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Re:예수님과 아담???마리아와 하와????십자가와 나무??? | 카테고리 | 천주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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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정임 | 작성일2015-10-09 | 조회수1,584 | 추천수0 | 신고 |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레지오 마리애 훈화 (25)
최 경 용(부산교구 신선 천주교회 주임 신부)
39. 레지오 사도직의 주안점(교본 제39장:408 - 462면)
교본에서 제시하는 레지오 사도직의 서른다섯 가지 주안점(主眼點)은 레지오 단원이 사도직 활동을 할 때 명심하고 지켜야 할 규범과 행동 지침이다. 레지오의 사도직 활동은 주로 이웃의 구원을 위한 선교 활동과 봉사 활동이다. 그런데 활동 대상자로서 '영혼'(soul)이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단순히 '영혼'보다는 영혼과 육신이 결합된 '인간'이나 '사람'이라는 단어가 훨씬 나을 것이다. 영혼만 구하려는 자세는 옳지 않기 때문이다.
1) 성모님과 함께 가지 않으면 영혼들에게 접근할 수 없다(교본 408 - 420면)
레지오 사도직은 구세주의 모친이며 인류의 어머니인 성모 마리아의 모성적 역할을 드러내는 것이다. 성모님은 사도들의 모후로서 레지오 사도직에 반드시 계셔야 할 필수적인 분이다. 레지오 창설자 프랭크 더프는 성모님과 함께 사람들에게 접근해야 하는 것이 하느님의 뜻임을 깨달았다. 그리하여 레지오 단원들이 성모님의 모성애로써 활동 대상자들에게 접근하도록 하였다. 그는 협조 단원들에게 '마리아는 하느님의 은총 계획에 필수적인 고리'라는 제목으로 연설했는데 그 내용을 발췌하여 교본 본문에 실어 놓았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이 11개 조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1) 태초부터 하느님께서는 마리아를 마음속에 두고 계셨다. (2) 마리아는 예언을 통하여 생생하고 확실하게 계시되었다. (3) '천사의 아룀'은 성모님의 막중한 지위를 나타낸다. (4) 성부께서는 구원 사업이 마리아에게 매이도록 하셨다. (5) 성모님 없이는 참 그리스도교가 없다. (6) 성자께서는 언제나 당신의 어머니와 함께 계신다. (7) 예수님과 아담, 성모님과 하와, 십자가와 나무. (8) 성령께서는 항상 성모님과 함께 일하신다. (9) 우리는 성모님께 어떤 지위를 드려야 하는가?(10) 모든 행실은 성모님의 '피앗'(Fiat:그대로 이루어지소서)의 정신으로 해야 한다. (11) 성모님과 더불어 주님을 찬미하라.
성모님은 하느님께서 세우신 구원 계획의 중심에 계신 분이다. 마리아는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한낱 피조물이지만 하느님의 자유 의지로 구원 사업에 중추적인 인물로 선택되었다. 마리아는 천주 성자의 강생과 함께 구세주의 어머니로 예정되었고 새 하와로서 구세사에 깊이 관여하였다. 마리아를 가장 먼저 하와와 비교 대조한 사람은 165년에 순교한 성 유스티노이고 그 다음이 성 이레네오이다. 십자 나무로써 인류를 구원하신 예수님과 성모님은 생명 나무로써 인류를 죽게 한 아담과 하와와 대조된다. 예수님은 새 아담(로마 5,12-21; 1고린 15,45-47 참조)이시고 성모님은 새 하와이시다. 아담과 하와가 하느님께 불순종함으로 생명 나무에서 죽음을 가져왔다면 새 아담과 새 하와는 성부께의 순종함으로 십자 나무에서 생명을 가져왔다. 이것은 '첫 복음'(창세 3,15)에서 예언되었듯이 여인과 그 후손에 연관되어 있다. 구약성서 안에 마리아가 직접 언급되지는 않았으나 예언을 통해 생생하고 확실하게 계시되었다(이사 7,14; 미가5,2; 창세 3,15; 1열왕 2,19 참조)마리아는 이 세상에 그리스도를 모셔 왔기 때문에 마리아 없이는 참 그리스도교가 없다. 그러므로 모든 세대의 사람들은 참 그리스도교를 가져오게 한 성모 마리아를 '복되다 일컫고' 그분께 감사드려야 한다. 성탄 전야에 마리아를 문전에서 박대한 사람들은 마리아가 잉태한 구세주 예수님을 박대한 것이다. 성자 예수님께서는 늘 당신의 어머니와 함께 계신다. 목자들과 동방 박사들의 경배 때 예수님께서는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계셨고 성전에서의 봉헌식, 가나의 혼인잔치,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는 순간에도 성모님과 함께 계셨다. 이처럼 성자께서는 인생의 중요한 순간에 언제나 당신의 어머니와 함께 계셨다.
시골 처녀 마리아에게 가브리엘 대천사가 나타나 주님 탄생을 예고하면서 동정 잉태, 천주 강생, 천주의 모친이 된다는 소식을 전해 주었을 때 마리아는 "주님의 종이오니 그대로 제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가 1,38)라고 대답하며 그 내용을 고스란히 받아들였다. 이 대답은 하느님의 구원 계획을 능동적으로 받아들여 항구하게 실천하고 봉사하겠다는 결단이다. 하느님께서는 마리아의 응답을 통하여 구세주를 인류에게 보내 주셨다. 우리 역시 성모님의 '피앗' 정신으로 행동하고 활동해야 한다.
성령은 항상 성모님과 함께 일하신다. 마리아는 은유적인 표현으로 성령의 배필이다. 구세주는 성령의 힘으로 마리아에게서 탄생하셨다. 주님 탄생은 오로지 성령의 힘과 마리아의 자유로운 동의로 이루어진 것이다. 주님 탄생은 성령께서 마리아에게 내려오시고 그분의 힘이 마리아를 감싸 주신 덕분이다. 또한 마리아가 생명을 바칠 각오로써 성령께 전적으로 협력한 덕분이다. 그뿐만 아니라 성령 강림 때에도 성모님께서 함께 계심으로써 교회가 탄생하였으니 성령과 마리아는 늘 함께 일하시는 분들이다.
우리는 마리아께 어떤 지위를 드려야 하는가? 우리는 마리아를 믿음의 대상으로 여겨서는 결코 안 되지만 하느님의 어머니이므로 피조물 가운데 으뜸가는 지위를 드려야 한다. 성모님의 지위는 무엇보다도 구세주의 어머니요 인류의 어머니이다. 성모님은 혈연 관계뿐 아니라 신앙 공동체나 하느님과의 관계에서도 구세주의 어머니시다.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나라에 대해 말씀하시는 도중에 어머니와 형제들이 찾아왔다는 전갈을 받았을 때 그리고 군중 속의 어떤 여인이 성모님을 복되다고 외쳤을 때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사람이 더 행복하고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다.'(마르 3,35; 루가 11,27-28 참조)라고 대답하셨다. 이것은 구원 문제에서 혈연 관계보다도 하느님과의 관계가 더 중요하다는 말씀이다. 그런데 성모님보다 더 하느님의 말씀을 잘 듣고 실천한 분은 없을 것이다. 그러기에 성모님은 '행복한 여인'이 되셨고 초대 교회로부터 "온 백성이 칭송하는 복된 분"이 되셨다.
성모님은 인류의 어머니로서 사람들을 예수님께 인도하고 은총의 중개자 역할을 하신다. 성모님이 결정적으로 인류의 어머니 역할을 하게 된 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성모님과 사랑하는 제자를 모자(母子) 관계로 맺어 주셨기 때문이다(요한 19,26-27 참조). 성모님은 은총의 중개자, 은총의 수로(水路) 역할을 하신다. 가나 혼인 잔치에서의 첫 기적도 성모님의 중개 덕분이었다. 성모님께서 중개 역할을 하기 때문에 우리는 하느님께만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성모님께도 기도한다.
마리아는 인류의 어머니로서 늘 우리와 함께 계신다. 기도할 때에도, 찬미할 때에도 우리와 함께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리아와 함께 주님을 찬미해야 한다. 우리의 삶은 우리가 지닌 모든 것을 성모님을 통해 하느님께 봉헌하는 것이다. 마리아께 바치는 것이 곧 하느님께 바치는 것이다. 우리가 마리아를 통해 하느님께 바치는 신심을 지닐 때 구원 사업에서 성모님의 역할을 올바로 인정하는 것이다. 사도직 활동을 할 때 레지오 마리애의 취지는 사람들에게 "마리아를 거울처럼 비추는 것"이다. 단원들은 늘 마리아와 함께 활동 대상자들에게 접근해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2) 무한히 값진 영혼들을 끝없는 인내와 친절로 돌보아야 한다(교본 421-424면); 13) 하나하나의 영혼을 찾아서 이야기를 나누자(교본 440-441면)
레지오 단원이 사도직 활동을 할 때 사용하는 방법은 오로지 한 가지밖에 없다. 그것은 따뜻한 마음씨와 다정한 태도이다. 따뜻한 마음씨와 다정한 태도로 사람들을 대하지 않고서는 활동에 성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버림받은 사람들, 난폭한 사람들을 만날 때 더욱 자비로운 태도를 보여야 한다. 단원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이 방법을 벗어나서는 안 된다.
예수님은 성모님께 자비의 왕국만을 주시고 정의의 왕국은 당신 스스로 간직하고 계신다는 말이 있다. 세계 최초의 쁘레시디움 명칭도 '자비의 모후'였다. 그렇게 이름을 정한 것은 이 쁘레시디움에서 처음 착수한 활동이 자비의 수녀회가 운영하는 병원을 방문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 당시 단원들은 자신들이 쁘레시디움의 이름을 선택한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실상 성모님께서 그 이름을 지어 주셨다는 것을 누가 의심할 수 있겠는가? 이렇게 해서 성모님은 레지오가 지향해야 할 자비와 친절의 특성을 처음부터 밝혀 주셨다.
꽃은 부드럽고 따뜻한 곳에서는 활짝 피어나지만 쌀쌀한 공기 속에서는 움츠러든다. 레지오 단원들이 따뜻한 마음씨를 지니고 사람들에게 다가가 그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정성껏 도와주겠다는 자세로 활동한다면 어느 누구도 거절할 수 없는 힘을 발휘한다. 일반적으로 레지오 단원들은 죄에 물든 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열심히 찾아 나선다. 그런데 레지오 단원들을 받아들이지 않고 완강히 거부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반항심이 강해 부드러움이나 영적 생활의 흔적도 없는 듯이 보인다. 그런 사람들을 그냥 팽개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겠지만 단원들은 결코 그래서는 안 된다. 하느님께서는 그러한 사람들까지도 매우 소중히 여기셨기에 성자를 세상에 보내시어 그들을 구원하시고 그들과 함께 있도록 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온 세상을 얻어도 자기 영혼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라고 하셨다. 이 말은 한 사람의 구원이 온 세상보다도 더 존귀하고 가치 있다는 뜻이다. 다루기 힘든 사람들은 곧 분노를 터뜨릴 듯한 태도를 보인다. 이들을 더 자극하면 오히려 죄를 짓게 하고 반항심만 키우게 된다. 그러므로 이러한 사람들에게는 끝까지 인내하고 존중하는 마음을 지니고 친절하게 대함으로써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이런 일화가 있다. 미국의 어떤 고아원 원장이 원아들에게 줄 성탄 선물을 마련하기 위해 모금을 하러 다녔다. 그러다 어느 카페에 들어가 술을 마시며 한창 흥겨워하고 있는 손님들에게 애원하였다. 그들은 귀찮아하면서도 몇 푼씩 도와주었다. 그러는 동안 한가운데 탁자 앞까지 왔다. 그런데 손을 내민 원장에게 험상궂게 생긴 사람이 술잔을 내던졌다. 술잔은 산산조각이 나고 원장의 얼굴에서는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모두들 그 광경을 주시하고 있을 때 그는 차분하게 손수건을 꺼내어 피를 닦으면서 "감사합니다. 이것은 제게 준 선물로 알고 받겠습니다. 그런데 불쌍한 고아들에게는 무엇을 주시겠습니까?" 하고 응수하였다. 그것을 본 모든 사람들은 감동하여 서로 돈을 더 내어놓았다. 이윽고 험상궂은 사나이는 밖으로 나가 버렸다. 그러나 그가 있던 탁자 위에는 "이 돈을 고아들의 선물을 사는 데 쓰시오."라는 쪽지와 함께 돈뭉치가 남겨져 있었다. 이처럼 싸움은 손해 아닌 것이 없고 인내와 친절은 이익 아닌 것이 없다. 아무리 완고한 마음이라도 단원들이 끝없는 인내와 친절로 대한다면 마침내 유순하게 펴지고 말 것이다.
[사목, 2003년 3월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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