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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경해석 - ‘상황 접근’ : 본문은 하나, 독자는 여럿 카테고리 |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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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정임 쪽지 캡슐 작성일2016-04-30 조회수1,712 추천수0 신고

[신앙의 해 · 창간 86주년 기획 - 현대 가톨릭 신학의 흐름] (7) 성경해석 - ‘상황 접근’ : 본문은 하나, 독자는 여럿


독자의 세계 · 해석에 따라 달라지는 본문 의미


역사학, 언어학과 더불어 이번에는 철학적 해석학이 질문을 던진다. 

독자는 과연 중립적일 수 있는가? 중립적이어야 하 는가? 역사비평의 특징들 가운데 하나가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관찰자로서 본문을 바라보려 했다는 점이었다. 이러한 원칙은 유지될 수 있는가? 


■ 중립적인 독자?

18세기 말과 19세기의 철학적 해석학은, 같은 본문을 읽는 서로 다른 독자들이 본문을 서로 다르게 해석하게 된다는 것을 설명하고 그 정당성을 인정했다. 이러한 이론들은 성경 해석에도 받아들여졌다.

역사비평에서 해석자가 의도적으로 중립적이 되려고 애를 썼다는 사실 자체가, 중립적인 독자라는 개념이 자연스러운 것이 아님을 방증한다. 

본문을 접하기 전의 독자는 진공 상태에 있지 않다. 그에게는 문화가 있고 사회가 있고 역사가 있고 세계관이 있고 기존 지식이 있다. 이러한 요소들을 모두 배제하고 성경을 해석하는 것은 불가능하거나 최소한 인조적이다. 

좀 더 현실적으로 말한다면 이렇게 표현해 보고 싶다. 실제로 신자들이 성경을 읽을 때에는 무균 상태에서 신앙도 기존 지식도 모두 배제하고 본문을 읽는 것이 아닌데 성경을 해석하는 사람이 이러한 주관성을 배제한 해석을 한다면, 그 해석은 과연 누구를 위하여 유용할 것인가? 학자들만을 위해서?

역사비평이 본문 이전의 세계, 본문이 생겨난 세계를 중시하고 저자의 의도를 중시했으며 문학비평의 방법들이 본문 자체의 세계를 중시했다면, 이제 살펴볼 상황 접근은 본문을 읽는 독자의 세계와 독자 자신을 중심으로 한다. 여기에서는 특정한 방법에 머물지는 않는다. 

서로 다른 상황에 처한 독자들은 본문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해석하게 된다는 기본 전제 아래, 자신의 상황으로부터 본문을 읽기 위하여 여러 방법들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어떤 경우이든 관심의 초점은 고대의 저자가 고대의 독자들에게 어떤 의미를 전달하려 했는가에 있지 않고 본문이 오늘의 나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가에 있다. 


■ 해방신학적인 접근

독자의 상황을 중심으로 성경을 해석하는 접근법들 가운데 20세기에 중요하게 부각된 것으로는 해방신학적인 접근과 여성해방 접근을 들 수 있다. 

독자 중심의 해석에 이 두 가지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독자 중심으로 본문을 읽는 방법을 성경 해석에 적용시킨 대표적인 예가 해방신학적 접근이다.

독자의 입장에서 성경을 해석하려는 해방신학의 입장은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다. 실제로 이들은, 이전에 있어온 여타의 해석들이 중립적이었음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다. 이들은 해석이 중립적일 수 없다는 것을 전제한다. 

비판의 관건은 과거의 해석들이 ‘어떤’ 독자의 입장에서 본문을 해석해 왔느냐 하는 데에 있다. 

이들은, 지금까지의 성경 해석이 주로 특정 지역 또는 특정 계층의 사람들에 의해?유럽인, 백인, 남성에 의해?이루어졌기 때문에 그 해석자들의 입장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을 비판한다. 다른 말로 하면, 기존의 해석들도 정치적이었으되 그 정치적인 방식이 달랐을 뿐이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주로 라틴 아메리카에서 시작된 해방신학적 접근에서는 사회-정치적으로 억압을 받아온 독자들의 입장에서 성경을 해석하고자 하고, 여성해방 접근에서는 주로 역사비평 방법을 사용하면서 성경 본문과 그 해석사에서 남성 중심적인 사회의 시각을 밝혀낸다.

해방신학적 성경 해석은 20세기 후반에 발전한 사회학적 접근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사회학적 접근은 독자 중심의 본문 해석에 속하는 것은 아니면서, 성경 본문에 나타난 사회 또는 성경 본문이 작성되는 배경이 되었던 사회에 초점을 맞추어 본문을 연구한다. 

예를 들어 이집트 탈출 이후의 영토 정복 과정이나 판관 시대에서 왕정 시대로 넘어가는 과정을 사회-경제적으로 설명하려는 시도들이 여기에 속한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필자의 견해로는-사회학적 접근이 본문이 작성된 사회를 분석하려 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역대기에서 귀향 후의 역사를 기술하는 데에 있어 특정한 요소들을 강조한 이유가 무엇인지를 여기에서는 본문이 작성된 당시의 사회상을 바탕으로 설명한다. 

해방신학적 접근에서는 그러한 설명을 중시한다. 이를 고찰함으로써 지금 독자가 처해 있는 상황을 위해 본문에서 읽어낼 수 있는 의미를 찾기 위해서이다.

해방신학적 접근이나 여성해방 접근의 또 한 가지 특징은 성경 해석이 현실 참여로 이어져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독자가 억압의 상황 속에 있다면, 성경 주석은 중립적일 수 없고 해방하시는 하느님과 함께 억눌린 이들의 해방을 위하여 투신해야 한다는 것이다.


■ ‘본문은 독자와 함께 성장한다’

완전히 객관적인 해석이란 있을 수 없다는 것, 해석의 주체인 해석자가 본문의 해석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옳은 말이다. 

현대의 철학 이전에 이미 5세기에 성 대 그레고리오가 “성경 본문은 독자와 함께 성장한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역사비평이 발전하면서 깨닫게 되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본문은 끊임없는 재해석의 과정을 거친다. 최초의 발설자로부터 성경 본문이 완성되기까지도 그랬고, 본문이 완성된 다음에도 이 과정은 계속 이어진다.

이 과정에 주목함으로써 성경 본문은 현대의 독자들에게 매우 풍요로운 의미를 가질 수 있게 된다. 첫 저자가 의도한 것만이 아닌, 독자가 자신의 삶 안에서 발견하게 되는 성경 본문의 의미가 당당한 가치를 인정받게 되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말씀이 살아있고 힘이 있는 말씀이라고 할 때(히브 4,12 참조), 그 말씀은 당연히 모든 시대 모든 사람들과 생생한 만남을 갖는다. 이러한 말씀의 생명력에 주목하게 된 것은 매우 감사할 일이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해석이 어느 한 방향으로 치우쳤다면 그 흐름을 바로잡고자 하는 노력은 필요하다. 그러나 특정한 시각을 전제하고 본문에 다가가는 것에는 ‘자신이 폭로하는 그 함정에 빠질’ 위험이 없지 않다(「교회 안의 성서 해석」, I, 마, 2). 

여기에서 올바른 해석의 기준이 되는 것은 저자의 의도이다. 과거의 성경 해석을 바로잡는 것은 과거에 성경을 해석했던 이들과 다른 새로운 해석자들의 관점으로부터 성경을 바라보는 것 이전에, 진정한 저자의 의도를 식별해 냄으로써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덧붙여, 사회학적 접근에 의존하는 해방신학적 접근은 성경 본문이 형성되는 데에 작용한 인간적인 요소들을 강조하면서 성경이 성령의 영감으로 기록된 하느님의 말씀을 담고 있다는 더 중요한 측면을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 또한 성경의 내용이 인간 삶의 사회-경제적 측면을 포함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측면은 초월적이고 영적인 맥락 안에서 고찰되어야 함을 망각하는 예도 없지 않다. 


■ 일단락을 맺으며

다음 호에서 가톨릭교회에서 제시하는 성경 해석의 기준에 대해 논하기에 앞서, 20세기까지 발전해 온 여러 흐름들에 대해 종합적인 평가를 내려 보자.

크게 보면 세 가지의 접근 방식이 있었다. 본문이 형성되기 이전의 세계에 관심을 갖는 역사비평, 본문 자체를 하나의 세계로 보고 그 안에서의 관계들에 집중했던 문학비평, 그리고 본문을 읽고 있는 독자를 중심으로 본문의 의미를 읽어내는 상황 접근이 그것이었다.

교황청 성서위원회의 문헌 「교회 안의 성서 해석」에서는 이들 가운데 어떤 것도 배제하지 않는다. 이 문헌에서 거부하는 것은 오직 근본주의 해석뿐이다. 그 외의 다른 모든 방법과 접근에 대해서는, 각각의 한계를 지적하면서도 모두 그 유용성을 인정한다. 고마운 일이다. 그리고 이것이 하느님의 말씀 앞에 서 있는 인간의 겸손함, 아니 하느님 앞에서 자기 자신을 아는 인간이 마땅히 취해야 할 자세이다. 

하느님 말씀의 넘치는 풍요로움은 어떤 한 방법으로 모두 길어낼 수 없다. 교회 안에 있어 온 성경 해석의 여러 흐름들은 모두 하느님께서 주신 능력으로 그분의 말씀을 조금이나마 알아듣기 위한 인간의 간절한 노력들이었다. 아무도 내가 하느님 말씀의 의미를 다 밝혀냈노라고 말할 수 없다. 다른 모든 사람들의 노력을, 하느님 말씀을 경외하는 그 경외심으로 바라보았으면 한다. 그런 의미에서, 필자가 구약입문 강의록에 썼던 한 단락을 옮겨 놓고 싶다.

“바른 지향과 진실된 마음이 있다면, 인간 지성의 한계 때문에 하느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아니면 잘못 이해한다 하더라도 그 말씀을 알아듣고자 기울이는 모든 노력 자체는 정당하다고 믿는다. 성경을 통하여 하느님을 알아 가고자 하는 인간은, 육이 되시어 이 세상 속으로 들어오신 하느님께 응답하여 바로 그 길을 통하여 하느님의 신비 속으로 자기 자신을 내던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 안소근 수녀는 교황청 성서대학에서 성서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대전가톨릭대학교 교수, 한국 가톨릭교리신학원 가톨릭신학연구실장으로 봉직하고 있다.

[가톨릭신문, 2013년 5월 12일, 안소근 수녀(성도미니코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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