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 | 카테고리 | 성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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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정임 | 작성일2016-06-19 | 조회수4,188 | 추천수0 | 신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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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 성서를 읽다가 궁금한 점이 있어서 문의 드립니다. 루가복음 12장 51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내가 이 세상을 평화롭게 하려고 온 줄로 아느냐? 아니다. 사실은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고 말씀하시는 내용이 나옵니다. 과연 예수님은 우리에게 평화를 주시러 오신 것이 아니라 분열을 주시러 오셨나요. 김지윤(안나, 32, 인천) 똑같은 내용이 마태오 복음에선 더 과격하게 나옵니다.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아라.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마태 10,34). 처음 이 대목을 접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어리둥절하게 됩니다. 과연 예수님은 평화가 아닌 고통을 주시러 오신 것일까요. 아닙니다. 여기서 '평화'란 '세속적 의미의 안락'혹은 '세속적 가치'를 의미하고, '분열' 혹은 '칼'이란 '예수를 따르는 길'을 말합니다.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는 말씀은 '세속적 안락을 추구하는, 복음적 가치를 깨닫지 못한' 가족들의 만류와 회유를 단호히 잘라낼 수 있어야만 복음을 전하러 나설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 여기서 분열과 칼은 나 자신의 잘못된 세속적 습관과 억압, 굴레의 사슬을 끊어 버리는 것을 뜻하기도 합니다. 세속적 가치에서 나 자신을 분리시키다 보면 당연히 고통과 분열이 따라올 수밖에 없습니다. 한마디로 이 말씀은 예수를 따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힘든지를 나타냅니다. 산고의 고통이 있어야 새 생명이 탄생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듯이, 참 평화를 가져오기 위해서는 찢겨지는 아픔을 견뎌낼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나는 분명히 말한다.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또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녀나 토지를 버린 사람은 현세에서 박해도 받겠지만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녀와 토지의 축복도 백 배나 받을 것이며 내세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다"(마르 10,2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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