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은사와 열매
1) 성령의 은사
(1) '성령 칠은'과 '성령의 은사들'이란?
성령은 생명의 은총으로 믿음, 희망, 사랑을 주실 뿐만 아니라, 이를 완성하는 데 필요한 도움을 주시며, 이는 특히 신자들이 견진 성사를 통하여 받게 됩니다. 먼저 '성령 칠은'은 하느님께로부터 거저 받아 자기 개인을 견고케 하고, 자기를 위하여 유익하게 쓰이는 하느님의 선물로 성령과 함께 오는 은총입니다. 그리고 '성령의 은사'들은 성령 칠은과는 구분되는데, 이 은사들은 '특은'이라고도 불립니다. 이 은사들도 성령 칠은처럼 하느님께로부터 거저 받아서 하느님을 위하여 사용하는 것까지는 같으나, 성령 칠은이 '개인 견고의 은사'라면 이 은사들은 '공동의 유익을 위한 봉사의 은사'라는 점이 크게 다릅니다. 이 은사들은 하느님의 현존과 권능의 현시인 것입니다.
가. 성령 칠은 : 개인 견고의 은사
성령께서 내려 주시는 일곱 가지 은사는 다음과 같이 분류합니다.
인간의 지성과 관련되는 슬기, 통달, 의견, 지식과 인간의 의지와 관계 깊은 굳셈(용기), 효경, 두려워함(경외심)입니다.
지성 |
·슬기 : 인간이 하느님의 사랑을 세속의 사랑보다 귀하게 아는 지혜로서 하느님을 사랑하고 찬미하며 흠숭하고 영광을 돌리는 것.
·통달 : 구원의 진리를 인간 지력의 한계 내에서도 이해하도록 도와 주는 것.
·의견 : 선악에 대한 올바른 판단을 돕는 것.
·지식 : 믿을 것과 믿지 말아야 할 것을 식별하게 하는 은사. |
의지 |
·굳셈 : 신앙 생활에 수반하는 장애를 극복하는 힘을 주는 것.
·효경 : 하느님께 대한 자녀적 사랑을 증진시키는 것(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로 모시며 모든 사람을 형제로 본다).
·두려워함 : 하느님을 두려워하고, 하느님의 마음이 상할까 염려하는 마음을 불러일으켜 주는 은사. |
이 칠은은 메시아 왕국에 대한 이사야서 11장 1-3절에서 유래합니다.
"이새의 그루터기에서 햇순이 나오고 그 뿌리에서 새싹이 돋아난다. 야훼의 영이 그 위에 내린다. 지혜와 슬기를 주는 영, 경륜과 용기를 주는 영, 야훼를 알게 하고 그를 두려워하게 하는 영이 내린다. 그는 야훼를 두려워하는 것으로 기쁨을 삼아 겉만 보고 재판하지 아니하고 말만 듣고 시비를 가리지 아니하리라"(이사 11, 1-3).
나. 성령의 은사들(은총의 선물, 성령 특은) : - 공동의 유익을 위한 봉사의 은사
성령의 '은사(恩賜)'라는 말은 사도 바오로가 고린토 전서 12장 4-11절에서 성령이 주신 여러 가지 은사들을 가리키면서 '카리스마타'라고 한 데서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성령이 주시는 은총의 선물들에 대하여 성서는 고린토 전서 12장 8-12절(아홉 가지), 고린토 전서 12장 28-30절(여덟 가지 직책), 로마서 12장 4-8절(일곱 가지), 베드로의 첫째 편지 4장 10-11절(두 가지)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위와 같이 성서의 여기저기에 은총의 선물들이 많이 나오는데 이들 은총의 선물들이 고린토 전서 12장 8-11절에 나오는 것과 같지 않은 것으로 보아 사도 바오로께서 아마도 모든 봉사 은사의 완전한 목록을 제시하려 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여기서는 고린토 전서 12장 8-11절에 있는 아홉 가지 은사만을 살펴보겠습니다. 이것은 크게 전교 은사, 표적 은사, 계시 은사 등 세 가지로 나누어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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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은 성령에게서 지혜의 말씀을 받았고 어떤 사람은 같은 성령에게서 지식의 말씀을 받았으며, 어떤 사람은 같은 성령에게서 믿음을 받았고, 어떤 사람은 같은 성령에게서 병 고치는 능력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기적을 행하는 능력을, 어떤 사람은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서 전하는 직책을, 어떤 사람은 어느 것이 성령의 활동인지를 가려내는 힘을, 어떤 사람은 여러 가지 이상한 언어를 말하는 능력을, 어떤 사람은 그 이상한 언어를 해석하는 힘을 받았습니다. 성령께서는 이렇게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 각 사람에게 다른 은총의 선물을 나누어주십니다"(1고린 12, 8-11).
① 전교 은사
·지혜의 은사
말씀을 듣는 이들을 잘 이해시키고 실천 방법을 가르치는 지혜입니다. 이 은사는 하느님께서 어떤 사람을 통해서 다른 사람이나 모임에 역사하는 특별한 성령의 감도인 것입니다. 개인의 대화나 강론 등을 통해서 역사하십니다.
지혜 은사로서 예를 들자면, 마르코 복음 10장 20-21절의 예수님의 말씀, 사도 행전 15장 1-14절의 사도 베드로의 말씀, 고린토 전서 12-14장의 사도 바오로의 말씀들을 들 수 있습니다.
·지식의 은사
여기서 지식은 사람들이 연구하고 공부하여 얻어진 자연적 지식이 아니라, 성령의 초자연적인 은혜로서 성서와 교리에 대한 깊은 의미를 말할 수 있는 지식, 즉 진리를 가르치기 위한 지식입니다. 복음서에 나타나 있는 대로 하느님에 관한 지식입니다. 또 믿음에 관한 깊고도 넓은 지식을 말합니다(로마 15, 14; 1고린 1, 5; 2고린 2, 14).
지식은 하느님의 진리에 대한 통찰력을 말하고, 지혜란 크리스찬 기본 원리에 입각하여 신앙 생활을 잘 영위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되는 기술을 말합니다. 즉 지혜란 행위 속에 나타난 지식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지식의 은사는 보다 교의적인 가르침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성서에서의 예를 보면, 루가 복음 10장 22절에 나오는 성부와 성자의 관계에 대한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에페소서 1장 1-23절에서 하느님의 계획에 관하여 가르치는 것이 지식의 은사의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고린토 전서 9장 16절에서 복음을 전하는 일이나 마르코 복음 1장 38절에서 예수님의 전도 사업에서도 지식의 은사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습니다.
② 표적 은사
이 은사는 하느님의 힘과 능력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믿음의 은사
이 믿음의 은사는 신덕(구원의 믿음, 즉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한 믿음)과는 구별이 됩니다. 신덕은 영세 때부터 일생 동안 가지고 있는 것이지만, 은사로서의 믿음은 성령께서 일시적으로 주시는 믿음입니다(마르 11, 22-23; 16, 17-18; 사도 3, 4-6; 1열왕 18, 33-35).
·치유의 은사
치유의 은사는 크리스찬 사회의 일상 생활의 일부인 치유를 위한 기도의 힘과는 다른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서로 여러 가지 병의 치유를 위해 기도해 줍니다. 그리고 그 결과를 얻습니다. 성서는 분명히 모든 신자들이 병자를 위해 기도하도록 말씀하고 있습니다(마르 16, 17-18). 또 특별히 교회의 원로들은 병자들을 위하여 기도해 주어야 한다고 야고보서는 말합니다(5, 14). 이 말씀이 병자 성사의 근거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분명히 특별한 치유의 은사를 받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기도하면 결과가 더욱 뚜렷하게 나타나고 특별한 효과를 나타냅니다. 성령께서는 '권능의 업적'을 이룩하기 위하여 그들을 통하여 역사하십니다. 그러나 치유의 은사를 받았다 하더라도 어떤 사람이나 어떤 병이든지 다 고칠 수 있다고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선 하느님께서 허락하셔야 되며 병든 사람의 태도와 영적 상태도 고려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도 사람들의 불신앙으로 말미암아 치유 능력을 베푸시는 일에 제한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마태 13, 58). 또 치유와 구원은 동일시할 수 없습니다(요한 5, 1-18). 치유나 구원이나 모두 하느님의 사랑의 선물이지만,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마음에 모셔야 받을 수 있는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요한 복음 5장에 나오는 베짜타 못가의 병자는 비록 치유는 되었으나 그는 치유해 주신 분이 누구신지를 모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합니다. 이 때 이 사람은 치유는 되었지만, 구원도 받았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기적의 은사
이 은사는 인간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한 일을 가능케 하는 은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믿는 이들에게 이런 능력이 따르게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르 16, 17-18; 요한 14, 12).
③ 계시 은사
이 은사는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에게 현재의 상태를 알리기 위하여 사용하시는 은사입니다.
·예언의 은사
예언은 어느 개인이나 공동체에 특정한 사람을 통해서 메시지를 말씀하는 은사입니다. 예언은 반드시 장래만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장래를 말하는 경우가 종종 있기는 하지만, 그보다도 예언은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에게 현재를 말씀하시는 것이고, 그 말씀은 그분의 현재의 태도를 계시하시려는 것입니다. 사도 바오로는 고린토 전서 14장 3절에서 "말씀을 받아 전하는 사람은 사람들을 키워 주고 격려해 주고 위로해 주려고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언의 메시지는 가르침과 다릅니다. 가르침은 사람의 지성으로 하는 것이지만, 예언하는 사람은 자신이 말하는 것이 무슨 말인지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또 예언의 은사는 크리스찬 공동체를 건설하는 데 대단히 효과적입니다. 고린토 전서 14장에서 보는 바와 같이 예언은 초대 교회 때 대단히 보편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예언을 함에 있어서 꼭 질서가 필요함에 주의해야 합니다(1고린 14, 26-33).
·영의 분별의 은사
이 은사는 특정한 사람이 영을 가려내도록 하여 어떤 사람이나 혹은 어떤 상태에서 작용하는 것이 악령인지 성령인지, 혹은 사람의 정신(잠재 의식 또는 자기 생각)에서 나오는 것인지를 알아내게 하는 은사입니다. 또 이 은사는 성령으로 인한 일종의 통찰력이나 직감인 것입니다. 또 이 영들의 분별의 은사는 교리적인 면(1요한 4, 1-6)과 실제적인 면(마태 7, 15-23)에서 잘 검토되어야 합니다.
·이상한 언어(심령 기도)의 은사
이상한 언어로 말하는 경우는 다음의 세 가지 경우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 심령 기도가 있습니다. 이 심령 기도는 개인을 위한 기도의 은사인 경우로서, 하느님을 찬양하며 아무도 알아들을 수 없게 하느님께만 말씀드리는 기도입니다(1고린 14, 2. 14; 로마 8, 26). 심령 기도의 은사는 가장 기본적인 것이며 다른 은사와 선물의 관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마르 16, 17; 사도 10, 46; 19, 6). 심령 기도를 바치는 사람은 자기가 하는 기도 내용을 알아듣지 못하지만(1고린 14, 2), 하느님을 찬미하는 내용이라는 확신을 갖고 해야 하며, 심령 기도를 통해서 성령께서는 우리를 대신하여 기도해 주십니다(로마 8, 26).
둘째, 심령 예언이 있습니다. 심령 예언은 성령의 작용에 의해 이상한 언어로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은사입니다. 이 은사에는 반드시 해석이 따라야 하며 해석이 따르면 예언이 됩니다. 심령 예언을 하는 경우 질서 있게 차례로 하고, 반드시 해석이 있어야 하고 해석할 사람이 없으면 교회 안에서 하지 말라고 성서는 가르치고 있습니다(1고린 14, 27-28).
셋째, 심령 노래가 있습니다. 심령 기도는 하느님을 찬미하는 것이기에 이상한 언어로 노래도 할 수 있습니다. 심령 기도와 심령 노래를 하다 보면 신기하게도 모든 사람이 거의 동시에 같이 마치게 되며, 각자가 자기 하고 싶은 대로 제멋대로 하지만 아름다운 화음의 조화를 이룹니다.
·이상한 언어 해석의 은사
이 은사는 누가 예언으로서 이상한 언어를 했을 때 해석하는 은사로서, 그 체험은 예언하는 체험과 비슷하며 해석하는 사람은 이상한 언어를 한 사람과 같이 그 언어를 알지 못합니다(1고린 14, 2. 26-28). 다시 말해서 해석의 은사는 통역과는 다릅니다. 그것은 받은 말씀을 말하고 싶은 충동인 것으로 그때 그때 주시는 은총입니다.
이상의 은총의 선물들은 계속해서 사용해야만 성장합니다. 소명을 받은 대로 계속 봉사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항상 사랑으로써 겸손된 언행으로 사람들을 키워 주고, 격려하고 위로해 주며 교회 발전에 도움이 되어야 하고, 또 항상 모든 일에 점잖고 질서 있게 해야 합니다(1고린 14, 3. 40).
2) 성령의 열매
하느님께서는 교회 공동체에 봉사하게 하는 여러 가지 은사의 사용과 열성만으로 만족하시지 않습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그리스도인의 성격과 행실을 변화시켜서 완전한 하느님의 자녀가 되기를 원하십니다(마태 5, 48). 그러므로 우리가 우리 생활 전체를 변화시켜 주시도록 성령을 받아들인다면 성령께서 우리 안에 성령의 열매를 맺어 주실 것이고, 이것이 바로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것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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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께서 주시는 열매는 사랑, 기쁨, 평화, 인내, 친절, 선행, 진실, 온유, 그리고 절제입니다. 이것을 금하는 법은 없습니다"(갈라 5, 22-23).
(1) 사랑
사랑은 가장 기본이 되는 열매이면서도 제일 중요한 것입니다. 하느님의 가장 큰 계명은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사랑은 아가페적인 사랑이며, 이 사랑의 가장 좋은 본보기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십니다. 예수께서는 모든 인간을 위하여 자신의 생명을 바치셨습니다.
우리가 우리 마음에 맞는 사람들만 사랑한다는 것은 이기주의의 한 형태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기주의적이 아닌 무조건적인 사랑을 하도록 부름을 받았습니다(마태 5, 43-48). 이런 사랑을 우리 힘만으로 한다면 불가능하겠지만 하느님과 함께라면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짐으로써 우리를 하느님의 힘으로 변화시켜 원수까지도 사랑할 수 있도록 하십니다.
(2) 기쁨
여기서 말하는 기쁨은 좋은 음식, 좋은 옷을 얻었다든가 목적을 달성하여서 오는 외적인 환경에서 생기는 기쁨이 아니라, 특별한 이유도 없이 안에서 솟아나는 내적인 기쁨을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께서 주시는 기쁨은 세상이 주는 기쁨과 다르다고 말씀하셨습니다(요한 16, 22-24). 이 기쁨은 언제나 행복한 감정에 머무르려고 애쓰는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도 주님과의 계속적인 친교에서 오는 것으로 우리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깊은 환희인 것입니다. 이것은 어려운 환경에서도 우리에 대한 주님의 사랑을 감지할 수 있는 상태에서 오는 결과인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오로는 "주님과 함께 항상 기뻐하십시오. 거듭 말합니다. 기뻐하십시오."(필립 4, 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3) 평화
성령의 열매로서의 평화는 다투거나 소란스럽거나 바쁘거나 한가롭거나에 관계없이, 어떠한 외적인 환경에도 관계없이 내적인 평화를 누리는 것을 말합니다. 주님의 평화 안에 사는 사람은 일이 잘되거나 잘못되거나 관계없이 항상 모든 일이 서로 작용해서 좋은 결과를 이룬다는 말씀(로마 8, 28)을 깊이 이해하는 사람입니다. 예수께서는 우리가 충만한 당신의 평화를 갖기를 원하시며, 이미 그 평화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요한 14, 27). 이 충만한 평화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에페 3, 14-18).
(4) 인내
인내란 우리가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을 때 체념하여 수동적으로 그 어려움을 받아들인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적극적으로 고통을 참고 견디어 내는 능력, 기다리는 능력과 일상 생활에서 단조롭고 지루함을 참는 능력도 내포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렇게 견디어 내는 노력을 통한 성장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인내는 결단력을 요구하기도 하며 목적이 달성될 때까지 지속되는 힘이며, 저항이나 고통에 맞서서 포기하지 않는 저력을 뜻합니다. 인내의 열매는 하루아침에 성숙되지 않으며 오랜 시일에 걸쳐서 점차적으로 성숙합니다. 특히 이 열매는 일이 잘될 때보다는 시련과 고통 속에서 맺어지게 됩니다.
(5) 친절
성령의 열매로서의 친절은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우러나오는 것을 말합니다. 친절은 이웃에 대한 너그러움, 용서, 희생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열매를 맺은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 부담감 없이 대화하며, 이런 사람과 같이 있으면 왠지 마음이 편하고, 처음 보더라도 친한 사람처럼 여겨지며 대인 관계도 원만하게 됩니다.
(6) 선행
하느님 말씀에 따라 하느님께서 원하시고 동의하시는 것을 행하는 것입니다. 선에서 흘러나오는 행동은 순수하며 진정한 것이지, 결코 거칠거나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며 영예롭고 도덕적이며 고결합니다(필립 4, 8).
(7) 진실
진실한 사람은 하느님께 믿음을 두고 있으며 하느님 말씀이 자기 마음에 맞건 안 맞건 언제나 순종합니다(창세 12장: 아브라함). 예수 그리스도께서 진실하고 슬기로운 종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루가 12, 42-47). 우리가 하느님 앞에 내세울 것은 진실밖에 없다고 생각됩니다. 진실이란 있는 그대로 어린 아이처럼 단순하게 되는 것입니다.
(8) 온유
온유하다는 것은 우리의 힘이 자제되어 있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의 분노가 죄악이나 온당치 못한 무자비함으로 빠지지 않음을 뜻합니다. 또 온유한 사람은 화를 내는 일 없이 남의 충고를 사랑으로 받아들이고 하느님의 말씀에는 온순히 따르지만 악에 저항하는 데는 슬기로운 힘을 갖고 있습니다.
(9) 절제
절제는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의 뜻에 따르려는 능력으로 우리의 감정과 욕망을 지배하는 것입니다. 우리 생활의 많은 영역에서 끊어 버려야 할 욕망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 욕망에 대항하는 구체적인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언제나 쉬운 일은 아닙니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은 술을 절제하지 못하며, 어떤 이는 도박, 어떤 이는 성적 욕구를 자제할 수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자신의 의지력이나 결심이 이런 욕망들을 자제하는 데 부족함을 알게 됩니다. 그런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 성령의 도움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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