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성경] 성지에서 만나는 성경 말씀: 오아시스 성읍 예리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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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22-06-26 | 조회수2,842 | 추천수0 | |
[성지에서 만나는 성경 말씀] 오아시스 성읍 예리코
‘광야가 아름다운 건 샘이 있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에 어울리는 성지가 유다 광야에 자리한 예리코입니다. 팔레스타인 자치기구에 속하는 이 도시는 예루살렘에서 북동쪽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 있습니다. 샘도 있고 겨울에도 따뜻하여 기원전 1세기 유다 임금 헤로데는 이곳에 겨울 별장을 지었습니다. 헤로데가 세상을 떠난 곳도 이 겨울 별장입니다. 예리코가 겨울에도 따뜻한 건 세상에서 가장 낮은 곳에 자리해 있기 때문인데요, 자그마치 해수면 280미터 아래입니다.
예리코는 ‘달의 성읍’이라는 뜻입니다. 옛 가나안인들이 달 신을 섬기며 바친 성읍이라 그렇습니다. 광야 한복판에 있는데도 예리코는 샘 덕분에 만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요새 성읍 가운데 하나입니다. 기원전 8000년경, 곧 신석기가 시작되던 무렵부터 사람이 정착해 살았습니다. 지금도 예리코 샘에서는 물이 흘러나오는데요, 일명 ‘엘리사의 샘’이라 일컬어집니다. 왜냐하면 엘리사가 이 샘에서 경이로운 일을 행하기 때문입니다. 2열왕 2,19-22에 따르면, 예리코 주민들이 엘리사에게 불편을 호소합니다. 예리코 수질이 나빠 생산력을 잃었다고, 아이가 생기지 않는다고 말입니다. 그러자 엘리사는 소금을 가져오라 하여 물에 뿌립니다. 그 뒤 샘물이 좋아져서 이 이름이 붙었습니다. 오늘날 가톨릭교회에서 성수를 축성할 때 소금을 뿌리는 것도 엘리사의 예를 따른 전통입니다.
예리코는 “야자나무 성읍”(신명 34,3)이라 칭해질 만큼 식량도 상대적으로 풍부하여 광야를 지나다니는 백성이나 상인들에게 휴식처가 되어 주었습니다. 광야에서의 방랑을 접고 가나안으로 들어간 이스라엘이 맨 처음 정복한 성읍이 예리코인 점(여호 6장)에도 그만한 배경이 있는 셈입니다. 길 가던 누구라도 쉬어 가던 성읍이라 예리코에는 과객을 상대하는 주막과 창녀가 많았습니다. 여호수아가 예리코 정복을 앞두고 정탐꾼을 파견하는데, 이때 도움을 준 창녀 라합(여호 2장)도 그 가운데 하나입니다. 라합은 마태 1,1-17의 예수님 족보에도 나오는데요(5절), 아마 이때 세운 공으로 들어간 것 같습니다. 라합이 가나안 여인인데도 동족이 아닌 이스라엘을 도운 건, 어쩌면 비참한 창녀의 삶에서 벗어나고 싶어 일생일대의 도박을 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주님이라는 신이 이집트에서 어떤 노예 집단을 탈출시켰다는 소문을 듣고(여호 2,9-11) 자신도 해방에 대해 꿈을 꾸게 되었는지도 모르지요.
다만 역설적인 건, 창녀의 도움까지 받으며 예리코에서 가나안 정착의 첫 걸음을 뗀 이스라엘이 끝을 맞은 곳도 예리코라는 점입니다. 기원전 6세기 남왕국의 수도 예루살렘이 바빌론에 함락당한 뒤 치드키야 임금이 예리코 들판에서 바빌론군에게 사로잡혔기 때문입니다(2열왕 25,5-6; 예레 52,8-9). 곧 예리코는 가나안에서 새 출발한 이스라엘 백성의 시작과, 역사의 한 단락을 마무리한 멸망과 유배가 공존하는 성지라 하겠습니다.
* 김명숙 소피아 - 예루살렘 히브리대학교 구약학과에서 공부하여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으로 일하며, 수도자 신학원 등에서 구약학을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는 <에제키엘서>와 <예레미야서 1-25장>, <예레미야서 26-52장>이 있다.
[2022년 6월 26일(다해) 연중 제13주일(교황 주일) 의정부주보 6면, 김명숙 소피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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