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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인물] 성경 속의 여인들: 수넴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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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2-02-19 조회수2,181 추천수0

[성경 속의 여인들] 수넴 여인

 

 

수넴 여인은 부유했고 개방적이었다.(2열왕 4, 8 참조) 음식을 청하는 엘리사의 청을 기꺼이 받아들였고, 쉴 수 있는 공간까지 마련하는 정성을 보였다. 이유인즉, 엘리사가 ‘하느님의 거룩한 사람’이라고 수넴 여인은 생각했기 때문이다.(2열왕 4, 9 참조) 엘리사를 향한 여인의 지극정성은 하느님에 대한 경외와 사랑을 품고 있다. 여인은 그것으로 되었다.

 

문제는 엘리사에게 있었다. 굳이 여인의 부족함을 찾으려 한다. “내가 부인에게 무엇을 해 드리면 좋겠소?”(2열왕 4, 13) 받은 것에 고마움을 표현하는 방식은 여럿 있다. 다만, 굳이 돌려주어야 받은 것에 보답했다는 논리는 일방의 정성을 쌍방의 교환으로 타락시킨다. 여인의 답은 명확했다. “잘 지내고 있습니다.”(2열왕 4, 13) 부족하나 이것이 제 삶이고, 그것으로 저는 잘 지냅니다로 읽힌다.

 

그럼에도 엘리사는 수넴 여인에게 아들을 약속했고, 여인은 아들을 낳았다. 아들이 없던 여인에게 아들은 기쁜 선물이고 축복이겠으나 여인의 반응과 응답은 이야기 안에서 철저하게 제거되어 있다. 아들의 탄생을 하느님의 축복으로 그려내는 구약 성경의 관행과 거리가 있다. 이야기는 참 담백하게 쓰였으나 참으로 차갑다는 인식을 지울 수 없다.

 

차가움의 감각은 아들이 죽는 장면에서 최고조에 이른다. 아들이 죽어서가 아니라, 그 죽음을 대하는 수넴 여인의 차가움에 호흡마저 멎는 느낌이다. 죽은 아들을 조용히 ‘하느님의 사람의 침상’에 누인다. 남편에게 아들의 죽음조차 알리지 않는다. 다만, 하느님의 사람, 엘리사에게 가고자 했다. 가는 길에서 멈추지 말아야 했고, 곧장 가자고 종을 다그친다. 엘리사의 종 게하지의 안부 인사에 여인은 놀랍게도 ‘평안하다’고 답한다. 그리고 다만 엘리사의 두 발을 붙잡고 떨어지려 하지 않는다. 이게 전부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이가 없을 때도 바라지 않았고, 아들을 얻고 죽었어도 바라지 않았다. 무엇이었을까. 그토록 집요하게 하느님의 사람 엘리사를 찾았으나 제 맘속의 그 어떤 부족함이나 간절함조차 내뱉지 않는 저 무서운 힘의 근원은.

 

부족함에 울고 부족함에 짓눌려 늘 배고픈 인생을 사는 우리에게 수넴 여인은 무욕에 대한 감각을 일깨운다. 잘 지내고 있다, 평안하다는 결코 잘 지내지도 평안하지도 않지만 그럼에도 그렇게 사는 게 제 인생이라는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이의 무서운 말들이다. 아들이 없는 결핍에 부끄러워하거나 아파하지 않았고 아들을 잃는 슬픔에 짓눌려 무너지지도 않았다. 수넴 여인의 무욕은 도인의 비움이 아니라 삶의 격정적 사건들을 차갑게 대할 줄 아는 뜨거운 간절함이 아닐까. 하느님을 믿는다고 호들갑 떨거나, 하느님께 선물을 받았다고 저 혼자만의 감동에 휩싸이거나, 하느님께 버림받았다고 제 인생을 찢어 놓고 원망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수넴 여인은 엘리사에게 지극 정성이었고, 엘리사에게 간절했다. 엘리사는 아들을 살렸고 수넴 여인은 아들을 데리고 나갔다.(2열왕 4, 37 참조) 삶이 간절하고 그로 인해 뜨거울수록, 삶에 대한 우리의 호흡 사이에 차가운 바람 하나 흘려도 좋을듯하다. 너무 뜨거우면 삶이 재가 되고 마니까….

 

[2022년 2월 20일 연중 제7주일 대구주보 3면, 박병규 요한보스코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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