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번제물 바치고 기도하러 당신 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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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전은 기도 공간이었을 뿐 아니라 이스라엘의 정치, 행정, 법률, 종교 문제를 의결하는 본거지였다. 사진은 이스라엘국립박물관에 있는 헤로데 성전 모형도. 리길재 기자 |
예루살렘 성전 안에서 수천 명의 사제와 수만의 유다인은 무엇을 했을까? 그 답은 시편에서 찾을 수 있다.
“내가 번제를 드리러 당신 집에 왔사옵니다. 서원한 것 바치러 왔사옵니다.… 숫양을 살라 향내 피우며 푸짐한 번제물을 드리고 염소와 함께 소를 드리옵니다”(공동 번역 시편 66,13.15). “거룩한 당신의 궁전 향하여 엎드려 인자함과 성실함을 우러르며 당신의 이름 받들어 감사 기도드립니다. 언약하신 그 말씀, 당신 명성보다 크게 펴졌사옵니다.…야훼여, 모든 일 나를 위해 하심이오니, 이미 시작하신 일에서 손을 떼지 마소서. 당신의 사랑 영원하시옵니다”(공동 번역 시편 138,2.8).
시편 노래처럼 유다인들은 ‘희생’과 ‘기도’를 위해 성전을 찾았다. 성전 예식 중 제일은 희생의 피를 흘리는 ‘번제’였다. 이 번제 예식은 하느님 축복에 대한 ‘감사’와 자신의 잘못에 대한 ‘속죄’의 뜻이 담겨 있었다. 아울러 이 번제로써 하느님과 결합하려는 ‘희망’을 드러냈다. 하느님과 아브라함의 계약도 이 희생의 표지인 번제로 체결됐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예언자들은 형식적인 희생 제사만으로는 하느님을 기쁘게 할 수 없다(이사 58장 참조)고 강조했다. 그들은 하느님께서 좋아하시는 사람은 ‘겸손한 자’ ‘하느님의 말씀을 두려워하는 자’라고 가르쳤다. 야곱이 하느님의 축복을 받은 것은 그가 진심으로 통회하고 하느님께 간절히 기도를 드렸기 때문이라고 일깨웠다.
실제로 유다인들은 희생 제사를 바치기 위해서뿐 아니라 기도하기 위해 성전을 찾았다. 오늘날 예루살렘 통곡의 벽 앞에서 기도하는 수많은 순례자처럼 예수님 시대에도 환전상과 희생 제물을 파는 장사꾼들의 틈바구니에서 두 팔을 벌리고 입술을 떨며 기도에 몰두하는 유다인이 많았다.
아침마다 사제들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어린양의 희생을 바친 뒤 이스라엘인의 뜰 안 계단에 올라 “쉐마 이스라엘”(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신명 6,4)을 외친 후 율법의 한 구절을 선포했다. 오후 3시에도 사제들은 성전에서 간단한 의식을 거행한 후 “주님께서 그대에게 당신 얼굴을 비추시고 그대에게 은혜를 베푸시리라. 주님께서 그대에게 당신 얼굴을 들어 보이시고 그대에게 평화를 베푸시리라”(민수 6, 25-26) 하며 이스라엘을 축복했다.
토라(모세오경)에 따라 이스라엘의 모든 남자는 해마다 과월절(파스카)과 수확절(오순절), 추수절(초막절)에 예루살렘 성전을 순례했다(탈출 23,14-17 참조). 또 예루살렘을 향해 무릎을 꿇고 하루 3번씩 기도하는(다니 6,11) 풍습이 생겨났다.
성전은 기도 공간이었을 뿐 아니라 이스라엘의 정치, 행정, 법률, 종교 문제를 의결하는 본거지였다. 바로 그 장소가 성전 안에 있던 최고 의회 ‘산헤드린’이다. 산헤드린의 수석 사제들과 원로들, 율법 학자들은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요한 2,19)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하느님 모독’ 죄로 단죄하고 사형에 처하기로 했다(마르 14,53-64).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산헤드린의 판결처럼 하느님을 모독한 것이 아니라 ‘나의 집’ ‘모든 민족들을 위한 기도의 집’ ‘아버지의 집’이라 말씀하시며 ‘강도의 집’으로 만든 환전상과 장사꾼을 몰아내고 성전을 정화하셨다(마르 11,15-19).
유다인들은 산헤드린 의원들처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을 보고 “성전을 허물고 사흘 안에 다시 짓겠다는 자야, 너 자신이나 구해 보아라. 네가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아라”며 모독했다(마태 27,39-40).
예수님께서 숨을 거두실 때 성전 지성소의 휘장이 위에서 아래까지 두 갈래로 찢어졌다 (마태 27, 51). 성서학자들은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으로 인해 예루살렘 성전이 하느님 현존의 표지로서 더 이상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드러낸 것이라고 해석한다.
헤로데 성전은 서기 70년 로마군에 의해 예수님의 예언대로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고”(루카 21,6) 완전히 파괴됐다. 이스라엘 전승에 의하면 이날은 유다력 ‘아브’(8월) 달의 9일째 되는 날로 바로 기원전 586년에 솔로몬의 성전이 바빌론군에 의해 불타 없어진 바로 그날이었다. 유다인들은 솔로몬 성전과 헤로데 성전이 똑같이 파괴된 이 운명의 날을 기억하기 위해 오늘도 통곡의 벽에서 예레미야의 애가를 읽으며 성전 파괴를 슬퍼하며 메시아 도래를 기도하고 있다.
리길재 기자 teotokos@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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