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인물] 성지에서 만나는 성경 말씀: 아람장군 나아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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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22-10-10 | 조회수2,007 | 추천수0 | |
[성지에서 만나는 성경 말씀] 아람장군 나아만 (1)
물 귀한 이스라엘에서 요르단강은 젖줄입니다. 예부터 국경 구실도 해온 이 강은 헤르몬산에서 시작해 갈릴래아 호수를 거쳐 사해까지 이어집니다. 세례식을 하는 순례자들도 이 강에서 종종 볼 수 있는데요, 그때마다 같은 강에서 몸을 씻었던 아람 장군 나아만이 떠오릅니다. 2열왕 5장은 나아만이 요르단강에서 나병을 떨치고 새 살을 얻었다고 전합니다. 그가 병든 몸 대신 새 살을 얻은 일이 옛 자아에서 새 자아로 거듭나게 해주는 세례식과 비슷합니다. 다만 우리는 나아만이 치유 받았다는 점만 기억하고, 그가 어떻게 그런 은총을 누리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지요. 그런데 2열왕 5장에 나오는 몇몇 대목은, 그가 하느님의 자비를 입기에 충분한 사람이었음을 짐작하게 합니다.
그는 아람 임금을 보필한 직급 높은 장군이지만 나병 환자였습니다. 그런 그에게 은총의 서막을 열어준 이는 이스라엘에서 잡혀온 한 소녀입니다. 그 소녀가 나아만을 도와줄 예언자가 사마리아에 살고 있다고 알려줍니다(3절). 놀랍지요. 자기를 잡아온 타국인을 위해 이런 충언을 해준다는 점이 말입니다. 아마도 나아만 부처(夫妻)는 포로 소녀의 마음을 얻을 만큼 선량하고 덕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소녀의 조언으로 나아만이 자기 임금의 편지와 선물을 받아 이스라엘로 가자, 이스라엘 왕은 이를 음모라 생각해 혼비백산합니다(7절). 그러나 엘리사가 심부름꾼을 보내어 나아만의 방문 목적과 해결책을 알려주었고, 왕은 그제서야 안심합니다.
이후 나아만은 엘리사의 집으로 가게 되는데, 높은 장군의 행차니 그 모습이 얼마나 위풍당당했을지 상상하고도 남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다 구경 나왔을 테고, 엘리사도 당장 나가 그를 맞아야 할 판이었습니다. 하지만 엘리사는 나아만의 상처를 들여다보거나 기도를 해주기는커녕 이번에도 심부름꾼에게 말만 전하게 합니다. 요르단강에 가서 일곱 번 몸을 담그라고 말입니다. 이에 나아만은 무성의한 대접에다 요르단강이 실상 보잘것없는 작은 강이었기에 역정을 냅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부하들이 그를 “아버님”(13절)이라 칭하며, 손해볼 것 없으니 엘리사의 말대로 해보시라고 설득합니다. 여기서도 생각해 봅니다. 만약 부하들이 나아만을 미워했다면, 이런 말을 해주었을까요? 나아만이 소녀의 마음을 얻었듯이 부하들의 마음도 얻었기에, 그들이 충성했던 건 아닐까요? 곧 나아만은 치유의 은총을 우연히 누리게 된 게 아니었습니다. 그동안 베풀어온 덕을 은총으로 돌려받았던 것입니다.
다음 주에는 나아만의 병과 관련된 이야기를 계속해서 이어가 보겠습니다. [2022년 10월 9일(다해) 연중 제28주일 의정부주보 6면, 김명숙 소피아]
[성지에서 만나는 성경 말씀] 아람 장군 나아만 (2)
지난 주에는 아람 장군 나아만이 요르단강에서 일곱 번 몸을 담근 뒤 나병을 치유받은 일에 대해 이야기하였습니다. 이 사건은 하느님의 은총이 더 이상 이스라엘 백성에게만 한정되지 않는다는 점을 전해줍니다(루카 4,27 등). 주님의 은총이 그분의 가르침과 더불어 세상 만민에게 전파되리라는 예고지요.
나아만은 병에서 해방된 뒤 엘리사를 만나 ‘이제부터는 이스라엘의 하느님께만 제물을 바치겠다.’고 맹세합니다(2열왕 5,17). 그러면서 흙을 두 가마니 달라고 청합니다. 언뜻 이상해 보이는 요청이지만, 여기에는 그만한 배경이 있습니다. 당시 고대 근동인들은 ‘이스라엘 땅에서만’ 이스라엘의 하느님을 섬길 수 있다고 믿었던 것입니다(1사무 26,19; 시편 137,4 등). 이방인의 땅은 우상숭배로 부정해진 곳인 데다(아모 7,17; 호세 9,3-5), 당시 사람들은 나라와 민족에 따라 다스리는 주신(主神)이 다르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모압은 크모스 신(민수 21, 29), 암몬은 밀콤 신(예레 49,1), 바빌론은 마르둑 신이 다스린다고 믿은 식입니다. 그래서 나아만도 아람에서 하느님을 섬기기 위해선 이스라엘의 흙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상한 점은 한 가지 더 있습니다. 나아만은 2열왕 5,1에서 “나병 환자”로 나오는데, 격리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오히려 그는 아람 임금이 아끼던 장군이라 궁전 출입도 가능했을 터입니다. 여기서 나아만의 병이 우리가 아는 한센 병과는 다른 종류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우리말 성경에 “나병”으로 옮겨진 히브리어는 [짜라앗]인데, 이는 건선과 백반을 비롯하여 악성 피부병을 통칭하던 용어입니다. 옷이나 건물에 피는 곰팡이를 가리킬 때도 사용되었습니다. 사실 신체의 일부가 문드러지거나 떨어져 나가는 한센 병은 구약 시대에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고고학적으로 발굴된 구약 시대의 인골 어디에서도 한센 병의 흔적이 발견된 예가 없고요. 한센 병은 기원전 200년경 처음 등장한 걸로 추정되며, 신약 시대에는 분명히 존재했던 걸로 보입니다. 어쨌든 이를 종합하면, 나아만은 한센 병 환자가 아니라 단순히 악성 피부병을 앓던 환자인 셈입니다.
나아만은 자기 나라로 돌아가기 전에 엘리사에게 한 가지 양해를 구합니다. 아람 임금이 림몬 신전으로 갈 때 자기에게 의지하므로 본인도 예배하러 갈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2열왕 5,18). 그때 엘리사는 ‘안 됩니다!’ 하지 않고 오히려 “안심하고 가십시오.”(19절)라고 말하여 마음의 부담을 덜어줍니다. 그는 자신이 지키는 신앙의 관습이나 신념을 타인에게 무조건 강제하지 않았습니다. 간혹 어떤 종교인들은 제사 음식을 만들거나 제사상에 절하는 행위를 용납할 수 없다며 강경한 태도를 보이곤 합니다만, 엘리사가 나아만에게 한 대답은 종교 갈등으로 가정이나 나라에 불화가 생겨 해체되는 걸 하느님께서 원하시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우리 역시 하느님의 이름으로 자신의 신념을 타인에게 강요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게 해줍니다. [2022년 10월 16일(다해) 연중 제29주일 의정부주보 5면, 김명숙 소피아]
* 김명숙 소피아 - 예루살렘 히브리대학교 구약학과에서 공부하여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으로 일하며, 수도자 신학원 등에서 구약학을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는 <에제키엘서>와 <예레미야서 1-25장>, <예레미야서 26-52장>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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