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Re:악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 | 카테고리 | 천주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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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정임 | 작성일2016-04-27 | 조회수1,727 | 추천수0 | 신고 |
"뱀은 주 하느님께서 만드신 모든 들짐승 가운데에서 가장 간교하였다."(창세 3,1) 창세기 3장 1절에 나오는 뱀은 지금 우리가 눈으로 보는 진짜 뱀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은 아실 것입니다. 성경 시대 당시 뱀을 신으로 숭배했으며 해와 달을 비롯해 하느님께서 만드신 피조물들을 신으로 둔갑시켜 우상숭해 했던 것을 아실 것입니다.
또한 이렇게 하느님께서 만드신 피조물들을 어떻게 해서 신이라고 우상숭배를 하게 되었는지 로마서에서 자세하게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로마서 1장과 2장을 참조해 보시면 도움이 되실 것입니다.
인류 문명이 시작된 이래 발견되는 유적 중에서 보면 가장 오래된 동굴 벽화 등에서 보면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것이 신에게 제사지냈던 어떤 흔적들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것들은 인간의 내면 안에는 절대자, 창조주를 그리워하는 인간의 종교심성이 내재해 있다는 것을 짐잠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시다시피 자연 종교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은 요즘 현대에도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행복한지 그 길을 묻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현세에서 인간이 추구하는 복, 그것이 재물이든, 건강이든 현세에서 어떻게든 부를 누리고 고통을 당하지 않고 살기를 바라는 그러한 복을 갈구하고 있지 않는지요?
그런데 우리 그리스도교는 무엇을 알려주고 가르치는 종교인가? 예수님께서 오셔서 우리에게 알려주시고 싶은 것은 것은 무엇인가요? 구약성경을 통해서 세상의 창조와 어떻게 해서 인간이 죄로 타락하게 되었는지 알게 해 주셨고 그렇게 죄로 타락한 인간 이 어떻게 하면 하느님과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지 그 길을 또한 알려 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어찌 악의 기원에 대해서 환하게 다 알 수 있겠습니까? 한계를 지닌 유한 한 인간이 한계가 없으신 영원하신 하느님과 악의 실체에 대해서 환하게 이해할 수는 없 다고 봅니다. 바오로 사도께서도 지금은 희미하게 보이나 그 때는 주님을 마주 볼 것이라 고 한 그 때가 되면 우리도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하늘의 천사들처럼 될 때에는 아마 환하게 이해가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저도 그동안 나름대로 악의 기원에 대해서 이해해 보려고 나름 애를 써 보았습니다. 그리고 욥기를 비롯해서 여러 방면으로 애써 본 결과 우리가 하느님에 대해서 어렴풋이만 알 수 있듯이 악의 존재에 대해서도 어렴풋이만 알 수 있다는 것과 다만 확실한 것은 하느님 을 체험하듯이 악의 실체도 나를 어떻게 만나가고 있는지 체험만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 선하신 하느님께서 뱀과 같은 악을 처음부터 만드셨다고는 상상하기가 어렵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사야서 14장 12절 이하에 이런 구절이 등장하였습니다.
"어찌하다 하늘에서 떨어졌느냐? 빛나는 별, 여명의 아들인 네가! 민족들을 쳐부수던 네가 땅으로 내동댕이쳐지다니. 너는 마음 속으로 생각했었지, '나는 하늘로 오르리라. 하느님의 별들 위로 나의 왕좌를 세우고 북녘 끝 신들의 모임이 있는 산 위에 좌정하리라. 나는 구름 꼭대기로 올라가서 지극히 높으신 분과 같아져야지. ' 그런데 너는 저승으로 구렁의 맨 밑 바닥으로 떨어졌구나."(이사 14,12-15 참조)
아무튼 하늘로 올라 하느님과 같아지려고 하다가 저승의 구렁으로 떨어진 빛나는 별처럼 창세기 3장에서 알려주시는 뱀 또한 아담과 하와에게 하느님과 같아질 수 있다고 유혹을 했다는 점에서 볼 때 하늘의 빛나는 별이었던 그가 하느님과 같아지려고 하다가 오히려 저승의 구렁으로 떨어졌듯이 하느님의 자녀인 우리들을 자기와 같이 되도록 유혹하는 그 유혹자가 바로 뱀이라는 상징으로 우리에게 나타나는 것이라고 이해해 보았습니다.
저는 어느날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왜 우리를 이 세상에 초대하셨을까? 그 초대의 이유를 아는 것이 하느님 사랑을 이해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어떤 분들은 이런 이야기를 하십니다. 우리가 사는 것을 보면 지옥 갈 것은 뻔한데 지옥 보내시 려고 이곳에 살게 하시는가? 그런데 하느님의 마음을 이해하시려면 인간이 뱀의 유혹에 빠지기 이전을 먼저 생각해 보아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태초에 세상을 창조하시고 보시니 좋았다 감탄하신 그 세상에 하느님께서는 가장 사랑하 시는 우리를 한 번 살아보라고 초대하셨습니다. 사실 가장 사랑하는 이에게 가장 좋은 것 을 선물로 주는 것이잖아요. 저는 예수님의 말씀을 통하여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 는데 우리가 부활한 이후는 시집가는 일도 장가드는 일도 없고 먹고 마시는 일도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 너무 깜짝 놀란 것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누리고 사는 모든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 것인가에 대한 감동이 었습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인데 우리가 이 세상 소풍을 끝내고 돌아간 그 아버지의 집에서 조차도 지금 우리가 누리는 이 모든 것은 또 누릴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들고, 애기를 낳고, 돌보고, ... 이러한 것은 부활 이후에는 다시 경험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들이 누리를 이것이 저 천국에서 누리는 것보다 질적인 면에서 떨어지 는 것도 없도 아무튼 동등한 하느님의 은총과 축복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런 데 중요한 것은 그러한 것을 누리되, 하느님과 함께 하느님 안에서 누릴 때 천상행복이 되 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본래는 그렇게 누리게 되어 있었는데 그 은총을 언제 잃게 되었는가? 바로 하느님과 동등하게 되려는 것에서 그러한 복을 잃게 되었다고 창세기 3장은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인간이 본래 하느님께서 창조하시고 살게 허락하신 에덴 동산에서의 삶을 그대로 유지만 할 수 있다면 이 세상 소풍이 끝나는 날 우리는 그대로 모두 다 천상 아버지의 집으로 자동으로 되돌아 갈 수 있었다는 의미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만 뱀의 유혹에 빠져서 하느님과 같아지려고 하다가 무엇을 잃었는가? 하느님을 잃었다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을 죄의 상태로 영생하게 하실 수 없으셔서 에덴 동산에서 내치셨기 때문입니다.
이 또한 인간의 편에서 보면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만, 그렇게 인간이 하느님을 잃고 난 이후 어떻게 되었는가요? 자기가 보기 좋을 대로 살아가는 것이고 더더욱 하느님을 잃었기 때문에 영생에 대한 축복도 잃고 오직 여기에서의 삶이 전부인양 살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어떻게든 여기에서 재물이든 건강이든 우리가 말하는 복을 누리려고 안간힘 을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게 더더욱 우리를 하느님을 만나지 못하게 하는 줄도 모르고서
그렇게 허덕이고 헤메고 살고 있을 때에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이 땅에 파견하신 것입니다. 어떻게 살아야 이 땅이 에덴 동산이 될 수 있는지 그 길을 가르쳐 주시려고 오셨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환하게 알 수도 없고 이해할 수 없는 악의 문제를 알려고 애쓰기 보다는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신 그 뜻을 더 많이 알려고 애써야 하고 어떻게 하면 예수님의 참 뜻을 잘 알아듣고 예수님처럼 살 수 있을까에 대해 더 많이 묵상하고 고민하고 애써야 하 는 부분이 아닐까 합니다.
내가 살아가는 모습 중에서 하느님처럼 되려는 교만은 어떻게 드러나고 있는지를 잘 살펴 그러한 교만의 싹을 끊어버리는 것이며 또한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사랑의 길을 걷는데 방해 하는 것은 무엇인지 그것을 살펴 끊어버리는 일이 더 중요한 일이 아닐까 합니다. 아무리 머 리를 싸매도 환하게 보이는 답이 없는 질문을 가지고 사는 것보다는 더 유익한 일이 아닐까 합니다. 오랫 동안 악의 문제와 씨름해 보고 나온 결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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