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마리아가 하느님의 어머니 라고요?-----장희성 프란치스꼬 신부 | 카테고리 | 천주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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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유타한인성당 | 작성일2017-02-08 | 조회수2,098 | 추천수0 | |
[사서함 16호] 마리아가 하느님의 어머니라고요? 장희성 프란치스꼬(마리아회 지부장 · 신부) 8월 15일은 성모 승천 대축일입니다. 마리아에 대한 여러 호칭 가운데 ‘천주의 모친’이라는 호칭이 있습니다. 삼위 일체로부터 연유된 호칭인 듯한데 곧 성자의 어머니이시니 성부의 어머니도 된다는 말입니까? ‘하느님의 어머니’라니요? 이 호칭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요? ‘하느님의 어머니’란 말은 쉽게 표현하자면 하느님이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낳으신 마리아를 일컫는 말이다. 가톨릭 신자들이 많이 쓰는 이 말은 완전한 인간인 예수 그리스도의 신비를 이해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역사적 성격을 가진 개념이다. 역사적 배경 2~3세기까지만 해도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깊은 역사적 배경을 가진 유대교와 인간 이성의 위대함을 자량하던 그리스 철학, 그리고 전세계를 굴복시킨 로마의 정치적 배경 아래서 그 자그마한 모습을 드러냈다. 이러한 상황 하에서 초기 신학의 대부분은 이교도의 철학과 교회 안의 잘못된 가르침과 관련한 그리스도교의 진리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이 시기에는 알렉산드리아 학파가 교회를 발전시킨 시기로서, 마리아는 하와와 자주 비교되기 시작했으며, 그리스도 잉태 순간부터 마리아의 신앙을 이해하기 시작하였다. 즉 체계적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구원 안에서 마리아의 인격과 역할을 아들과 결부시키는 시기라 하겠다. 이후 박해의 시기가 끝나고 새로운 통찰들이 발견되었지만 그리스도의 신비, 삼위 일체의 신비와 관련해서 신앙의 오해를 불러일으켰던 여러 이단들이 나오게 되었다. 즉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한 아리아니즘과, 강생한 그리스도 안에는 신성과 인성이라는 두 가지 분리된 인격이 존재한다는 네스토리아니즘을 낳게 되었다. 네스토리아니즘에 따르면 이 두 가지 분리된 인격으로 말미암아 마리아는 인간인 예수의 어머니이지 하느님의 어머니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처럼 하느님의 어머니란 말은 시대를 거치면서 많은 오해와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 예수의 신성만을 강조할 경우 하느님의 어머니는 예수 이전에 존재해야만 하는 선재성(先在性)으로 말미암아 마치 그리스 신화의 여러 여신들 중의 하나로 곡해될 소지가 있으며 동정녀 무염 시태와 관련하여 그리스도의 유일 중재성과 구원의 보편성이 손상되는 문제점(구원을 필요로 하지 않는 단 한 사람의 예외가 생기게 된다.)을 야기시킨다. 예수의 인성만을 강조할 경우에는 하느님의 어머니가 단순히 생물학적인 차원에서 이해될 수밖에 없다. 하느님의 어머니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이라는 두 본성의 일치가 전제되어야만 가능하다. 이처럼 마리아가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교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정체를 규명하는 과정에서 형성되는 특성을 가진다. 이러한 배경하에서 교회는 마리아의 인격적 특성과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그녀의 탁월한 은총을 참된 신앙과 신비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로 이해하였다. 그리하여 에페소 공의회(431년)는 마리아가 참된 하느님의 어머니임을 인정하였다. 신적 모성(神的母性) ‘테오토코스’(θεοτοκο?)는 ‘하느님의 어머니’를 뜻하는 그리스어다. 앞에서 언급한 네스토리아니즘(네스토리우스는 인간 그리스도의 어머니란 뜻에서 크리스토토코스 Χριστοτοκο?라 하였다)에 대해 마리아의 신적 모성을 방어하는 뜻에서 마리아를 테오토코스라 하였다. 마리아의 신적 모성을 뒷받침할 수 있는 성서적 근거를 몇 가지 알아보자. 루가 복음 1장 35절의 ‘감싸 주신다’라는 표현은 출애굽기 13장 19장 40장에서처럼(구름이 감싸 주신다) 천주성을 의미한다. 마리아가 엘리사벳의 집에 석 달 동안 머문 것은 야훼의 궤를 석 달 동안 오베데돔의 집에 모셔 두어 야훼께서 집안에 복을 내려 주신 것(2사무 6,11)과 연관시켜 볼 수 있겠다. 마리아가 엘리사벳의 집을 방문했을 때 뱃속의 아기가 기뻐 뛰논 것(루가 1,44)과 같이 야훼의 궤가 다윗의 성에 도착했을 때 다윗은 기뻐서 춤을 추었다(2사무 6,16). 구약성서는 야곱, 이사악, 삼손, 사무엘과 같은 위대한 인물들의 출생을 하느님의 개입과 연관시켰으며 신약성서에서도 세례자 요한이 이러한 도식을 따랐다. 그러나 마리아의 잉태와 예수의 탄생은 이들과 비교할 수 없는 더욱 고차원적이라는 것을 성서는 여러 곳에서 진술하고 있다. 요한 묵시록 12장 1절을 보면 “한 여자가 태양을 입고 달을 밟고 별이 열두 개 달린 월계관을 머리에 쓰고 나타났습니다.”라는 말씀이 나온다. 성서에서 태양은 하느님을 상징하는 가장 대표적인 표상으로서 이는 하느님의 초월성을 훌륭하게 표현하는 것이며, 달은 하느님의 외투(시편 104,2)로서 시간의 구분을 주관하는 달을 여인이 밟고 있다면 그것은 그녀가 시간을 지배하는 시간의 주인임을 뜻한다. 빛을 내는 별들은 하늘의 영광에 도달한 의인들의 특징이며, 면류관은 신약성서 전체에서 나타나듯이 승리와 개선을 상징한다. 요한 묵시록 12장 4절의 “그 여자가 아기를 낳기만 하면 그 아기를 삼켜 버리려고”의 내용과 관련하여 볼 때 그 여인은 영광을 받음과 동시에 박해를 받아야 하는 운명에 서 있으며 “당신의 마음은 예리한 칼에 찔리듯 아플 것이다”(루가 2,35). 이는 그리스도의 수난과 부활 혹은 신성과 인성의 파스카 신비를 더욱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해준다.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표현의 의미는 그분의 탁월한 모성으로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니신 두 본성의 일치를 보장하는 동시에 일치의 주체를 명백히 드러낸다. 이는 영원으로부터 천주성을 지니는 성삼의 제2위격인 말씀이 마리아에게서 인간성을 취했다는 위격적 일치를 드러낸다. 육화는 전적으로 하느님의 행위이며 하느님은 마리아와 자유롭게 이야기하고 신앙에서 나오는 그녀의 응답을 기다린다. 또한 위격적 일치의 결과 속성 교환의 원칙도 적용된다. 말씀이 마리아의 품안에서 인간성을 취했다면 속성 교환의 원칙에 따라서 마리아를 하느님의 어머니라 부를 수 있다. 마리아는 일차적으로 그녀의 절대적인 신앙으로 그리스도의 모친이 되었고 그 다음에 비로소 육체적으로 모친이 되었다. 따라서 하느님의 어머니로서의 마리아의 모성은 그리스도 안의 두 본성을 양태론적인 관점에서가 아니라 전인적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가톨릭 신자이건 비신자이건 적지 않은 사람들이 마리아를 교회 일치에 가장 고통스러운 장애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프로테스탄트에서 마리아를 어떻게 생각하든간에 칼빈이나 루터, 츠빙글리와 같은 초기 종교 개혁가들은 마리아에게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명칭을 적용하였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마리아가 구세주의 좋은 어머니로서 완전 무결한 신앙으로 완덕의 모범이 되셨으며 구세 사업의 협력으로 말미암아 은총의 세계에서 우리의 어머니가 되었다고 가르친다(교의헌장, 8장). 그러므로 “주님의 어머니”(루가 1,43)는 하나의 야훼 신앙에서와 같이 오직 하나의 어머니로서 형제들의 분열이 아닌 일치의 원인이 된다. 교황 바오로 6세가 공의회 폐막 연설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마리아에 대한 가톨릭 교리의 인식은 언제나 그리스도와 교회의 신비에 대한 올바른 이해이며 하느님의 어머니이며 우리의 어머니이기에 우리는 그분께 자녀다운 합당한 효성을 드려야 한다. [경향잡지, 1994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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