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인물]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들: 우찌야(2열왕 15,1-7; 2역대 26,1-2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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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22-07-31 | 조회수2,451 | 추천수0 | |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들] 우찌야(2열왕 15,1-7; 2역대 26,1-23)
우찌야(기원전 781-740년 통치)는 남왕국 유다의 열 번째 임금입니다. 마태오 복음의 족보는 여호람이 우찌야를 낳았다고 기록하는데(마태 1,8), 이들 사이에는 삼대(아하즈야, 요아스, 아마츠야)가 누락되어 있습니다(1역대 3,11-12). 이들 세 사람은 올바른 경신례를 외면한 나쁜 임금으로 평가되는데(2열왕 8,27; 12,4; 14,4), 마태오는 이들을 제외하고 ‘14대(代) × 3’의 완전한 도식으로 예수님께서 ‘다윗( : 숫자로 14)의 후손’이심을 강조합니다.
우찌야는 ‘아자르야’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합니다(2열왕 15,1-2; 2역대 26,1-3). 유다 임금이 두 개의 이름을 가진 것은 흔한 일이었는데(예. 살룸/여호아하즈, 마탄야/치드키야), 아자르야는 본명이고 우찌야는 즉위할 때 얻은 공식 이름으로 여겨집니다. 우찌야(‘주님은 나의 힘이시다’)와 아자르야(‘주님이 도우신다’) 모두 ‘오직 하느님께 의탁하며 도움을 청한다’는 의미를 담은 이름이지요. 우찌야의 삶은 자신의 이름처럼 하느님께 의탁하여 크게 성공했던 전반기와(2역대 26,1-15) 그분을 저버리고 교만에 빠져 쇠락했던 후반기로(2역대 26,16-23) 나누어지는데, 이는 조상 다윗과 솔로몬과도 많이 닮았습니다.
분명 우찌야는 세 선왕들과는 달리, 예수님의 족보에 남을 만큼 유다 왕국에 찬란한 업적을 남겼습니다. 그는 해상 무역을 활성화하고 목축과 농경을 장려하여 나라를 부유하게 만들었습니다. 또 선왕 아마츠야가 전투에 패하여 허물어진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여 국가적 위상을 회복하고, 필리스티아인들과 광야 부족들을 정벌하고 군대를 정비하여 나라를 군사 강국으로 만들었지요. 역대기 저자는 이 모든 성공의 이유가, ‘우찌야가 즈카르야의 가르침에 따라 하느님을 찾고 그분을 경외했기 때문’(2역대 26,5.7.15)이라고 단언합니다. 우리도 꼭 마음에 새겨야 할 대목입니다.
그러나 우찌야는 강해지면서 교만해지더니 하느님을 저버렸습니다. 그는 조부 요아스와 부친 아마츠야의 행태를 따라(2열왕 12,4; 14,4) 백성의 산당(가나안인의 우상 숭배가 행해지던 곳) 예배를 방관하였고(2열왕 15,4), 제 자신도 예배 규정을 무시하며 제단에서 향을 피우는 사제의 특권마저 가로채려다가 이마에 나병이 생기고 맙니다(2역대 26,16-19). 하느님 은총의 인호를 받는 부위인 이마에 외려 하느님 진노의 낙인이 찍힌 셈이지요(교부 키프리아누스). 우찌야는 죽는 날까지 나병 환자로 별궁에서 살다가, 부정한 이라는 이유로 임금들의 무덤에 영예롭게 들지 못하고 왕실 묘지에 딸린 터에 묻힙니다. 참 특이한 점은, 우찌야가 불운했던 긴 세월 속에서도 하느님께 치유와 자비를 청했다는 언급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성왕 히즈키야(이사 38,1-8)와 이방인 장군 나아만(2열왕 5,1-18)을 치유하셨던 하느님께서는, 우찌야가 당신께 자비와 용서를 청하며 원래의 신실했던 삶으로 다시 돌아오기만 한다면 반드시 치유를 주셨을 터인데 말입니다.
성공과 안정, 평화로운 일상이 하느님께 대한 사랑과 감사가 아니라, 오히려 더 이상 그분을 바라지 않는 나태함과 교만함을 가져올 수 있음을 기억하며 깨어있어야 합니다. 당장 건강의 회복이나 고민의 해결을 청하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한편으로 ‘지금 이 고통이 나로 하여금 다시 하느님을 순수하게 찾고 그분 품안에서 기쁘게 살아가라고 마련해 주신 계기는 아닐까?’ 하고 생각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한 요즘입니다. 매사에 혼자가 아니라 하느님의 힘으로 살아가길 청했던 다윗의 기도를 늘 가슴에 품고 살아갑시다. “주 저희 하느님의 어지심을 저희 위에 내리소서. 저희 손이 하는 일이 저희에게 잘 되게 하소서. 저희 손이 하는 일이 잘 되게 하소서”(시편 90,17).
[2022년 7월 31일(다해) 연중 제18주일 대구주보 3면, 강수원 베드로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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