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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경] 성지에서 만나는 성경 말씀: 포도나무와 포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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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2-01-16 조회수2,417 추천수0

[성지에서 만나는 성경 말씀] 포도나무와 포도주

 

 

이스라엘을 순례하다 보면 포도나무를 자주 접하고 포도주 먹을 일도 많습니다. 가나안 토산물(신명 8,8)이 맞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지요. 북쪽 골란 고원부터 남쪽 유다 광야에 이르기까지 포도원이 곳곳에 있습니다. 갈릴래아 지방 카나에서는 예수님께서 포도주로 첫 표징을 일으키셨지요(요한 2,1-11). 그 일을 기념하는 성당은 오늘날 혼인 갱신식의 장소로 역할을 톡톡히 합니다. ‘고대에는 혼인 잔치를 이레 동안 했다.’(창세 29,27; 판관 14,17)며 성지순례 일주일 내내 포도주를 사신 부부도 있지요. 또한 성지에서 영명 축일을 맞았다고, 순례가 행복하다고, 이래저래 포도주를 나눕니다. 이쯤 되면 포도나무와 포도주는 성지의 기쁨을 대표한다고 하겠습니다.

 

성경에서 포도는, 대홍수 뒤 노아가 경작한 ‘최초’의 작물로 소개되는데요(창세 9,20), 그래서 민족들 가운데 하느님의 “맏아들”(탈출 4,22)이 된 이스라엘에게는 상징적인 의미를 갖습니다. 하느님은 포도원 주인으로 종종 묘사되지요(이사 5,1-7; 예레 2,21). 이집트 탈출 사건에 대해 시편 80,9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당신께서는 이집트에서 포도나무 하나를 뽑아 오시어 민족들을 쫓아내시고 그것을 심으셨습니다.” 호세 9,10에서는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처음 만나셨을 때 그들이 “광야의 포도송이” 같았다고 표현합니다. 광야는 풀 한 포기 자라기 어려워 보이지만, ‘시련 속에 성숙해진다.’는 말처럼 척박하고 건조한 땅에서 힘을 다한 포도는 양질의 포도주를 냅니다.

 

하지만 딱딱하고 시큼한 ‘들포도’로 변하면 아무짝에도 쓸모없게 됩니다. 들포도는 이스라엘을 꾸짖는 신탁에 등장합니다(이사 5,4; 예레 2,21). 에제 15장은 ‘예루살렘 포도나무’가 들포도로 변한 게 아니라 원래부터 쓸모 없는 나무였다고 질책합니다. 초창기부터 반역해왔기에(에제 2,3; 12,2) 땔감처럼 불에 던져질 운명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기원전 6세기 바빌론의 침공을 암시하는 꾸짖음입니다. 포도나무 비유는 이후 요한복음에 반영되는데요, 다만 요한 15,6에서는 예수님을 포도나무에 비유합니다. 그 나무 안에 머물며 열매를 맺으면, 곧 예수님의 제자가 되면, 포도나무를 가꾸신 하느님께서 영광스럽게 되실 거라고 합니다(8절).

 

포도의 백미는 뭐니뭐니 해도 포도주입니다. 제주(민수 15,1)를 비롯해 성경에 언급되는 술은 대부분 포도주입니다. 가나안산 포도주는 이집트로도 수출되었습니다. 성경에는 포도에 얽힌 지명도 많습니다. “벳 케렘”(예레 6,1)은 ‘포도원의 동네’라는 뜻이고, 삼손의 연인 들릴라가 살았던 “소렉” 골짜기(판관 16,4)는 ‘검붉은 포도’를 의미합니다.

 

포도주는 하느님이 내리신 복으로 여겨졌지만(신명 7,13; 시편 104,15) 과음에 대한 경고도 있습니다. 술에 취하면 방탕하게 되기 때문입니다(에페 5,18). 그래서 선을 넘지 않고 포도주를 즐기는 삶은 주님께서 주신 복일 겁니다. 성지에서 와인 한 잔 음미하다 보면, 과연 “포도주는 병에 담긴 시”라는 어느 문인의 찬양이 절로 떠오릅니다.

 

* 김명숙 소피아 - 예루살렘 히브리대학교 구약학과에서 공부하여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으로 일하며, 수도자 신학원 등에서 구약학을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는 <에제키엘서>와 <예레미야서 1-25장>, <예레미야서 26-52장>이 있다.

 

[2022년 1월 16일 연중 제2주일 의정부주보 6면, 김명숙 소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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