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속 나는 누구인가 (22) 파스카의 절정인 미사
우리는 미사에서 무엇을 체험하는가? 누구나 미사에 단 한번만 참여해도 그는 벌써 수많은 신구약 성서구절을 듣고 외우며 노래하게 된다.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렇게 된다. 물론 매일미사나 주일미사 독서는 신구약성서 말씀 그대로다. 그밖에 미사 안에는 주님의 기도(마태 6,9-13 루카 11,2-4)를 비롯해 수많은 성경 구절이 인용된다. 앞서 성호경이 어디서 나왔는지를 보았다.
이제 세 번에 거쳐 외치는 ‘거룩하시(도)다’의 유래를 살펴보기로 한다. 이 외침은 이사야 예언서와 요한 묵시록에 각 한 번씩 등장한다. 이사야는 어느 날 예루살렘 성전에 발을 들여놓는다. 그때 그가 본 장면은 그자체로 실로 엄청난 사건이었다.
그는 자신의 이 소명체험 앞부분을 섬세히 묘사해준다.
“우찌야 임금이 죽던 해에, 나는 높이 솟아오른 어좌에 앉아 계시는 주님을 뵈었는데… 그분 위로는 사랍들이… 저마다 날개를 여섯씩 가지고서, 둘로는 얼굴을 가리고 둘로는 발을 가리고 둘로는 날아다녔다. 그리고 그들은 서로 주고받으며 외쳤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만군의 주님…’”(이사 6,1-3)
눈앞에 수많은 천상의 존재(천사들)가 하나같이 두 날개로 얼굴을 가리고 있다. 얼굴을 가린다는 것은 눈을 가려 앞을 보지 않는다는 뜻이다. 두 날개로 발을 가렸다는 것은 속살을 전혀 드러내지 않는다는 뜻이다. 엄위의 하느님 면전에서 하늘의 존재들까지도 눈을 들어 주 하느님을 볼 수 없으며 살을 드러내 보일 수 없다는 관념에 따른 것이다.
이는 그 누구도 하느님을 직접 눈을 볼 수 없다는 구약의 전승에 따른 것이다. 영원한 분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신다. “(아무도)내 얼굴을 보지는 못한다. 나를 본 사람은 아무도 살 수 없다”(탈출 33,20). 물론 구약에는 주님 자비를 입은 모세가 하느님을 뵙고 그분과 직접 대화를 나누었다는 전승도 있다. “주님께서는 마치 사람이 자기 친구에게 말하듯, 모세와 얼굴을 마주하여 말씀하시곤 하였다”(탈출 33,11ㄱ).
이사야는 지상 예루살렘 성전에서 본의 아니게 천상 예루살렘에서나 있을 법한 하늘나라 하느님 체험을 하게 된다. 천사와 같은 하늘의 존재들조차도 감히 맛볼 수 없는 지고의 하느님을 눈으로 직접 뵙는 체험을 한다. 그때 그가 들은 천사들의 노랫소리는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는 외침뿐이었다. 그런데 이사야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얼떨결에 천상 하느님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그 모든 장면을 똑똑히 바라다보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요한 묵시록에 나오는 장엄한 천상전례를 보자.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전능하신 주 하느님 전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시며 또 앞으로 오실 분!”(묵시 4,8ㄴ) 하늘의 천사들이 외치고 있다. 이사야 예언서에서처럼 천상존재들이 ‘주 하느님께서 거룩하시다’는 찬미가를 끊임없이 읊고 있지 않은가!
‘거룩하시다’에 얽힌 이러한 배경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서 미사에서 세 번에 거쳐 ‘거룩하시(도)다’를 노래한다면 우리가 봉헌하는 미사의 의미가 더욱 깊고도 흥미롭게 솟아오를 것이다. 아울러 미사에 임하는 기본자세부터 상당히 달라지리라.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분이시니, 이 성찬에 초대받은 이는 복되도다.” 이 외침의 전반부는 요한 1,29에서 후반부는 묵시 19,9에서 따왔다. “주님, 제안에 주님을 모시기에…”는 복음서의 인용이다(마태 8,8 루카 7,7) 그밖에도 파스카의 절정인 미사에서 우리는 수많은 성경구절을 찾아낼 수 있다. 그러니 가톨릭신자가 성경을 아예 모른다고 말한다면 지나친 겸손이 아닐까?
* 신교선 신부는 1979년 사제수품 후, 스위스 루체른 대학교에서 성서주석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수원과 인천가톨릭대학교 교수를 역임, 현재 주교회의 성서위원회 총무와 신앙교리위원회 위원, 인천 작전동본당 주임으로 사목 중이다.
[가톨릭신문, 2014년 11월 2일, 신교선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