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창세 24,48 "제 주인의 아우님 딸" or "제 주인의 친족의 딸"? | 카테고리 | 성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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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삼용 | 작성일2015-09-17 | 조회수1,166 | 추천수0 | 신고 |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창세 24,48 무릎을 꿇어 주님께 경배하고 제 주인 아브라함의 하느님이신 주님을 찬미하였습니다. 그분께서는 제 주인의 아우님 딸을 주인 아들의 아내로 얻을 수 있도록 저를 바른길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창세 22,20~23에 의하면 “레베카”는 우리의 족보 개념으로만 보면 “제 주인의 아우님 딸”이 아니라, “제 주인의 아우님의 손녀딸”이라 번역하여야 됩니다. • ①아브라함 - ②이사악 - ③야곱 • ⓐ나호르 - ⓑ브투엘 - ⓒ레베카(오빠 라반)
그런데 brother에 해당하는 ‘ach'는 ‘같은 지파’, ‘친척’의 뜻도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공동번역에서는 “제 주인님의 조카딸”(ⓑ브투엘은 ①아브라함의 조카임으로 말이 됨)이라고 풀어서 번역하거나, NAB (in CBCK)에서는 “the daughter of my master's kinsman for his son”, 곧 “제 주인의 친족의 딸”이라고 의역(?)을 한 것으로 이해됩니다.
②이사악과 ⓒ레베카가 결혼해서 ③야곱을 낳았기에 우리식 항렬 (行列)로만 보면 야곱의 어머니 레베카의 오빠 라반은 형제(brother)간이지만 어머니의 오빠가 되니깐 ‘외숙’(외삼촌)이라고 부르게 됨을 봅니다. 그래서 이를 통해서 ‘brother'의 뜻이 ’형제‘에 국한될 수 없고 ‘같은 지파/친족/친척’의 폭넓은 의미를 가지게 된 히브리족들의 사정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예수님의 형제(들)을 친형제라고 개신교 신자들이 주장하는 것은 무지의 소치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옳은 이해인지는 모르겠으나 나름 ~~~)
그런데 위 本질문의 (야곱이) “저의 아버지 아브라함”이라고 번역된 사정과는 달리, NAB에서처럼 “친족의 딸”이라고 의역하는 것이 좋지 않았었겠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더군다나 24,3-4에 의하면 아브라함이 종에게 명한 것은 “ '가나안족의 딸들' 가운데에서 내 아들의 아내가 될 여자를 데려오는 것이 아니라, ‘내 친족’에게 가서 데려오라”고 했던 것을 연결시켜보면, “제 주인의 아우님 딸”이라고 구체적으로 적시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내 친족의 딸”(가나안족의 딸들이 아니라 내 친족의 딸들 가운데서 라는 의미로)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옳고 자연스러워 보입니다. 아니면, 종이 주인의 말을 잘못 전달하고 있는 것이니깐요 ~~! 어쨋거나 “손녀 딸”도 아니라 굳이“아우님 딸”이라고 번역한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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