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성서는 영적 여정을 위한 안내서 | 카테고리 | 성경 | ||
---|---|---|---|---|
이전글 | 이전 글이 없습니다. | |||
다음글 | 질문 | |||
작성자남충희 | 작성일2016-04-30 | 조회수1,612 | 추천수0 | 신고 |
하느님은 이성과 경험을 초월하시므로 그분과 그분이 하시는 일을 일상적인 언어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을 알려면 남의 말을 무조건 믿지 말고 직접 그분을 만나뵈어야만 합니다. 다른 방법은 일체 없습니다. 성서는 하느님을 직접 겪은 사람이 자신의 경험을 기록한 책입니다. 그러다 보니 일상적인 언어의 논리로는 이해가 안 가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하느님은 분노에 더디시기도 하고 분노를 미루지 않으시기도 하다.'라는 모순적 명제를 예로 들어 설명드리겠습니다.
하느님은 아무리 극악무도한 죄인이라도 결코 단죄하지 않으시고 그가 회개하여 당신과 사랑을 나누기를 끝까지 기다리십니다. 회개한 사람에게는 필요한 모든 도움을 주셔서 이 세상을 사는 동안에 영적 생명을 성장시키시며 죽음의 때에 영적 생명을 완성하도록 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은 분노에 더디십니다.
그런데 하느님의 사랑을 거들떠보지 않고 회개하지 않는 사람은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은 전능하시지만 당신과 사랑을 나누기를 거절하는 사람에게는 어떤 도움도 주실 수 없습니다. 그는 숨을 쉬고 있으되 사실은 이미 죽어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주시는 신적인 생명과 비교하면 동물적인 생명은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은 생명의 근원이시므로 회개하지 않는 사람은 스스로 하느님의 분노를 자초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은 분노에 더디시기도 하고 분노를 미루지 않으시기도 합니다. 이것을 말로 이해하려고 하면 안 되고 참된 기도를 실천함으로써 직접 하느님과 친교를 나누어야 합니다. '나'에게는 '내가 아는 하느님'이라야 의미가 있습니다. 남이 알려주는 하느님은 그 자체로는 무의미합니다. 남의 말이 사실인지를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남의 말에 의지하여 하느님을 믿는 사람들이 바로 사이비종교가 번성하는 기름진 토양입니다. 사람은 직접 하느님과 사랑을 나눌 수 있기 때문에 여느 동물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것입니다.
성서에는 하느님과의 영적 친교를 가리키지 않는 내용도 있습니다. 그런 것들은 그저 참고적으로 읽어야지 말 그대로 이해하고 현실에 적용하면 큰 사고가 납니다. 집회서나 지혜서가 대표적인 예이지만 다른 성서들도 그런 경우가 많습니다. 가부장주의, 여성비하, 노예제도, 축첩제도, 무자비한 처벌과 사형 등등... 이런 내용들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결코 안 되겠지요?
성서는 상징을 사용하였는데 대부분의 성직자와 신자들이 어리석게도 그것을 말 그대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매우 많습니다. 하나의 예를 들겠습니다. "그러므로 남자는 부모를 떠나 결혼하여 아내와 한 몸을 이룹니다."(마태오복음 10:5) 결혼식에서 혼인이 결코 해소될 수 없다는 의미로 인용되는 구절입니다. 그러나 이런 해석은 틀립니다. 어떻게 남편과 아내가 '한 몸'을 이룰 수 있습니까? 두 사람이 풀어질 수 없는 하나의 인격체처럼 행동하는 것은 심리적 미성숙을 반영할 뿐입니다. 이것을 바로 마태오 복음에 나오는 정반대 의미의 구절과 어떻게 연결시킬 수 있겠습니까? "사람이 부활하면 결혼하는 일이 없어서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도 같습니다."(마태오복음 22:30) 인용된 문구에서 남자는 망덕, 여자는 신덕을 상징합니다. 욕망을 따르는 사람은 마음(이성)과 몸(감성)이 서로 불일치합니다. 사람은 망덕과 신덕을 지님으로써 몸과 마음이 일치하게 됩니다. 즉, 망덕과 신덕은 '한 몸'을 이루어 아버지이신 하느님과 사랑을 나눕니다.(애덕) 이것은 성령의 권능입니다. 성령의 권능을 모르는 사람은 異性을 욕망의 대상으로 여기지만 성령의 지혜를 얻은 사람은 異性과 同性을 구별하지 않고 모든 사람을 사랑합니다. 욕망을 따르는 사랑은 동물적인 사랑에 불과한 것으로서 신적인 참된 사랑과 비교하면 차라리 미움이라고 불러야 마땅합니다. 실제로 욕망을 따르는 사랑은 다툼, 시기, 미움, 질투, 악의, 살인, 전쟁 등의 원인이 됩니다. 저 유명한 '일리아드와 오딧세이'는 그리스와 트로이라는 두 나라가 한 여자 때문에 전쟁을 벌이는 이야기입니다. 동물적 사랑이 얼마나 어리석은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예수가 사용한 남자와 여자의 상징은 창세기의 창조설화와 에덴동산 설화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이제 성서가 얼마나 위대한 책인지를 잘 아실 것입니다.
|
||||
태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