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참된 믿음은 늘 성령의 열매를 맺습니다. | 카테고리 | 성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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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남충희 | 작성일2016-05-27 | 조회수1,970 | 추천수0 | 신고 |
질문하신 구절을 단락 전체의 흐름에서 파악해야 합니다. 예수는 배가 고파서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찾았는데 제철이 아니었기 때문에 잎만 무성하고 열매는 없었습니다. 무화과나무는 철이 되어야 열매를 맺지만 하늘나라의 제자는 지금 여기에서 늘 성령의 열매를 맺습니다. 열매를 맺지 못하는 믿음은 죽은 믿음, 곧 미신입니다. 예수는 무화과나무를 말려 죽이는 기적을 통하여 참된 믿음이 없이 형식적인 예배에 열중하는 사람은 이미 죽어 있음을 보여준 것입니다. 무화과나무의 ‘잎’이 무성한 것은 신학, 예식, 전례, 건축, 예술 등등 거짓 믿음의 화려한 겉모습을 가리킵니다. 무화과나무가 ‘뿌리째’ 말라버린 것은 참된 믿음은 하느님께 뿌리박고 성장하면서 늘 열매를 맺고 있음을 가리킵니다. 나날이 거듭 새로워지지 않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이제부터 영원히’는 아무리 기다려도 미신에서는 죽음밖에 나올 것이 없음을 표현합니다. ‘배가 고픔’은 사람들의 회개와 참된 믿음을 애타게 촉구하는 마음을 상징합니다. 성전에서 물건을 사고파는 사람들은 일반적인 장사꾼들이 아니라 성전예배에 필요한 물품을 판매하는 사람들입니다. 환전상과 비둘기 장수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성전 장사꾼들의 뒤에는 사두가이파, 바리사이파, 율법학자 등 백성의 지도자들이 버티고 있습니다. 백성의 지도자라는 사람들이 하느님을 경배한다는 구실로 백성의 돈을 갈취하고 있는 것입니다. 위선적인 종교지도자들은 먼 앞날의 복과 사후세계의 하늘나라를 약속하면서 신자들에게 헌금을 요구합니다. 그러나 하늘나라는 지금 여기에 있으며 하늘나라의 제자는 먼 앞날을 기다리지 않고 바로 지금 영적 열매를 맺습니다. ‘산’은 사람에 대한 집착으로 세상살이가 무거운 짐으로 여겨지는 것을 가리킵니다. 세상은 악인들로 가득 차 있고 하루하루의 세상살이는 힘겹기만 합니다. 그런데 악인을 용서하는 것은 산을 옮기는 것처럼 불가능합니다. 계속 악인을 용서하면 자신만 손해를 보고 결국 경쟁에서 패배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 주시는 성령의 지혜 앞에서 세상의 선과 악은 허상임이 드러납니다. 그리하여 하늘나라의 제자는 선인과 악인을 가리지 않고 언제 어디서나 모든 사람을 사랑합니다. 움직일 수 없던 것처럼 보이던 산이 저절로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입니다. 성령의 열매는 이토록 위대합니다. 하느님을 눈으로 볼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하늘나라의 제자는 하느님께서 주시는 은총의 효과를 통하여 하느님이 계시다는 것을 알고 하느님을 믿습니다. 이것이 참된 믿음입니다. 하느님을 형식적으로 경배하면서 막연하게 믿는다면 그런 하느님은 자신의 생각으로 지어낸 우상에 불과합니다. 우상을 경배하는 사람은 더 이상 결과를 기다릴 필요도 없이 이미 죽어 있습니다. 제자들은 무화과나무가 말라죽는 기적을 보고 놀랐지만 예수는 제자들이 참된 믿음이 일으키는 기적에 눈을 돌리기를 촉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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