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Re:빠스카축제 | 카테고리 | 천주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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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정임 | 작성일2016-03-24 | 조회수1,999 | 추천수0 | 신고 |
[성경 속의 인물] 파스카 신은근 바오로 신부(호계본당 주임) 파스카(Pascha)의 어원은 히브리말 페사흐(Pesah)다. 직역하면 ‘건너뛰다’란 의미다. 모세를 따라 이집트를 탈출했던 ‘민족의 대이동’을 함축하는 단어다. 기원전 3세기, 히브리말 성경은 그리스말로 번역되는데 ‘70인 역’이라 한다. 이곳에서 ‘페사흐’는 ‘파스카’로 음역되었다. 기원후 5세기에 등장한 라틴말 성경인 ‘불가타’에서도 ‘파스카’라 했다. 그러니까 그리스말과 라틴말은 다같이 ‘파스카’라고 한 것이다. 파스카는 유다교의 축제다. 그리스도교의 ‘부활절’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다만 예수님께서 ‘파스카’ 다음날 부활하셨기에 축일이 겹칠 뿐이다. 영어에서도 부활절은 이스터(Easter)라 하고 ‘파스카’는 패스오버(Passover)라 한다. 영국인의 조상인 ‘앵글로색슨 족’은 봄의 여인을 ‘에오스터’(Eostre)라 했는데 ‘이스터’는 이 단어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고 있다. 유목민이었던 이스라엘은 봄이 되면 가축의 첫 새끼를 제물로 바치곤 했었다. 한 해의 무사고를 빌었던 것이다. 파스카 축제도 이 습속의 연장선상에 있다. 여기에다 ‘출애굽’의 결정적 사건이 가미된 것이다. 이집트의 모든 맏아들이 죽는 재앙에서 ‘양의 피’를 바른 집은 ‘건너뛰고’ 지나간 사건이다. 이후 파스카는 이스라엘의 가장 큰 축제로 자리 잡게 된다. 그들은 고유한 예식으로 ‘출애굽 사건’을 확실히 후손들에게 전했다. 주님의 직접적인 개입을 깨닫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토록 오랫동안 강대국의 지배를 받았지만 민족의 자긍심을 잃지 않았던 것은 이러한 종교교육 때문이다. 그러기에 유럽을 떠돌면서도 파스카 축제는 지켰다. 목숨을 걸고서도 지켜냈다. 어떤 상황에 있건 ‘출애굽 사건’은 그들에게 희망으로 다가갔던 것이다. 파스카 축제의 순서는 다음과 같다. 유다인의 새해가 시작되는 ‘니산달 10일’에 일 년짜리 숫양을 준비한다(탈출 12,1-4). 이후 ‘14일 저녁’ 해질녘에 양을 잡았고 피는 출입구 기둥에 발랐다. 고기는 전부 구워 ‘누룩 없는 빵’과 함께 먹었다. 쓴 나물도 곁들였다. 그리고 다음날부터 한 주간을 그렇게 지내야 했다. 이 한 주간을 무교절(無酵節)이라 한다. 예수님께서도 파스카를 지내셨고 성체성사를 통해 ‘인류의 파스카’로 승화시키셨다. 당신 자신을 ‘출애굽의 어린양’으로 내어 놓으신 것이다. 이집트 재앙에서 양의 피를 바른 집은 ‘죽음의 화’를 피할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부활의 주님을 모시는 이에게도 그러한 은총이 주어질 것이다. 유다인들은 나라를 잃고 멸시와 천대 속에 살아야 했다. 그들에게 파스카는 민족의 부활을 일깨워주는 희망의 축제였다. [2010년 4월 11일 부활 제2주일(하느님의 자비 주일) 가톨릭마산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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