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성경] 성지에서 만나는 성경 말씀: 옷자락 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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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22-09-26 | 조회수3,101 | 추천수0 | |
[성지에서 만나는 성경 말씀] 옷자락 술
민수 15,38에는 “옷자락에 다는 술”에 관한 규정이 나옵니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일러라. (…) 대대로 옷자락에 술을 만들고 그 옷자락 술에 자주색 끈을 달게 하여라.” 옷자락 술은, 예부터 유다인들이 몸에 착용한 ‘성구갑’과, 건물 문설주에 붙이는 ‘메주자’와 더불어 오래 사용해온 가장 중요하고도 일상에 녹아 있는 신앙의 도구입니다.
민수 15,39-41에서는 옷자락 술을 늘어뜨리고 다녀야 하는 까닭을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그것을 볼 때마다 이집트 탈출의 기적을 떠올리며 하느님께서 주신 계명을 실천하고 우상 숭배의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하여라.’ 민수 15,38에 따르면 옷자락 술은 자주색, 곧 푸른색에 가까운 자색 털실로 만들도록 규정되어 있습니다. 옛 유다교 전통에서는 그것이 하늘을 연상시키는 색이기 때문이라고 풀이하였는데요(『바빌로니아 탈무드』 므나홋 43ㄴ), 아마 그보다 더 설득력 있는 이유는 자색이 왕실과 귀족을 상징한다는 데 있을 것입니다. 당시 자색 염 료는 이스라엘의 북쪽(현 이스라엘의 하이파 시와 레바논) 바다에 사는 뿔고둥의 체액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라매우 귀했습니다(『바빌로니아 탈무드』 므나홋 44ㄱ). 뿔고둥 만이천 마리에서 추출할 수 있는 양이 겨우 1.4그램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자색 옷은 임금과 귀족만 입을 수 있었습니다(에스 8,15; 1마카 10,20 등). 로마 병사들이 예수님께 자색 옷을 입히고 유다인의 임금이라며 조롱한 배경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요한 19,2-3 등). 모세오경 율법에서 옷자락 술을 자주색으로 규정한 까닭도, 이스라엘이 하느님의 백성(민수 15,40)이자 사제의 민족(탈출 19,6)임을 표시하려는 데 있었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다 로마 시대를 거치면서 흰색으로 바뀌게 되는데요(『미쉬나』 므나홋 4,1; 『민수기 라바』 17,5), 당시 유다인들이 로마에 대항하는 독립 운동을 두 차례나 일으켰다가 응징 당하는 바람에 몹시 가난해져 자색을 쓸 여력이 사라진 탓입니다.
신약성경에도 옷자락 술이 여러 번 언급됩니다. 예수님은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성구갑을 넓게 만들고 옷자락 술을 길게 늘어뜨리며 자기를 드러내기 좋아한 점을 지적하셨습니다(마태 23,5). 마태 9,20-21과 루카 8,44에서도 옷자락 술과 관련된 일화를 찾을 수 있습니다. 하혈병을 앓던 여인이 군중 속에서 예수님의 옷자락 술을 만지고 병에서 해방되었다는 대목입니다(그림). 바로 여기서 예수님께서도 일반 유다인처럼 술 달린 옷을 입고 다니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베푸신 은총을 잊고 잘못된 길로 빠지지 않도록 증표를 몸에 달아 은혜를 되새기게 한 건, 유혹에 흔들리기 쉬운 인간의 성정을 생각하신 하느님의 뜻입니다. 지금의 우리도 저마다 체험한 하느님의 은총을 마음에 깊이 새기고, 믿음이 약해질 때마다 그 기억을 꺼내봐야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 김명숙 소피아 - 예루살렘 히브리대학교 구약학과에서 공부하여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으로 일하며, 수도자 신학원 등에서 구약학을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는 <에제키엘서>와 <예레미야서 1-25장>, <예레미야서 26-52장>이 있다.
[2022년 9월 25일(다해) 연중 제26주일(세계 이주민과 난민의 날) 의정부주보 6면, 김명숙 소피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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