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Re:레지오 단원은 빈체시오 회원이 될 수 없나요? | 카테고리 | 천주교 | ||
---|---|---|---|---|
이전글 | 이전 글이 없습니다. | |||
다음글 | 기독교의 성경과 가톨릭의 성경의 차이점? |2| | |||
작성자이정임 | 작성일2016-09-05 | 조회수3,194 | 추천수0 | 신고 |
질의하신 사항에 대해서는 그전에 세나뚜스가 답변한 내용을 복사하여 올려드리오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2005. 9. 12, 번호 703)
"우리는 레지오 단원으로서 교본에 규정한 규칙을 창설자의 의도가 왜곡되지 않도록 제대로 이해해야 합니다. 사회복지 분과나 빈첸시오의 활동 회원은 교본 정신에 따라서 레지오를 함께 하지 않도록 지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 쪽에서 직접으로 활동하고 있다면 레지오에서는 퇴단해야 합니다. 간접적으로 회비만 내고 명예회원으로 있는 것은 관계가 없으나, 어떤 이유든지 양 쪽의 활동 중에서 분명하게 어느 한 쪽의 일만 해야 된다는 가르침을 바르게 실천해야 합니다.
이는 레지오 마리애의 창립 역사에서 본다면 본래는 레지오가 빈첸시오에서 갈라져 나온 단체라는 것을 함께 이해하면서도, 우리는 어떠한 경우에도 성령께서 허락하신 레지오의 독특한 카리스마를 해치는 행동은 절대로 할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교본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영혼을 대상으로 하는 레지오 활동은 물질적 구호 활동과는 실질적인 면에서 함께 어울릴 수가 없다고 하면서 아래와 같은 이유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교본 437/ 438 쪽)
(가) 물질적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들은 구호 단체 회원들의 방문을 반기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방문을 받는 사람들은 자신이 이웃 사람들에게 물질적 도움의 대상으로 비쳐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가지게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레지오의 쁘레시디움이 물질적 원조를 하는 단체라고 알려지게 되면, 즉시 그 활동 범위가 극도로 좁아집니다. 물질적 도움은 다른 단체들에게는 닫힌 문을 여는 열쇠가 될는지 모르나, 레지오의 경우에 그것은 오히려 열린 문을 스스로 잠그는 자물쇠가 될 뿐입니다.
(나) 물질적인 도움을 받으리라고 기대했다가 실망한 사람들은 불만을 품게 되며, 그로 인해서 레지오의 감화력은 효력을 잃게 됩니다.
(다) 물질적 원조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의 경우라도, 레지오는 물질로써 영혼을 구하려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한 활동은 구호 사업을 맡아 하도록 특별한 은총을 부여받은 단체들이 나서서 수행하도록 넘겨주어야 합니다. 분명한 것은, 레지오 단원이 레지오 안에서 물질적 선행을 베푼다 해도, 그 선행을 통해서 은총을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레지오의 규율을 어기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쁘레시디움이 이 점에 있어서 잘못 이끌리면 곧 복잡한 사정에 휘말리게 되고, 결국에는 레지오에 아픈 상처만을 남겨 주게 될 것입니다.
어떤 단원들은 누구나 각자 능력에 따라 자선을 베풀 의무가 있다고 주장하면서, 자신은 레지오 단원 자격으로 도움을 베푸는 것이 아니라 단지 개인 자격으로 돕는다고 버티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을 분석해 보면 그가 생각하는 것처럼 문제가 그리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흔히 있는 일이지만, 레지오에 입단하기 전에 물질로써 남을 도운 일이 없었던 단원들을 놓고 생각해 봅시다. 그는 레지오 활동 중에 물질적인 도움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될 것이나, 그는 레지오 방문 활동을 수행하는 동안에는 아무런 도움도 베풀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다른 날 '개인 자격'으로 다시 찾아가서 물질적인 도움을 베푸는 경우에 그는 분명코 물질적 원조에 관한 레지오의 규칙을 어기는 것이며, 같은 활동 대상자를 두 번에 걸쳐 방문한 것은 단지 규칙 위반을 면해 보려는 구실을 만들려고 한 것일 뿐입니다.
그는 맨 처음 레지오 단원으로서 방문하였고, 레지오 단원으로서 그 활동 대상자의 딱한 사정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도움을 받은 사람은 당연히 그를 레지오 단원으로 알고 있으며, 따라서 이 경우, 규칙 위반에 대한 어떠한 적절한 구실도 마련될 수 없는 일인 것입니다. 결국 도움을 받은 사람의 입장에서 볼 때, 그 단원의 물질적 원조는 단순히 레지오 활동의 한 부분으로 생각하게 될 것이며, 레지오로서는 그들의 생각이 옳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처럼 단원 한 사람이 규율을 어기고 분별없는 행위를 저지르면 쁘레시디움 전체가 상처를 입는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하는 것입니다. 물질적으로 도움을 베푼다는 소문은 쉽게 퍼져 나갑니다. 여러 번 반복해서 도와주어야만 소문이 퍼지는 것이 아니라, 한두 번 정도만 그런 일이 있었다 해도 소문은 널리 퍼지게 마련입니다(교본 438 쪽). "
레지오 행동단원과 빈첸시오 정회원을 겸해서 하지 못하게 하는 이유는 교본 436쪽 제39장 ‘10. 물질적인 도움을 주는 활동은 금지한다’ 에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10. 물질적인 도움을 주는 활동은 금지한다
물질적 원조는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절대로 베풀어서는 안된다. 경험에 따르면, 헌 옷가지를 가져다주는 행위도 물질적 원조의 범주에 해당된다는 사실을 밝혀 둘 필요가 있다. 레지오가 이러한 규율을 정했다고 해서 어려운 이들을 물질적으로 돕는 행위 그 자체를 가볍게 여기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레지오로서는 구호 활동을 직접적으로 실시할 수 없다는 점을 밝힐 따름이다. 가난한 이들에게 도움을 베푸는 것은 착한 행위이며, 더구나 초자연적 동기에서 그러한 일을 한다면 더욱 가치 있는 선행이다. 구호 사업을 하는 여러 훌륭한 단체, 특히 세상에 널리 알려진 빈첸시오 회(the Society of St. Vincent de Paul)는 바로 이러한 원리를 바탕으로 설립되었다. 레지오는 빈첸시오 회가 보여 준 모범과 그 정신에 힘입은 바가 매우 크다는 것을 기꺼이 밝힌다. 사실상 레지오의 뿌리는 빈첸시오 회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레지오는 이 단체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레지오는 빈첸시오 회와는 전혀 다른 분야의 사명을 부여받고 있다. 레지오 조직은 사람들에게 (물질적 도움이 아닌) 영신적 선물을 가져다준다는 원리를 바탕으로 설립된 것이다. 이렇게 영혼을 대상으로 하는 활동은 물질적 구호 활동과는 실질적인 면에서 함께 어울릴 수가 없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가) 물질적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들은 구호 단체 회원들의 방문을 반기지 않을 것이다. 그런 방문을 받는 사람들은 자신이 이웃 사람들에게 물질적 도움의 대상으로 비쳐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가지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레지오의 쁘레시디움이 물질적 원조를 하는 단체라고 알려지게 되면, 즉시 그 활동 범위가 극도로 좁아진다. 물질적 도움은 다른 단체들에게는 닫힌 문을 여는 열쇠가 될는지 모른다. 그러나 레지오의 경우에 그것은 오히려 열린 문을 스스로 잠그는 자물쇠가 될 뿐이다.
(나) 물질적인 도움을 받으리라고 기대했다가 실망한 사람들은 불만을 품게 되며, 그로 인해서 레지오의 감화력은 효력을 잃게 된다.
(다) 물질적 원조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의 경우라도, 레지오는 물질로써 영혼을 구하려 해서는 안 된다. 그러한 활동은 구호 사업을 맡아 하도록 특별한 은총을 부여받은 단체들이 나서서 수행하도록 넘겨주어야 한다. 분명한 것은, 레지오 단원이 레지오 안에서 물질적 선행을 베푼다 해도, 그 선행을 통해서 은총을 기대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레지오의 규율을 어기는 일이기 때문이다. 쁘레시디움이 이 점에 있어서 잘못 이끌리면 곧 복잡한 사정에 휘말리게 되고, 결국에는 레지오에 아픈 상처만을 남겨 주게 될 것이다. 어떤 단원들은 누구나 각자 능력에 따라 자선을 베풀 의무가 있다고 주장하면서, 자신은 레지오 단원 자격으로 도움을 베푸는 것이 아니라 단지 개인 자격으로 돕는다고 버티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주장을 분석해 보면 그가 생각하는 것처럼 문제가 그리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흔히 있는 일이지만, 레지오에 입단하기 전에 물질로써 남을 도운 일이 없었던 단원들을 놓고 생각해 보자. 그는 레지오 활동중에 물질적인 도움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그는 방문 활동을 수행하는 동안에는 아무런 도움도 베풀지 않는다. 그러다가 다른 날 ‘개인 자격’으로 다시 찾아가서 물질적인 도움을 베푼다. 이 경우 그는 분명코 물질적 원조에 관한 레지오의 규칙을 어기는 것이며, 같은 활동 대상자를 두 번에 걸쳐 방문한 것은 단지 규칙 위반을 면해 보려는 구실을 만들려고 한 것뿐이다. 그는 맨 처음 레지오 단원으로서 방문하였고, 레지오 단원으로서 그 활동 대상자의 딱한 사정을 알게 되었다. 그러므로 도움을 받은 사람은 당연히 그를 레지오 단원으로 알고 있다. 따라서 이 경우, 규칙 위반에 대한 어떠한 적절한 구실도 마련될 수 없는 일이다. 결국 도움을 받은 사람의 입장에서 볼 때, 그 단원의 물질적 원조는 단순히 레지오 활동의 한 부분으로 생각하게 될 것이며, 레지오로서는 그들의 생각이 옳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이처럼 단원 한 사람이 규율을 어기고 분별 없는 행위를 저지르면 쁘레시디움 전체가 상처를 입는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물질적으로 도움을 베푼다는 소문은 쉽게 퍼져 나간다. 여러 번 반복해서 도와 주어야만 소문이 퍼지는 것이 아니라, 한두 번 정도만 그런 일이 있었다 해도 소문은 널리 퍼지게 마련이다. 레지오 단원이 어떤 사정으로 꼭 물질적 도움을 주어야 하는 특별한 경우가 생겼다면, 레지오의 규칙을 어기고 레지오를 난처한 입장에 빠뜨리지 않고서도 얼마든지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겠는가? 가령, 친구를 통하여 익명으로 물품을 전달하거나 또는 적당한 구호 기관을 통하여 자신이 나서지 않고서도 도와 줄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방법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 방법을 이용하지 않는다면, 결국 그는 자신의 선행에 대하여 하늘에서 보상받기 보다는 현세에서의 보상을 더 바라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는 일이다. 그러나 레지오 단원들은 활동중에 만나게 되는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의 처지에 무관심해서는 안 된다. 단원들은 그러한 이들의 딱한 사정을 적절한 원조를 해줄 수 있는 다른 단체에 알려 주어 관심을 갖도록 만들어야 한다. 때로는 레지오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쏟았는데도 불구하고 필요한 만큼의 도움을 얻어 주지 못했을 경우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경우에도 레지오가 그 모자란 부분을 메우기 위해서 직접 나서서는 안 된다. 그것은 물론 레지오의 사업이 아닐 뿐만 아니라, 현대 사회에서 그렇게 딱한 사람을 돌보아 줄 만한 개인이나 단체가 전혀 없다고는 생각되지 않기 때문이다.
“두말할 나위 없이, 우리가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 줌으로써 동정하는 마음을 표시하는 것은 하느님께서 크게 칭찬하시는 일이다. 그러나 진리를 가르쳐 주고 일깨워 주는 활동을 통하여, 현세의 일시적 유익이 아닌 영원한 선(善)을 영혼들에게 베풀려는 열성과 노력이 훨씬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한다는 것을 어느 누가 부인할 수 있겠는가?”(교황 비오 10세 회칙 ‘그리스도교 교리 교육’ 1905) 이 물질적 원조에 관한 규칙이 너무 지나치게 좁은 의미로 해석될 수도 있다는 점이 그 동안 많은 사례를 통해서 밝혀졌다. 따라서 한 가지 사실을 분명히 하고자 한다. 즉, 봉사 활동은 물질적 원조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봉사 활동은 오히려 적극 권장해야 마땅하다. 때때로 레지오가 신앙에 대한 문제에는 민감하지만, 막상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현실적 문제에 대해서는 관심을 쏟지 않는다는 비난을 받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이때 단원들의 봉사 활동은 이러한 불필요한 오해와 비난을 이해와 협력으로 바꾸어 놓는 역할을 한다. 그러므로 레지오 단원들은 허용되는 모든 방법을 다하여 사랑을 쏟고 봉사 활동에 열성을 다함으로써 그들이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말이 진실하다는 것을 보여 주어야 한다.
|
||||
태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