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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종업 | 작성일2016-01-22 | 조회수1,647 | 추천수2 | 신고 | ||||||||||||||||||||||||||||||||||||||||||||||||||||||||||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소아시아 일곱 교회
1. 에베소 교회 [셀죽 요한무덤 교회]-항구도시 에베소교회(셀죽 요한무덤교회)
에페소스 라고 하며, 현재명은 셀주크이다. 물론 에베소 유적지는 따로 있다. 당시 에베소는 실질적인 소아시아 지역의 수도라 할 만큼 교역과 교통, 정치와 종교의 중심도시였다. 로마의 독립 행정관이 다스렸고 순회재판소도 있었다. 에베소 유적지에는 수천명이 들어가는 야외 음악당과 셀슈스 도서관, 법원, 병원, 사우나 탕과 아고라 지역이 있었고, 티베리우스, 트라얀, 하드리안, 도미시안 등 로마 황제의 신전과 함께, 아테나, 아데미 신전도 있었다. 에베소 교회는 바울이 3차 전도여행시 3년을 머물러 세운 교회로, 현재의 에베소교회 유적지는 셀죽에 있는 사도 요한 무덤교회를 말하고 있다. 셀죽성 아래에 자리잡은 사도요한 무덤교회는, 아래쪽에 아데미 신전터가 보이는 곳에 위치해 있다. 비잔틴시대에 세운 교회이다.
2. 서머나(스미나르) 교회[폴리캅기념 교회]-칭찬 들음 서머나교회(폴리캅기념교회)
서머나교회
내부
스미르나 라고 하며 현재명은 이즈밀이다. 터키 남부의 미항으로, 큰 도시이다. 현재의 교회는 아시아 7교회 중 유일하게 건물이 있는 곳으로, 황제 숭배를 거부해 순교한 서머나 감독 폴리캅을 기념하여 세운 교회이다. 당시 서머나에는 많은 유대인들이 살았고, 그들은 기독교인들을 잔학하게 탄압하였다. 또한 로마 황제 숭배 거부로, 서머나 교회는 많은 재정적 궁핍을 겪었다. 그럼에도 서머나교회는 모든 핍박과 유혹을 물리치고, 열렬한 신앙을 지켜, 가장 모범적인 교회로 칭찬을 받았다.
3. 버가모(페르가몬) 교회 버가모교회(세라피스신전)
세라피스 신전은 레드 홀(Red Hall)로, 이 신전 밑에는 세리누스(Selinus) 강이 흐르도록 설계 하였다. 이 신전은 2세기에 이집트의 신 세라피스를 위해 지은 것이어서 이집트 신전이라고도 하며, 붉은 벽돌로 지어져 ‘붉은 정원’이란 뜻의 '크즐 아블루'라고도 불린다. 신전의 규모는 가로 100m, 세로 260m에 이르고, 높이도 20여m에 달해 그 규모가 매우 웅장한 편이다. 지금은 건축물의 벽채만 남아 있다.
4.두아디라 (티아타라)교회 두아디라교회-1
두아디라교회-2
두아디라 교회-4
두아디라 교회, 티아티라고 하며 현재명은 아크히사르이다. 당시 이 도시에는 트림나스라는 무당이과 무녀(巫女)들이 많아 기독교인들을 유혹했고, 또한 시장 조합을 중심으로 우상 숭배와 음란한 제사들이 행해지고 있었다
두아디라는 옷감 기술이 뛰어난 곳으로, 빌립보의 루디아도 두아디라 출신으로, 자주 옷감 장사를 하여 부자가 되었다.
5. 사데(사르다스)교회 사데교회
사르디스라 하며, 현재명은 살리히리이다. 사데 교회는 1세기 중반에 이루어졌다고 보고 있다. 사도 바울의 제자이며 일곱 집사 중의 하나였던 클레멘트가 사데 교회의 첫 감독이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사데 교회는 이 도시의 역사와 마찬가지로, 크게 부흥 하였다가 나중에는 쇠퇴하는 우여곡절을 경험한다. 사도 요한이 사데 교회에 편지를 쓸 당시의 교회지도자는 누구였는지는 밝혀져 있지 않다. 처음에는 아데미신전을 빼앗아 예배드리다가 (4세기경 로마가 기독교를 공인한 후 권세를 얻었을 때쯤), 후에 신도의 숫자가 작아져 아데미신전 담 밖에 돌담을 싸놓고 예배드린 것 같다고 한다. 초기 기독교 당시 신도 수는 매우 많았으나, 영적으로는 미약하였다. 때문에 "너는 살아 있다고 말하나 실은 죽어가고 있다!"란 책망을 받았다. 사데 지역은 황금이 많은 지역으로 재물의 유혹이 있었고, 또한 아데미 여신을 섬기는 신전이 있어, 신앙생활에 큰 어려움이 있었다. 현재의 사데교회 유적은 아데미 신전 뒤편에 비잔틴 시대에 벽돌로 지은 교회이다.
6. 빌라델비아교회-칭찬 들음 빌라델비아교회-1
빌라델비아교회-2
필라델피아는 현재명으로 알라세히르이다. 주님께 칭찬만 받았던 교회로, 초대교회 당시 교회는 크지 않았으나, 디오니소스 신전과 황제 숭배의 핍박을 이겨낸 교회였다. 현재의 유적은 동 로마 제국 비잔틴 시대(AD600년경)에 세운 것으로, 성 요한의 교회로 세워졌다.
7. 라오디게아 교회 라오디게아
라오디케아는 현재명도 라오디케아 이다. 당시 라오디케아는 양모가 풍부하고 안약 등 의약품이 유명했으므로, 재물의 유혹과 생활의 편안함으로, 미지근한 교회로 책망을 받았다. 특히 라오디케아 지역은 물이 좋지않아, 멀리 히에라볼리 파묵칼레로부터 관을 통해 온천수를 공급받았고, 또한 골로새로부터는 냉수를 공급받았으나 ,오는 도중 물이 식어 미지근 하게 되었다. ~보시고 참고 하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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