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구약] 성경 인물 이야기: 룻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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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22-04-03 | 조회수3,704 | 추천수0 | |
[함신부가 들려주는 성경 인물 이야기] 룻 (1)
룻은 여성으로서는 드물게 성경 안에 그의 이름을 딴 책이 독립적으로 존재합니다. 도대체 룻은 어떤 인물이었기에 이러한 영광을 누리게 되었을까요?
예수님의 족보에도 등장하는 모압 여인 룻은 엘리멜렉과 나오미의 며느리입니다. 엘리멜렉은 ‘나의 하느님은 왕’이라는 뜻이고, 나오미는 ‘나의 기쁨’이라는 뜻입니다. 룻은 아직 이스라엘의 왕이 없던 판관 시대에 하느님을 왕으로 모시는 일을 기쁨으로 삼던 신실한 가문으로 시집온 것이지요.
이방인인 룻이 이스라엘 집안과 인연을 맺게 된 배경은 이렇습니다.
이스라엘에 큰 기근이 듭니다. 이스라엘에서 비교적 비옥한 곳이어서 빵집이라는 이름을 가진 베들레헴까지 기근이 들었다는 것은 이스라엘 전체에 심한 기근이 들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야곱 가문이 이집트로 내려갔듯이, 베들레헴에 살던 엘리멜렉 가문은 생존을 위하여 기근이 들지 않은 요르단강 건너편 모압 지방으로 이주합니다.
모압은 현재의 요르단입니다. 지금의 이스라엘과 요르단 사이의 관계와 마찬가지로 판관 시대에도 아브라함의 후손인 이스라엘과 그의 조카 롯의 후손인 모압은 서로 적대하는 관계에 있었음에도 그런 위험한 결정을 내린 것은 그만큼 절박한 상황이었음을 암시합니다.
모압에서 엘리멜렉이 죽고, 아내 나오미는 모압 여인들을 며느리로 맞이합니다. 그런데 오래지 않아 두 아들도 모두 죽습니다. 그래서 집안에는 남자 없이 나오미와 두 며느리 오르파와 룻만 남게 됩니다.
그러던 차에 이스라엘의 기근이 끝났다는 소식을 들은 나오미는 타향 생활을 정리하고 고향으로 돌아가려 합니다. 이때 나오미는 두 며느리가 아무 연고도 없는 데다 남편까지 없는 곳에서 힘겨운 타향살이하기를 원치않아 그들을 친정으로 돌려보내려 하지만 룻은 나오미를 따릅니다. [2022년 4월 3일 사순 제5주일 가톨릭안동 3면, 함원식 이사야 신부(갈전마티아 본당 주임)]
[함신부가 들려주는 성경 인물 이야기] 룻 (2)
흥미롭게도 룻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제 이름대로 행합니다. 마흘론(나약함)과 킬욘(초췌함)은 일찍 죽습니다. 오르파(돌아가는 자)는 친정으로 돌아갑니다. 룻(친구)은 의리를 지키죠. 나오미(나의 기쁨)는 인생 말년에 룻으로 말미암아 기쁨을 얻게 됩니다. 엘리멜렉(나의 하느님은 왕)은 모압 땅으로의 이주를 결정함으로써 다윗 왕의 조상이 될 며느리 룻을 얻게 됩니다. 보아즈(힘이 있는 자)는 룻을 거두어줄 수 있는 베들레헴의 유력인사였습니다.
그런데 룻은 단지 시어머니에 대한 의리만을 지킨 것이 아닙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그러했듯이 자기의 민족과 종교 등 모든 것을 버리고 하느님의 백성이 되기를 스스로 선택한 것입니다. 학자들은 모압인들을 적대시하는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간 룻이 아브라함보다 더 위험하고 무모해 보이는 결단을 한 것이라고도 합니다.
베들레헴으로 돌아간 나오미와 룻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안락한 삶이 아니었습니다. 철저한 가부장제 사회인 고대 이스라엘에서 여성의 생존은 남성에게 의존되어 있었습니다. 따라서 남성이 없는 여성들은 사회적 보호를 받지 못하며 경제적 활동도 할 수 없어 생계를 위협받았습니다. 그러니 나오미와 룻의 삶이 얼마나 어려웠을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추수 후 남은 이삭을 주워 겨우 연명해야 했습니다. 이것도 그나마 율법이 규정하는 독특한 추수 방식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밭의 가장자리까지 낫질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낫질 한 번에 잘리지 않은 이삭은 그냥 둬야 한다. 그것들은 가난한 이들의 몫이다.
룻이 이러한 상황을 전혀 예상치 못하고 나오미를 따른 것은 아닐 것입니다. 철저한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사회, 경제적 보호자 없이 낯설고 물선 곳에서 사는 것이 쉬우리라 생각했을 리 없겠죠. 영국의 시인 키츠는 그의 시에서 ‘저 종달새 소리는 룻이 고향 생각에 젖어 이방 땅 옥수수밭에서 눈물 흘리며 서 있을 때 들려온 소리겠지’라고 했습니다. 아람어로 기록된 룻기 타르굼이 있습니다. 이에 따르면 룻은 모압의 공주였는데, 그 안락하고 편한 삶으로 돌아갈 기회를 버리고 가시밭길일 것이 뻔한 삶을 선택한 것입니다. 룻의 이 선택은 하느님께 대한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입니다. [2022년 4월 10일 주님 수난 성지 주일 가톨릭안동 3면, 함원식 이사야 신부(갈전마티아 본당 주임)]
[함신부가 들려주는 성경 인물 이야기] 룻 (3)
룻기에서 유일하게 시적인 부분인 1,16-17는 룻이 야훼 하느님 신앙을 자발적이고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단지 나오미와 함께하려는 것뿐 아니라 하느님과 하느님의 백성과 함께하고자 하는 강한 열망을 보여줍니다. 룻은 하느님 백성의 혈연적 경계를 허물고 있습니다. 그러니 룻이 만민의 구세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인 것이 당연해 보입니다.
유다 전통은 룻을 첫 번째 개종자로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신명 23,4은 ‘암몬족과 모압족은 주님의 회중에 들 수 없고, 그들의 자손들은 십 대손까지도 결코 주님의 회중에 들 수 없다.’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룻의 개종은 불가능하지 않았을까요? 하지만 랍비들은 이 규정에는 3인칭 남성 동사가 사용되기에 모압 여인의 개종은 금지되지 않았다고 해석합니다.
가련한 처지의 룻을 친척인 보아즈가 돌보아줍니다. 율법은 고엘 제도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가문의 유력자가 어려운 처지에 있는 친척을 돌봐주는 제도입니다. 하지만 고엘의 의무를 포기할 수도 있었는데, 신발을 벗어버리는 행위로 그것을 표현했습니다. 그것은 대단히 불명예스러운 행위로 여겨졌는데도 재물에 대한 욕심 때문에 그렇게 하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보아즈는 그보다 우선순위의 고엘이 포기한 의무를 대신 맡았습니다.
룻과 보아즈의 결혼은 얼핏 보면 나오미의 뜻에 따라 이루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룻의 의지가 이룬 일입니다. 나오미는 룻에게 보아즈의 선택을 기다리라고 하는데, 룻은 적극적으로 행동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주인님의 종인 룻입니다. 어르신의 옷자락을 이 여종 위에 펼쳐 주십시오. 어르신은 구원자(고엘)이십니다.”(3,9) 이것은 결혼을 뜻하는 표현입니다. 여기서 룻은 자기를 종으로 부르는데, 이것은 자기 비하가 아니라 오히려 사회 최하층민이었던 이방 여인에서 결혼 상대자가 될 수 있는 여종으로 자신의 지위를 격상시키는 것입니다. 그러자 보아즈가 룻을 부르는 호칭도 딸에서 훌륭한 여인으로 바뀝니다(3,10). 결혼 상대자의 자격을 지니고 있음을 인정한 것입니다. 이렇게 룻은 자신의 운명을 바꾸기 위해 주체적으로 움직였습니다. 이는 고엘 제도라는 하느님의 율법에 대한 믿음에서 비롯된 용기입니다.
이렇게 룻은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이 되는 영광을 누리게 됩니다. 4,13은 룻의 오벳 잉태가 하느님의 뜻이었다고 합니다. 룻이 걸어온 길이 하느님의 뜻이라는 것을 확정하는 것입니다. [2022년 4월 24일 부활 제2주일(하느님의 자비 주일) 가톨릭안동 3면, 함원식 이사야 신부(갈전마티아 본당 주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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