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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삼용 쪽지 캡슐 작성일2016-10-07 조회수2,454 추천수0 신고

[신약] 복음 이야기13: 유다인의 시간과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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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4-04-12 ㅣ No.2609

[복음 이야기] (13) 유다인의 시간과 때


 오전 6시부터 12시간을 하루로 여겨

 


 이스라엘 백성은 태음력을 사용했다. "달은 제때에 맞춰 자리를 잡고 시간과 시대의 표징을 알려 준다"(집회 43,6). 유다인의 태음력은 1년 354일로 태양력보다 11일이 짧았다. 따라서 달과 계절 간 부조화를 조절하지 않으면 안 되는 중대한 결점이 있었다. 그래서 지중해를 정복한 로마의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이 부조화를 없애기 위해 연력을 개혁, 한 해를 365일로 할 것을 결정했다. 이 때문에 태양력을 사용한 이집트에선 30일씩 12개월에 5일의 윤날을 첨가했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태양력을 채용할 수 없었다. 11일의 윤날을 달력에 넣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봄의 2월 즉 아다르와 니산 달 사이에 윤달 '베아델'을 넣었다. 이스라엘의 윤년은 1년 400일이었다. 예수님께서 공생활을 시작하기 직전 서기 29년이 이스라엘의 윤년이었다.

하지만 예수님 시대 팔레스티나를 지배한 로마인들은 자신들의 로마력을, 헬라인들은 마케도니아력을, 이집트에 거주하는 디아스포라 유다인은 알렉산더력을, 요르단 강 건너편 데카폴리스 지역에선 시리아력을, 사마리아인은 사마리아력을 사용해 매우 혼란했다. 또 사해의 에세네파는 구약 요벨의 「희년」서에 따라 1년을 364일로 지냈다.

이처럼 동시대 같은 지역에서 여러 달력을 사용했기 때문에 복음서에도 파스카 축제와 예수께서 행한 최후의 만찬 일도 미묘하게 차이가 나고 있다. 공관복음서는 예수께서 성찬례(최후의 만찬)를 제정하신 날을 무교절 첫날 저녁 즉 니산 달 14일로 보고하고 있지만 요한복음서는 파스카 축제가 시작되기 전 니산 달 12일이며, 14일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날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스라엘의 한 해는 달로 나누어졌는데 율법학자 세 사람이 증인들을 불러, 달을 본 장소, 하현달의 크기, 지평선부터의 높이 등 세밀히 물은 다음 29일째 저녁 하늘에 초승달이 뜨면 7인 위원회 법정에서 새달을 선포하고 산꼭대기에서 봉화를 올려 백성들에게 이를 알렸다.

 

 7일을 1주일로 정해 사용한 것은 유다력이 전 세계에서 처음일 것이다(창세 1장). 유다인은 창조의 7일을 1주의 원형으로 사용했고 7일째를 '하느님의 안식일'(사바트,Sabbat)로 정함으로써 종교적 의미를 부여했다. 유다인들은 주간의 일곱째 날인 이 '안식일'(오늘의 토요일에 해당)을 가장 거룩한 날로 지냈다. 그래서 그 전날을 '안식일 전날'(마르 15,42), 그 다음 날을 '준비일 다음 날'(마태 27,62)이라 부르고, 다른 날에는 서수를 붙였다. 이에 마태오복음은 주님께서 부활하신 날을 "안식일이 지나고 주간 첫날이 밝아 올 무렵"(마태 28,1)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쿰란에서 발굴된 대리석 사분의로 천문관측을 위한 눈금이 새겨져 있다. 이런 관측기구를 이용해 달력을 만들었다.



 '날'은 유다인에게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지구가 자전하는 하루를 말하고, 다른 하나는 밤에 대한 낮(주간)을 의미한다. 그레고리오력을 사용하고 있는 세계인들은 공식적으로 자정을 '하루의 시작'으로 정하고 있지만, 유다인은 '해가 지는 순간'을 그 날의 끝과 다음 날의 시작으로 생각한다. 예루살렘에서는 하루의 끝을 나팔로, 대축일에는 숫양의 뿔나팔로 알렸다.

유다인은 하루를 '새벽부터 저녁때까지'라 표현했고, 아침ㆍ저녁 제물을 바치는 시간이 표준시간이 됐다(민수 28,4; 1열왕 18,29-36). 예수님 시대 유다인들은 하루는 12시간으로 나눴다. 아침 6시를 0시로, 저녁 6시를 12시로 보았다. 이른 아침은 아침 6시이고, 3시는 오전 9시, 6시는 낮 12시, 9시는 오후 3시, 11시는 오후 5시, 오후 6시 이후는 저녁, 오전 6시 이후는 낮이라 했다(마태 20,1-10 참조). 시간을 구분하는 이 시제는 본래 바빌로니아에서 시작했다. 헬라와 로마 문명의 영향으로 유다인들이 바빌론 유배 생활을 마치고 귀환한 후 팔레스티나 전역에서 이 시제를 채용했다.

구약성경은 유다인들이 '아하즈의 해시계'를 사용했다(2열왕 20,9-11; 이사 38,8)고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밤이 되면 군영의 보초나 양 떼를 지키는 목자가 망을 보는 시간을 길이(更)로 나눴다(시편 90,4 참조). 로마인들은 팔레스티나를 정복한 후 하룻밤을 넷으로 나눈 '4경제'(四更制)를 통용했다. 1경은 약 3시간이었다. 마르코 복음은 이 4경을 정확하게 서술하고 있다. 즉 '저녁, 한밤중, 닭이 울 때, 새벽'(마르 14,35)으로 기록하고 있다. '저녁'은 등잔불이 누런 불빛을 뿜을 때이고, '한밤중'은 달이나 별이 있어도 안정이 안 돼 '파수꾼들이 아침을 기다리는'(시편 130,6) 때이며, '닭이 울 때'는 예수께서 대사제 관저에서 끌려 나와 불행한 제자 베드로의 마음을 꿰뚫어보신 시간(마태 26,75)이며, '새벽'은 지평선이 조금씩 아름답게 물들어가며 사람뿐 아니라 모든 사물이 잠에서 깨어나 하루를 다시 시작하는 때다. 이 기록을 근거로 마태오복음서의 예수께서 물 위를 걸어 제자들에게 가신 시간이 '밤 4경'(새벽 4시쯤)이었음을 알 수 있다(마태 14,25).

[평화신문, 2014년 4월 13일,
리길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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