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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물없는 곳(광야)은 윤리적 규범을 고집하는 마음을 상징합니다. 카테고리 |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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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남충희 쪽지 캡슐 작성일2016-05-16 조회수1,481 추천수0 신고

공동번역성서에는 '물 없는 광야'로 되어 있는데 새로 나온 성경에서는 '물 없는 곳'으로 바뀌었습니다. 영어성서를 보면 desert로 된 것도 있고 dry country로 된 것도 있습니다. 아무튼 세례자 요한을 두고 '광야에서 외치는 이'라고 했을 때 그 광야와 지금의 물 없는 곳은 같은 장소를 가리킵니다. 이스라엘의 광야를 나가보면 키 작은 풀이 빈약하게 깔려있고 잡목이 듬성듬성 있는 메마른 산과 골짜기가 끝없이 펼쳐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계곡에는 비가 올 때만 물이 흐릅니다. 지리학 용어로 간헐천(wadi)라고 합니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사실 광야(曠野)보다는 황야(荒野)로 번역하는 것이 맞습니다. 다음에 설명하는 영성적인 측면에서 보면 더 그렇습니다.  

 

성서본문에서 '어떤 사람에게서 악령이 나갔다.'라는 말은 윤리적규범(율법 law)으로 욕망을 억누르는 것을 가리킵니다. 성령의 지혜 앞에서 악령은 스스로 허상임이 밝혀지면서 저절로 '소멸됩니다.' 악령은 비뚤어진 욕망의 콤플렉스, 구체적으로 말하면, 쾌락, 재물, 명예, 권력에 대한 집착입니다. 영적 자아는 실체이되 욕망은 허상입니다. 즉, 영적 자아를 발견한 사람은 욕망을 따르던 육적 자아가 허상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성령의 지혜는 욕망을 완전하게 다스립니다. 그러나 윤리적 규범은 욕망을 일방적으로 억누르기 때문에 욕망은 굴복하지 않고 마음속 깊은 곳(대체로 현대심리학의 무의식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으로 숨어들어 갑니다. 억눌린 욕망은 욕망 자체보다 훨씬 더 고약하게 작용합니다.

 

악령은 죽음을 고집하는 의지입니다. 이에 비해 일곱 악령은 죽음의 지혜를 하느님의 지혜로 포장하는 의지입니다. 전자는 그래도 회개의 가능성이 있지만 후자가 회개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합니다. 이에 대한 좋은 예로, 사이비종교인들이 뻔하게 보이는 어리석은 행동을 하면서도 자신은 절대적으로 옳다고 확신하면서 온 정성을 다해서 남들에게 자신의 주장을 강요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윤리적 규범은 사람의 마음을 메마른 광야처럼 만듭니다. 그러나 성령의 지혜는 사람의 마음을 신적 사랑의 지혜로 풍요롭게 만듭니다. 사람이 회개의 사건을 일으키면 자신의 마음이 메마른 광야처럼 무미건조하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이때, 그는 하느님의 목소리를 듣습니다. 이리하여 영적 여정이 시작됩니다. 회개는 하늘나라로 들어가는 유일한 관문입니다. 영적 여정을 걷는 중에 윤리적 규범의 유혹에 빠지면 처음에 회개의 사건에서 겪었던 그 광야를 발견하게 됩니다. 이때 마음을 찢고 다시 하느님께 돌아와야 합니다. 계속 윤리적 규범을 하느님의 지혜로 포장하면서 고집을 피우면 '일곱 악령'의 지배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지혜(성령)와 사람의 지혜(윤리적 규범) 사이에는 공통점이 조금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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