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성경] 성경 맛들이기: 예수님 공생활의 출발지 갈릴래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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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22-08-07 | 조회수2,426 | 추천수0 | |
[성경 맛들이기] 예수님 공생활의 출발지 ‘갈릴래아’
신약 시대의 갈릴래아는 예수님 시대의 거룩한 땅이라고 불렸던 팔레스티나를 이루고 있던 주요 세 지방(갈릴래아, 사마리아, 유다) 가운데서 가장 북쪽에 위치한 곳이었습니다. 특히 갈릴래아는 예수님 유년 생활의 고향인 나자렛을 포함해 갈릴래아 호수 일대를 끼고 있는 지역으로, 예수님의 지상 활동의 출발지이자 중심 무대였습니다.
갈릴래아는 이스라엘에서 비옥한 곡창지대였지만, 구약 시대 때부터 이집트에서 근동으로 가는 교통의 요충지였기에 이곳을 탐한 이방 세력도 많았습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정복을 시작했을 때도 이곳의 원주민은 끝까지 저항했습니다. 훗날 납탈리, 즈불룬, 아세르 지파가 나눠 차지했지만, 가나안족과 섞여 살아야 했습니다(판관 1,30-33 참조). 이후 갈릴래아는 다윗 시대에 와서야 유다왕국에 완전히 편입되었지만, 솔로몬 이후 남북으로 갈라지면서 다시 혼돈의 땅이 되었습니다. 기원전 734년 아시리아는 북이스라엘을 정복하면서 이 지역의 유다인들을 대부분 추방시켰습니다. 이렇게 해서 갈릴래아는 또다시 이방인 피가 섞이고 외래 종교와 문화가 넘쳐 ‘이민족들의 갈릴래아’(마태 4,15),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고장’(마태 4,16)으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신약 시대에 예수님께서 활동하시던 당시 갈릴래아는 헤로데 임금의 뒤를 이은 헤로데 안티파스(기원후 39년까지 통치), 헤로데 아그리파스 1세(기원후 44년까지 통치) 그리고 헤로데 아그리파스 2세가 차례로 그 자리를 이어받았습니다. 기원 후 70년 예루살렘이 로마에 의해 완전히 파괴된 이후에 갈릴래아는 유다교 학문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복음서들은 예수님의 공생활 대부분이 갈릴래아 지방에서 이루어졌다고 전해주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의 공생활 시작(루카 4,16-19 참조), 카나의 첫 번째 기적(요한 2,11 참조), 산상설교(마태 4,18-22) 그리고 예수님께서 행하신 33가지 큰 기적들 가운데서 25개가 갈릴래아에서 이루어졌습니다. 특히 예수님의 비유를 꾸미는 생생하고 구체적인 예들은 갈릴래아 사람들의 생활을 관심 있게 보셨던 예수님의 예리한 관찰에서 비롯(하늘의 새들, 들에 아름답게 피는 꽃들, 알곡으로 가득 찬 곳간들, 밭에 씨를 뿌리는 사람 등) 되었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제자들도 대부분 갈릴래아 출신이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복음서는 예루살렘 중심의 남쪽 유다인들은 갈릴래아 사람들이 유다 민족으로서 혈통을 순수하게 보존하지 못하고 전통 역시도 제대로 지켜 내지 못했다는 이유로 그들을 무시하거나 멸시하고 있었음을 잘 보여 줍니다(요한 1,46; 7,41.52 참조).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에서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았던 자들에게 열려 있는 하느님의 놀라운 자비를 보여 주셨고, 바로 그곳에서 그분은 인간다운 대접을 받지 못하며 어둠 속에 사는 이들에게 빛으로 오신 분이셨습니다(마태 4,16 참조). 우리 역시 부활하신 주님을 믿고 그분의 가르침을 전하기 위해 세상 사람들이 외면하고 소외된 지금 이 시대의 ‘갈릴래아’를 찾아 발걸음을 돌려야 할 때입니다.
“세상에는 빵 한 조각 때문에 죽어가는 사람도 많지만, 작은 사랑도 받지 못해서 죽어가는 사람은 더 많다”(성녀 마더 데레사).
[2022년 8월 7일(다해) 연중 제19주일 수원주보 3면, 이승환 루카 신부(수원교구 복음화국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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