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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일흔두 제자 카테고리 |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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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정임 쪽지 캡슐 작성일2016-01-29 조회수957 추천수1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홍승모 신부(인천가톨릭대학교 교수)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일흔두 제자들을 둘씩 파견하시면서 이런 권고를 하십니다.
"돈주머니도, 여행 보따리도, 신발도 지니지 말고, 길에서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마라.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먼저 '이 집에 평화를 빕니다'하고 말하여라"(루카 10,4-5).
일흔두 제자와 열두 사도들을 합친 수는 하느님 백성을 의미하는 12라는 숫자와 완전성을 의미하는 7이라는 숫자가 곱해진 수와 같습니다. 따라서 일흔두 제자라는 의미는 하느님의 모든 자녀들을 상징합니다. 곧 하느님의 모든 자녀들은 주님께서 전해주신 복음을 선포하는 사람이 돼야 한다는 뜻입니다.
복음 선포자는 바로 하느님 말씀과 하느님 나라를 위해 열린 마음을 지닌 사람들인 것입니다. 주님께서 열두 사도들을 파견하실 때와 달리(루카 9,1-6), 일흔두 제자들을 파견하시면서 둘씩 짝지어 보내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둘이 함께 한다는 것은 복음 선포자로서의 정당성을 서로 증거하기 위해 일치하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서로를 받아들이고 열린 마음으로 이해의 폭을 증진시키는 끊임없는 기도와 성찰을 전제해야 합니다.

이제 복음은 복음 선포를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바로 주님을 향한 신뢰라는 사실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돈주머니나 여행 보따리나 신발은 세상에 살아가면서 우리가 전적으로 믿고 의지하는 그 무엇인가를 상징합니다.
그러나 복음 선포를 위해 가장 필수적인 것은 함께 하시는 주님에 대한 신뢰인 것입니다. 복음 선포자의 기쁜 소식은 자신에서가 아니라 주님에게서 비롯되기 때문입니다. 신뢰를 잃어버리면 더 이상 주님 뜻이 펼쳐질 수 없습니다. 주님을 믿지 못할 때, 거기에는 주님이 계신 것이 아니라, 자신만을 생각하는 이기심이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성찰해야 합니다.
자신만을 생각하는 삶, 그것이 바로 이리로 상징되는 세상입니다. 양과 이리는 서로 먹고 먹히는 관계에 있는 주님과 세상을 비교하고 있습니다. 양이 사랑과 가난과 겸손을 상징한다면 이리는 이기심과 소유욕과 교만을 상징합니다.
모든 사람들 내면에 감춰진 모습 뒤에는 동물적인 폭력과 잔인함이 숨겨져 있습니다. 이리는 바로 인간의 본성 안에 자리 잡고 있는 폭력과 잔인함을 비유하고 있습니다. 이런 본성이 결국은 자신만의 삶을 위해 양을 도살할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희망을 잃지 않고 주님의 평화를 선포해야 합니다. 주님의 평화는 주님이 함께 계신다는 확신을 갖고 삶에서 닥치는 두려움과 불안을 떨쳐 버리는 것에서 나옵니다. 그렇기에 복음 선포는 추상적이고 거창한 것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아주 가까이 있습니다.
복음에 따르면(루카 10,5-9), 복음 선포는 평화를 기도해주는 말씀으로 시작해, 함께 머무는 것, 함께 먹는 것, 함께 돌보아주는 것이며, 마지막으로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음을 선포하는 말씀으로 끝납니다.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말씀은 바로 삶의 방향을 바꾸고 변화시켜야 한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발에 묻은 먼지를 털고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사실을 경고하는 경우도 발생합니다.(루카 10,11) 복음 선포가 가져 올 기쁜 삶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주시는 참된 기쁨을 신뢰하지 않고 무너뜨리는 이기적인 모든 행위와 말의 근원에는 사탄이 있습니다.
사탄은 히브리말 그대로 모든 말씀을 거스르는 부정적 의미의 반대, 거부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거부하고 반대하는 합리적 이유를 우리 마음에 일으켜 우리를 동요시킵니다. 사탄은 우리를 거짓 행복에 빠지게 하고, 결국 자신이 행복하지 못한 것이 상대방의 탓이라고 여기게 이끕니다. 그래서 주님의 사랑이 아니라 분노와 미움과 적개심을 갖게 합니다. 결국 상처를 입히고 신뢰를 회복하지 못하는 상황으로 자신을 몰아갑니다.
복음 선포자는 주님께서 주시는 지혜와 은총에 전적으로 의지하지 않으면 점점 꺼져가는 촛불이 될 수도 있습니다. 촛불의 기름은 한계가 있지만, 주님의 은총은 무한합니다. 삶의 기쁨과 행복을 주시는 분은 늘 함께 계시는 주님뿐입니다. 오직 주님만이 평화와 영적인 복을 베푸시고 열매를 맺게 해주실 수 있습니다. 이 사실을 믿는 것이 믿음이고 이것이 참된 복음 선포일 것입니다.
"나는 사탄이 번개처럼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여라"(루카 10,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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