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인물]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들: 밧 세바(2사무 11-12장; 1열왕 1-2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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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22-05-23 | 조회수1,956 | 추천수0 | |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들] 밧 세바(2사무 11-12장; 1열왕 1-2장)
다윗에게는 여덟 명의 정실부인이 있었는데, 사울의 딸 미칼을 시작으로 여덟 번째 아내가 밧 세바입니다. 다윗은 수도를 예루살렘으로 옮긴 뒤 밧 세바를 아내로 맞아들였고, 그녀가 낳아준 솔로몬이 다윗의 왕위를 잇습니다. 마태오 복음사가는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마태 1,6)라는 표현을 통해, 다윗이 남편 있는 여인을 취했던 과오를(2사무 11장) 숨김없이 기록합니다. 밧 세바의 아버지 엘리암과 남편 우리야는 다윗의 최정예 삼십 인 부대의 용사들이었던 듯합니다(2사무 23,34.39). 특히 우리야는 히타이트 출신의 군인으로서 전우들과 생사고락을 나누고(2사무 11,11) 출정 중에 부부관계를 멀리하는 관례를 따르는(신명 23,10-12; 1사무 21,5-6) 의로운 사람이었지만, 그로 인해 아내뿐 아니라 목숨마저 빼앗겼습니다.
성경 저자는 밧 세바를 공모자 또는 피해자로 단정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녀가 왕명으로 궁에 발을 들였고 다윗의 아이를 가졌으며, 남편이 전사한 후에는 다윗의 불림을 받아 그의 아내가 되었다고 기록합니다. 그 이상의 막연한 추측은 독자의 상상일 뿐, 실상 저자의 관심은 다윗의 범죄와 즉각적인 회개, 하느님의 용서 그리고 보속으로 주어졌던 가문의 시련을 생생하게 전하는 데 있습니다. 밧 세바는 다윗과의 부적절한 관계로 잉태한 첫아이를 잃었으나, 이후 솔로몬을 낳았습니다. 하느님은 솔로몬을 사랑하시어 “여디드야”(주님의 사랑받는 이)라고 부르게 하셨지요. 이후 밧 세바는 솔로몬이 다윗의 왕위를 계승하는 대목에서 다시 등장합니다(1열왕 1-2장). 다윗이 노쇠해지자 왕위 계승 1순위였던 넷째 아도니야는 스스로 임금이 되려 했고, 이때 궁정 예언자 나탄이 밧 세바를 찾아와 솔로몬을 왕위에 올리도록 다윗을 설득하게 합니다. 이에 동조한 밧 세바의 행보는 언뜻 모종의 ‘정치적 책략’처럼 비치지만, 권력 다툼에서 희생된 다른 왕자들처럼 자신과 아들 솔로몬도 죽임을 당할 위험 속에서(2열왕 1,11-12) 그녀가 달리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싶습니다. 분명 밧 세바는 다윗이 하느님을 두고 한 맹세를 지켜 아들 솔로몬을 왕위에 올리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신중하고 용감한 아내요, 어머니’였습니다.
간음과 살인교사로 시작된 다윗과 밧 세바의 인연을 어찌 아름답다고만 하겠습니까만, 그렇다고 죄인이니 죽어야만 하겠습니까? 이들은 평생 죄책감으로 가슴만 치며 어둠 속에서 살기보다는, 정의와 양심을 회복하고 최선을 다해 살아가길 택했습니다. 첫아이를 살려주십사 하느님 앞에서 단식하며 침상에도 오르지 않던 다윗이 그 아이가 죽자 즉시 목욕재계하고 성전으로 가 경배를 드렸던 일이나(2사무 12,15ㄴ-23), 밧 세바가 비록 부적절한 관계로 다윗 가문에 들었지만 장차 지혜로운 임금으로 태평성대를 이룰 솔로몬의 목숨을 구하고 왕위에 오르도록 온 힘을 다했던 일에서 우리는 무엇을 생각해야 할까요? 죄를 보속하는 최선의 길은 그저 좌절하고 주저앉는 것이 아니라, 죽을힘을 다해 더 열심히 살아 다시 하느님 앞에서 선하고 행복하게 사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알려주신 하느님은 아흔아홉 마리의 양들보다 길 잃은 양 한 마리를 찾아 나서는 목자이시고(마태 18,12-14), 잘못을 뉘우친 이가 다시 제대로 살아가길 바라는 아버지이십니다(루카 15,11-32). 타마르와 라합과 룻과 밧 세바, 하나같이 참 부족한 여인들이었지만 ‘예수님의 조상’으로 성실히 살아간 그들이 우리에게 말하는 듯합니다. 죄인이니 더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살라고, 머지않아 곧 하느님께서 너를 위해 마련해 두신 구원 경륜을 살아가며 흡족하게 웃게 될 것이니 힘을 내라고 말입니다.
[2022년 5월 22일 부활 제6주일 대구주보 3면, 강수원 베드로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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