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Re:마태 10장34절 해설~~요함 | 카테고리 | 성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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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정임 | 작성일2016-10-18 | 조회수1,404 | 추천수0 | 신고 |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그 불이 이미 타올 랐으면 얼마나 좋으랴? 내가 받아야 할 세례가 있다. 이 일이 다 이루어질 때까지 내가 얼마나 짓눌린 것인가?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이제부터는 한 집안의 다섯 식구가 서로 갈라져, 세 사람이 두 사람에게 맞서고 두 사람이 세 사람에게 맞설 것이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아들이 아버지에게, 어머니가 딸에게, 딸이 어머니에게,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맞서 갈 라지게 될 것이다."(루카 12,49-53) 성령님, 뜨거운 열정으로 주님 말씀을 되새개며 전하게 하소서. 복음 속 내용을 살펴보면 그리스도를 따름, 곧 주님의 제자 됨의 '기회비용'이 놀랍게도 사람들 안에 '분열'과 서로에 대한 '맞섬'으로 드러나고 있다. 우선 예수님은 앞으로 당신이 겪으셔야 할 죽음의 세례를 받아들이기까지 "짓눌릴"(루카 12,50) 것임을 언급하신다. 이를 위해 당신이 지불해야만 할 '대가'도 그분은 아주 분명하게 인식하고 계신다. 그렇다. 예수님은 하느님 나라 를 선포하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고, 어떤 이들은 이를 받아들이지만 또 다른 이들은 거절할 것 임을 알고 계신다. 다시 말해서 하느님 나라에 대한 예수님의 메시지는 서로를 거스르며 사람들 안에 주어질 것이다. 복음으로 불타오르는 이에게는 '중립'이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타오르는 불 위에 땔감을 더 얹어 훨훨 타오르게 하든가 물을 부어 끄든가 선택해야만 하는 것 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당신이 가져온 이 대단한 소란에 대해 일절 변명하지 않으신다. 오히려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느냐?"(51절)라고 물으시며 정공법으로 맞서신다. 예를 들어 하천의 흐름에는 천천히 흐르며 하도와 평행한 선형으로 흐르는 '층류'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대부분은 다소 무작위로 흐르며 소용돌이 등을 발생시키는 '난류'로 되어 있다고 한다. 따라서 하천의 길이를 정확히 알려면 이처럼 빠르고 어지럽게 흐르는 난류도 알아야만 하는데, 예수님 이 전하는 하느님 나라의 메시지도 우리 안에서 피할 수 없는 난류를 겪게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 예수님은 당신이 걷고 또 제자들에게 제시할 길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이해하시면서 도, 그들을 무척 당황스럽게 하신다. 필연적 난류인 '분열'과 '맞섬'이 함께 오기 때문이다. 그 런데 '분열'은 예수님이 바라셨기 때문에 오는 것이 아니다. 물과 기름이 섞일 수 없기 때문에 오는 것이고, 악은 선과 함께 어울릴 수 없기 때문에 오는 것이며, 작은 불꽃으로도 어둠을 흩 어놓을 수 있기에 하느님 나라의 메시지는 사람들 안에 '분열'을 가져오고 서로에 대한 '맞섬' 을 가져올 것이다. 야곱의 우물 2016년 8월 14일 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는 "인생은 출생과 죽음 사이의 선택이다"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 다. 삶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아마도 사람은 하루에도 알게 모르게 최소한 100개 이상의 무언가 를 선택하지 않을까 싶다. 세상을 살다 보면 이것도 좋은 것 같고, 저것도 좋은 것 같아서 둘 다 갖 고 싶지만 하나밖에 가질 수 없는 경우가 더 많다. 더 좋은 것을 선택하기 위한 결단, 그것이 우리 를 분열시킨다. 신앙도 마찬가지다. 예수님을 선택할 것인가, 지금껏 살아온 삶의 방식을 고집할 것인가? 그렇다면 희망이셔야 할 예수님이 우리의 고민거리가 되는 현실을 과연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답은 예수님에게서 찾게 된다.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그 불이 이미 타올랐다면 얼마나 좋으랴?"(49절) 세례를 통해 주님이 우리 마음 안에 지피신 불은 여전히 남아있다. 망설임으로 흐릿하게 꺼져갈지도 모르지만 결코 꺼지는 법이 없는 주님의 불을 다시 태워야 한다. 작은 불씨 가 큰 불꽃이 될 수 있도록 주님께 성령의 바람을 청해야 한다. 그러면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사랑 의 불을 지필 수 있게 될 것이다. 괴로우셨지만 행복하신 분, 예수님! 저희도 숱한 삶의 짓눌림 속에서도 당신 뒤를 따르는 행복한 선택을 하도록 저희 안에 뜨거운 당신의 입김을 불어넣어 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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