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이야기] 타작마당
알곡과 쭉정이 골라내듯 주민들 재판장으로 쓰여
고대 이스라엘이 재판을 하던 장소는 성문 앞이었다. 임금이나 원로가 그곳에 앉아 주민들 사이에서 시비를 가려 주었다(아모 5,10 참조). 그래서 백성은 문제가 생길 때마다 성문 앞에 가서 호소하거나 조언을 구했다(신명 22,13-19 참조). 그런데 성경에는 타작마당도 재판 장소로 나온다. 곡식 타작하는 곳이 어떻게 재판소가 되었나 의아할 수 있지만, 예부터 추수는 심판의 상징이었다. 타작마당은 9~10개월 동안 사용하지 않다가 추수 때 바빠진다. 이는 일생 동안 쌓은 선과 악을 마지막 순간에 헤아린다는 최후의 심판과도 비슷하다.
고대에는 마을마다 공동으로 사용하는 타작마당이 있었다. 농부들은 그곳에서 곡식을 떨며 알곡과 쭉정이를 골랐다. 알곡은 곡간에 쌓고 쭉정이는 태우거나 썩혀서 거름으로 쓴다. 그 때문에 알곡은 예부터 선을, 쭉정이는 악을 상징하게 되었다. 하느님 말씀에 순종하면 알곡이 풍성해지지만(레위 26,3 참조), 불순종과 방종은 쭉정이로 태워지는 결과를 낳는다. 예언자들도 타작마당 모티프를 백성을 꾸짖는 심판 신탁에 자주 사용했다(미카 4,12: “그들은 주님의 의도를 깨닫지 못한다. 곡식 단들을 타작마당으로 모으듯 그들을 모아들이신 것을” 등 참조).
- 예루살렘 다윗 성채 박물관에 전시된 다윗의 성 모델. 성 밖 오른쪽 윗부분이 아라우나의 타작마당 자리(점선 부분).
보리나 밀 타작은 단시간에 끝나는 작업이 아니었기에, 밭주인들은 장막을 치고 며칠 타작마당에 머물며 작업을 지도했다. 보아즈도 타작마당에서 잠을 자다가 룻을 맞이한다(룻 3,3). 당시 타작마당은 곡식이 밖으로 튀지 않도록 돌을 쌓아 둥그렇게 경계를 만들었다. 안쪽은 돌을 제거하고 평평하게 한 다음 단단하게 다졌다. 이 관습은 바빌론의 몰락을 타작마당에 비유한 예레미야 신탁을 쉽게 이해하게 해준다(51,33): “딸 바빌론이 타작마당처럼 짓밟힐 때가 온다. 이제 곧 바빌론에 수확 때가 닥친다.” 곧, 바빌론이 추수 때의 타작마당처럼 다져지고 짓밟히리라는 뜻이다. 타작마당은 겨가 쉽게 날아가도록 바람이 잘 통하는 언덕에 만들었으며, 이 관습도 여러 예언서에 암시된다(이사 41,15-16 호세 13,3 등 참조). 곡식 양이 적을 때는 막대기나 도리깨로 알곡을 떨지만(이사 28,27 참조), 양이 많으면 가축이 타작기를 끌고 곡식 위를 지나가며 타작한다(신명 25,4 참조). 그러면 가축과 타작기 무게로 알곡이 빠져나온다. 그래서 예언서에는 이런 표현이 나온다(이사 2,10): “짓밟힌 나의 백성아 타작마당에서 으깨진 나의 겨레야.” 타작마당은 재판뿐 아니라 예언 등 종교 행사를 하는 장소로도 사용되었다(1열왕 22,10: “이스라엘 임금과 유다 임금 여호사팟은 사마리아 성문 어귀의 타작마당에 마련된 왕좌에 앉아 있었고, 그들 앞에서는 모든 예언자가 예언하고 있었다” 참조). 그리고 타작마당 비유는 신약까지 이어져 최후의 심판을 상징하게 되었다(루카 3,17): “손에 키를 드시고 당신의 타작마당을 깨끗이 치우시어, 알곡은 당신의 곳간에 모아들이시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워 버리실 것이다.”
2사무 24장에는 타작마당에 얽힌 중요한 일화가 나온다. 다윗이 행한 인구조사가 주님의 분노를 사자 이스라엘에 흑사병이 내렸다. 사흘 뒤 심판을 주도하던 천사가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에 있을 때에야 재앙이 멈추었다(16절). 그러자 다윗은 그 타작마당을 사들여, 그곳에서 용서를 구하는 번제물을 바친다. 인구조사가 죄가 된 까닭은 주님의 약속을 의심하는 행위였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이스라엘을 ‘셀 수 없이 많은 백성’으로 만들어 주겠다고 약속하셨다(창세 15,5 등). 그러므로 인구수를 굳이 세어 보는 건 주님 약속에 대한 도전이 된다. 모세가 인구조사를 할 때도 목숨값에 해당하는 속전을 바쳤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탈출 30,12). 아마 다윗은 주님께 의지하기보다 인구 숫자를 파악해 제 힘으로 통치하려는 유혹에 빠졌던 것 같다.
이 일화에도 타작마당은 심판에 관련된 장소로 나온다. 게다가 다윗이 타작마당에서 회개한 뒤 재앙이 멈추었기에(17절), 회복을 가져온 곳이기도 하다. 나중에 솔로몬은 그 위로 성전을 봉헌했는데, 공교롭게도 그곳은 아브라함이 이사악을 바치려 한 모리야 산이기도 하다(2역대 3,1). 그리고 신약 시대에는 예수님이 운명하실 때 성전 지성소의 휘장이 갈라져,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화해가 이루어졌음을 알렸다. 그러므로 타작마당이 지닌 심판과 회복 의미가 옛 성전에 담기고 이제는 예수님을 통해 우리에게도 전달되었으니, 그 역사가 무척 흥미롭다 하겠다.
* 김명숙(소피아) 이스라엘 히브리 대학교에서 구약학 석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예루살렘 주재 홀리랜드 대학교에서 구약학과 강사를 역임했으며 현재 한님성서연구소 수석 연구원으로 활동 중이다.
[가톨릭신문, 2015년 12월 13일, 김명숙(소피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