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구약] 성경 인물 이야기: 입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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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22-02-26 | 조회수2,107 | 추천수0 | |
[함신부가 들려주는 성경 인물 이야기] 입타 (1)
판관 입타 시대는 이스라엘 백성의 우상숭배가 극심했습니다. “그들은 바알들과 아스타롯, 아람의 신들, 시돈의 신들, 모압의 신들, 암몬 자손들의 신들, 필리스티아인들의 신들을 섬겼다.”(판관 10,6) 이렇게 하느님을 저버린 결과 이스라엘 백성은 필리스티아인들과 암몬인들에게 짓밟히고 억눌리게 되었습니다. 그제야 그들이 뉘우치며 하느님의 도움을 청하자, 하느님께서 ‘힘센 용사’(판관 11,1) 입타를 보내주십니다.
가드 지파 출신인 입타는 서자로 태어나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았고 지파에서 쫓겨나 므나쎄 지파 땅을 떠도는 신세가 됩니다. 그런데 판관 11,3은 입타가 건달들과 함께 노략질했다고 하는데, 꼭 이렇게 부정적으로 번역할 필요는 없습니다.
건달로 번역한 히브리어 ‘아나쉼 레킴’은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이들, 아무것도 아닌 이들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사실 히브리어 ‘야차’를 노략질로 번역한 외국어 성경도 드뭅니다. 따라서 입타 주변에 그와 비슷한 처지인 사람들이 모여들었다고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힘센 용사인 입타가 전쟁의 승리를 가져오리라고 기대하는데, 입타는 전쟁의 주인공은 하느님이시라고 합니다.(판관 11,9) 이렇게 하느님을 마음에 품고 사는 사람이 강도단의 수괴였으리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겠지요.
암몬인들이 이스라엘을 공격한 명분은 이들이 자신들의 땅을 무단으로 점유했다는 것이었습니다.(판관 11,13) 이에 대해 입타는 판관 11,15-27에 걸쳐 길게 반박합니다. 입타는 출애굽 경로를 상세히 밝히며 이스라엘의 영토가 암몬과 상관이 없다고 주장하는데, 이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입타 외에 누구도 이 사실을 암몬인들 앞에서 말한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자기들의 역사를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역사를 잊어버렸으니 당연히 그 역사 속에서 당신을 계시하신 하느님도 잊게 된 것이죠.
그런데 입타만은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 홀로 하느님 신앙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었다고도 말할 수 있겠습니다. 입타가 힘센 용사였기 때문이 아니라, 바로 이 점이 하느님께서 그를 판관으로 선택하신 까닭으로 보입니다.
입타는 암몬인들에 맞서 싸워 큰 승리를 거둡니다. 그런데 입타의 이야기는 그냥 이렇게 해피 엔딩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아직 입타는 우리에게 중요한 무엇인가를 더 말하고 싶어 합니다. [2022년 2월 27일 연중 제8주일 가톨릭안동 3면, 함원식 이사야 신부(갈전마티아 본당 주임)]
[함신부가 들려주는 성경 인물 이야기] 입타 (2)
입타는 하느님께서 싸워주시니 이길 수밖에 없는 전쟁을 위해 서원을 합니다. “당신께서 암몬 자손들을 제 손에 넘겨만 주신다면, 제가 암몬 자손들을 이기고 무사히 돌아갈 때, 저를 맞으러 제 집 문을 처음 나오는 사람은 주님의 것이 될 것입니다. 그 사람을 제가 번제물로 바치겠습니다.”(판관 11,30-31)
입타의 서원은 불필요할 뿐 아니라 잘못된 것 같습니다. 가나안에서는 가장 귀한 제사로 여겨졌으나 하느님께서는 엄하게 금하신 인신공양(人身供養)의 가능성을 내포한 서원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한편 유다 전통은 다른 관점에서 이 서원의 잘못을 지적합니다. 만일 입타가 처음 만나는 대상이 부정한 개라면 그것을 어떻게 하느님께 바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잘못된 서원은 불행한 결과를 낳습니다. 승리하고 돌아온 입타를 가장 먼저 맞이한 이는 다름 아닌 그의 무남독녀였습니다. 전통적인 해석은 입타가 실제로 딸을 번제물로 바쳤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를 그린 수많은 성화도 인신공양의 장면을 담고 있습니다. 이러한 해석의 근거가 되는 결정적인 구절은 판관 11,37입니다: “처녀로 죽는 이 몸을 두고 곡을 하렵니다.” 이 끔찍한 사건 앞에서 우리 신앙인들은 큰 충격을 받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어떻게 사람을 태워 바치는 제사를 받으실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다른 해석의 가능성도 존재합니다. 판관 11,31에 들어있는 히브리어 접속사 ‘브’는 ‘혹은’으로도 번역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랍비 중에서도 입타의 서원을 두 가지 가능성을 가진 것으로 해석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즉, 사람일 경우는 하느님께 봉헌하고 동물일 경우는 번제물로 바치겠다는 서원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입타의 딸은 번제물로 바쳐지는 대신 혼인하지 않고 평생 성막에서 봉사하는 여인으로 봉헌된 것으로 봅니다.
어쨌든 이 경우도 입타나 딸에게 기쁜 일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비통함으로 가득 찬 둘 사이의 대화를 들어보면 그 사실을 잘 알 수 있습니다. 물론 하느님께 봉사하는 일은 영광스러운 것이지만, 고대 이스라엘 사회에서 여인의 최고의 행복은 결혼하여 많은 자손을 낳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입타의 서원에서 잘못된 것은 인신공양이 아니라, 마치 자신이 미래를 관장하는 듯한 착각에 빠진 것입니다. 입타가 자기 서원의 대상이 딸이 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듯이, 우리 또한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지 못합니다. [2022년 3월 6일 사순 제1주일 가톨릭안동 3면, 함원식 이사야 신부(갈전마티아 본당 주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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