀을 읽었으면 어떻게 우리 삶으로 살아야 되지요? ※ 성경 말씀을 읽었으면 우리 삶으로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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