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성경] 성경 맛들이기: 예수님 시대의 유다교 종파 사두가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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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22-07-18 | 조회수1,818 | 추천수0 | |
[성경 맛들이기] 예수님 시대의 유다교 종파 ‘사두가이’
사두가이는 유다인들의 종교·사회·정치 생활에 많은 영향을 미쳤던 유다교의 중요한 종파(바리사이, 에세네파, 열혈당) 중 하나였습니다. 복음서에서 사두가이에 대한 언급(마르 12,18; 루카 20,27; 마태 3,7; 16,1-12; 22,23-33 참조)이 바리사이에 비해 드물게 나오는 이유는 신약 성경이 형성되던 시기에 이미 그들은 영향력을 잃은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사두가이는 일반적으로 대사제와 사제들을 배출해온 특권층으로 주로 예루살렘의 귀족 계층에 속한 사제들이었습니다. 당시 유다 최고 의회인 산헤드린은 바리사이들과 사두가이들로 구성된 유다교의 주요 법을 제정하는 기구이자 최고 법정이었습니다. 예수님께 신성 모독죄를 씌운 이들이 바로 여기에 속한 이들이었습니다.
사두가이들은 대부분 헬레니즘 문화에 정통하고 정치적 성향이 강한 사람들로서 예수님 시대 팔레스티나를 지배하고 있던 로마 당국과 좋은 관계를 유지함으로써 이스라엘 공동체 안에서 부유하고 높은 계급의 특권을 누리며 살았습니다(사도 4,1; 5,17). 하지만 대중의 지지를 받지 못해 바리사이들만큼 큰 영향력을 행사하지는 못했습니다. 더구나 사두가이는 바리사이가 받아들인 구전 전승을 인정하지 않고 모세오경(창세기, 탈출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만을 정경으로 인정했습니다. 구약의 율법을 보수적으로 또 문자 그대로 받아들였던 사두가이들은 변화하는 시대 상황에 맞추어 성문화된 율법을 해석하고 새로운 법률을 만들어 그것을 삶에 적용했던 바리사이들과 대립하면서 적대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유다인들은 삶과 죽음을 다스리시는 하느님을 향한 굳은 신앙이 있었지만, 사두가이는 율법 안에 부활에 대한 어떤 언급도 없기에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였고(마르 12,18; 사도 23,8 참조), 또 천사나 영적 존재 등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자신의 행동에 상응하는 보상과 징벌을 현세에서 받는다는 사두가이들의 신념은 현 사회에서 자기들이 누리는 지위와 부가 하느님께서 내려주신 축복의 표지라고 여겼습니다. 사두가이는 백성을 더욱더 율법의 노예로 만들었고, 율법을 통해 기득권을 누리던 자기들 입장을 정당화했기에 예수님과는 정반대 입장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예수님의 가르침과 활동들이 기존 질서 체제를 뒤엎기 위한 것이라 여기고 예수님을 철저하게 경계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곤경에 빠뜨리기 위해 난해한 질문을 제기하는 등의 방법을 썼지만, 오히려 예수님에게 하느님이나 성경에 무지한 자들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습니다(마태 22,23-33 참조).
기원후 70년에 사두가이의 주요 활동무대였던 예루살렘 성전이 로마에 의해 파괴된 후 그들에 대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습니다. 사두가이는 그들의 힘과 기득권 보전의 중심이 되었던 성전이 파괴되면서 유다인들 사이에서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어 그 정체성도 함께 잃게 되었습니다.
“너희가 성경도 모르고 하느님의 능력도 모르니까 그렇게 잘못 생각하는 것이다. 부활 때에는 장가드는 일도 시집가는 일도 없이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아진다”(마태 22,29-30).
[2022년 7월 17일(다해) 연중 제16주일(농민 주일) 수원주보 3면, 이승환 루카 신부(수원교구 복음화국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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