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기 침체의 바닥에 등장하다
하까이 예언서는 짧다. 딱 2장! 그만큼 하까이 예언자의 예언 메시지는 한 주제에 집중되어 있다는 얘기다. 그는 기원전 520년, 그러니까 538년 키루스 칙령에 의해 바빌론에서 유배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지도층이 예루살렘으로 귀환한지 18년째 되던 해에 예언 말씀을 받았다. 핵심은 경제 불황의 원인과 그 타개책에 관한 것이었다.
그의 출현에 대해 하까이 예언서 서문은 이렇게 언급한다.
“다리우스 임금 제이년 여섯째 달 초하룻날, 주님의 말씀이 하까이 예언자를 통하여 스알티엘의 아들 즈루빠벨 유다 총독과 여호차닥의 아들 예수아 대사제에게 내렸다”(하까 1,1).
다리우스는 페르시아 왕국을 일으켜 바빌론 제국을 제압하고 다스렸던 키루스 왕의 3대 후임이다. 즈루빠벨은 키루스 왕 시절 유다 총독으로 임명되어 예루살렘 성전 재건을 주도했던 인물이고, 예수아 대사제는 즈루빠벨의 행정지원을 받으며 성전 재건을 사실상 총괄했던 인물이다.
그런데, 하까이 예언자가 등장할 당시 예루살렘의 상황은 그야말로 경기 침체가 극심한 형국이었다. 공식적으로 4만 2천 명이 넘는 귀향민과 7천여 명의 종들이 예루살렘과 인근 촌락에 다시 생활터전을 잡았지만(에즈 2,64-70 참조), 그 정착과정이 결코 녹록지 않았다. 그들의 생활고는 빨간불이 켜진 예루살렘 성전 재건축과도 상관있었다. 이는 오늘날의 대형건설사업과 경제의 관계를 고려해 보면 금세 짐작되는 사태다. 공사가 진행되는 동안 그 인근은 사람들로 북적대고 경제는 활성화된다. 공사가 지지부진하면 지역경제도 함께 휘청거린다. 바로 후자의 사태가 그 시대 예루살렘에서 전개된 것이었다.
어쩌다가 악순환의 상황은 이 지경까지 왔을까? 잠깐 역사적 사실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 예루살렘 귀향민들은 키루스 칙령에 따라 성전 재건 작업에 착수했다. 그들은 본디 예루살렘 지역의 터줏대감들이었기에 돌아온 즉시 ‘주인의식’을 가졌다.
“예루살렘 성전 재건은 우리 힘으로 한다. 어중이떠중이 혼혈족들과 변절족들의 도움은 일절 사양한다. 그러므로 키루스 왕이 약속한 지원금 이외에는 우리들이 각자 자원금을 봉헌하여 건설한다.”
이런 식이었다. 이에 그들은 기꺼이 당시 유다 총독 즈루빠벨과 대사제 예수아를 재건축 사업 수뇌부로 여기고 의기투합하여 착착 진행해 갔다(에즈 3,8-13 참조).
하지만 여기에서 소외된 사람들의 눈이 결코 고울 리 없었다. 게다가 역사적으로 앙숙 관계에 있던 사마리아인들이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그들은 집단적으로 방해공작을 하고 모략 상소를 올려 다리우스 왕이 등극할 때까지 공사를 중지시키는데 성공했다(에즈 4장 참조).
사마리아인들은 왜 그런 고약한 일을 도모했을까? 그들은 아시리아가 북왕국 이스라엘을 점령하면서(기원전 722년) 정책의 일환으로 불어난 아시리아인과 이스라엘인 사이의 혼혈족이었다. 종교적으로도 북왕국 베텔 성전의 황금송아지 우상에 물들어 순수 신앙에서 거리가 있는 이들이었다. 본디 사마리아 지역이 고향이지만 격변하는 국제정세로 예루살렘 인근에 이주하여 정착한 이들도 꽤 있었다. 이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전이 재건되면 주도권에서도 밀리고, 이권다툼에서도 불리한 국면으로 몰릴 공산이 뻔히 내다보이니까, 저렇게 반기를 들었던 것이다.
결과는 국가적 자해! 경제, 문화, 종교에 드리운 먹구름이었다.
■ 경제논리를 영성논리로 풀다
하느님께서는 때를 보고 계셨다. 키루스 왕에 이어 2대가 지나고 드디어 당신의 마음에 드는 다리우스 왕이 등극하자, 그 이듬해 하느님께서는 하까이(및 즈카르야) 예언자를 내세우시어 다시 성전 재건을 독려케 하셨다. 이에 용기를 얻은 즈루빠벨과 예수아는 공식절차를 밟아 다리우스 왕으로부터 성전 재건 사업의 허락을 얻어내고 일사천리로 시행하여 5년 만에 준공식을 치르게 되었다(에즈 6,15 참조).
이 국가적 사업에는 예루살렘 사람들의 도움이 무엇보다도 중요했다. 그들의 참여를 이끌어낸 것은 전적으로 하까이의 예언 활동이었다. 주목할 점은 그가 경제문제를 영성논리로 풀면서 백성들의 마음을 움직였다는 사실이다.
“─ 만군의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 너희가 살아온 길을 돌이켜 보아라. 씨앗을 많이 뿌려도 얼마 거두지 못하고 먹어도 배부르지 않으며 마셔도 만족하지 못하고 입어도 따뜻하지 않으며 품팔이꾼이 품삯을 받아도 구멍 난 주머니에 넣는 꼴이다”(하까 1,5-6).
연이은 흉년? 민생고? 다 이유가 있다. 주님의 성전을 폐허로 방치했기 때문이다(하까 1,4 참조). 곧 하느님과의 연결 통로가 막혔기 때문이다! 이런 논조였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인가?”라는 반론이 없었을 리 없다. 물론, 들을 귀가 있는 백성들은 바로 알아듣고 즉시 뜻을 모았을 터다.
어쨌든, 이런 하까이의 통찰어린 설득과 채근이 있었기에 예루살렘 두 번째 성전, 이른바 ‘즈루빠벨’ 성전은 성황리에 건축되었던 것이다.
경제논리와 영성논리! 이 둘의 줄다리기는 오늘도 여전하다. IMF 위기 때 나는 아주 조그만 본당을 맡고 있었다. 이때 어떤 신자가 와서 냉담을 선언하고 떠나려 했다.
“죄송합니다만 제가 지금까지는 교무금도 낼 만했는데, 사업이 망했어요. 그래서 제가 다시 교무금 낼 수 있을 때, 그때 성당에 나올게요.”
교무금 부담을 줄여주며 만류했지만, 이런 이들이 참 많은 듯하다. 하까이 예언자는 경제논리 일변도의 사유를 송두리째 뒤집는다. 그는 ‘봉헌 못할 이유’를 ‘봉헌해야할 명분’으로 바꿔놓는다. 그렇다고 궤변은 아니다. 하까이 예언자의 마음속 기도자리에서는 사람들의 구시렁 소리와 하느님의 자상한 초대가 노상 교차되지 않았을까.
“사글세 단칸방에 콩나물시루처럼
온 식구가 옴닥옴닥 붙어살고 있습니다.
입에 풀칠하기도 급급해서….”
영영 판자집살이를 하려느냐?
너희의 극미한 정성에도 감동하는 나다.
혹시 아느냐,
네가 돼지저금통이라도 째면
축복이 쏟아질지.
“냉해에, 수해에, 병충해에
올해 작황이 흉흉합니다.
밭들을 갈아엎을 판이라서….”
내년, 후년, 내후년, 똑같은 눈물을 흘리려느냐?
너희의 빈말 감사라도 흥분하는 나다.
혹시 아느냐,
그중 가장 실한 것을 ‘감사예물’로 바치면
그 30배, 60배, 100배로 돌려받을지.
“쥐꼬리 같은 월급에
챙길 일, 축낼 일은 많고, 내일은 기약 없습니다.
갚을 빚도 만만찮아서….”
수고와 무거운 짐, 너 스스로 지려느냐?
너희의 “아빠(ABBA) 아버지” 소리에 ‘자식바보’가 되는 나다.
혹시 아느냐,
네가 만사에 우선하여 내게 ‘0순위’ 효심을 보이면
상상도 못한 횡재가 내려질지.
“정말요?”
‘혹시’가 아니란다. 네가 믿으면 ‘반드시’ 그렇단다.
차동엽 신부는 오스트리아 빈대학교에서 성서신학 석사, 사목신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인천가톨릭대학교 교수 및 미래사목연구소 소장으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