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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Re:성모신심이 생겨난 역사를 알려주세요! 카테고리 | 천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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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정임 쪽지 캡슐 작성일2017-02-10 조회수2,856 추천수0 신고

조규만 주교님의 성모님 이야기 다시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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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톨릭 신앙의 보물들. <16> 공의회-(하)신정훈 신부(가톨릭대 성신교정 교수)

▲ 종교 분열을 수습하기 위해 열린 트리엔트공의회. 사도들의 후계자인 주교들은 교회가 새로운 문제에 직면할 때마다 함께 모여 성령의 이끄심으로 지혜를 모았다.


 첫 번째 공의회는 325년 니케아에서 개최됐다. 공의회를 소집한 이는 로마 황제였던 콘스탄티누스였다. 당시에 문제가 됐던 것은 "예수님이 하느님이신가" 하는 것이었다.
 
 역사 속 공의회들
 알렉산드리아의 사제였던 아리우스는 예수님이 훌륭한 분이지만 하느님과 같은 분은 아닌, 인간 중에 뛰어난 분 내지는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중간쯤 되는 분이라고 주장했다. 이것을 '아리우스 이단'이라고 하는데, 삼위일체 교리가 형성되지 않은 당시에 이 가르침을 지지하는 이들이 교회에서 다수를 차지했다. 예수님은 하느님과 같은 분이라고 고백하던 정통 신앙과 대립한 것이다. 제국 안정에 더 큰 관심을 가진 황제는 정통과 이단에 대한 구분보다는 어떤 식으로든 교회 가르침이 통일되기만을 바랐다.
 
 공의회 시작 당시만 해도 수적으로 우세하고 황제와 가까웠던 아리우스의 주장이 관철될 것을 예상했지만, 성 아타나시우스 교부의 활약으로 '예수님이 성부와 한 본체로 만물을 창조하신 분'이라는 신앙 고백문을 제정하고 정통 교리로 확립했다. 첫 번째 보편 공의회는 비록 세속의 권력인 황제 명으로 소집됐지만, 공의회를 이끄시는 분은 성령이라는 사실을 드러낸 사건이었다.
 
 두 번째 공의회는 381년 당시 로마 제국의 새로운 수도인 콘스탄티노폴리스, 지금의 터키 이스탄불에서 열렸다. 당시에 문제가 됐던 것은 "성령께서 누구이신가"였다. 이 공의회에서 오늘날까지 우리가 사용하는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이 확정됐다. 이 공의회를 통해 모든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성부와 성자에게서 발하시고, 성부와 성자와 더불어 영광과 흠숭을 받으시며, 예언자들을 통해 말씀하시는 성령을 고백하며, 삼위일체 신앙을 굳게 믿게 됐다.
 
 세 번째 공의회는 431년 에페소에서 열렸다. 교회 전승에 따르면 에페소는 성모 마리아께서 여생을 마친 곳이다. 이곳에서 주교들은 '성모는 천주의 모친'이라는 교회 가르침을 확정했다. 사실 당시 문제의 핵심은 성모의 신원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신원이였다. '그리스도가 사람에 불과한가, 아니면 하느님과 같은 분이신가'라는 질문에서 '예수님이 하느님이시므로 성모께서 나으신 분은 천주님'이라는 사실을 확정한 것이다. 이에 따라 성모께 '천주의 모친'이라는 칭호를 드렸고, 오늘날까지 믿을교리로 지키고 있다.
 
 네 번째 공의회는 451년 칼케돈에서 열렸다. 이 공의회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신성에 따라서는 삼위일체의 두 번째 위격이신 성자이시고, 인성에 따라서는 인간 구원을 위해 죄 이외는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 되셨다'는 교리가 확정됐다.
 
 이 교리는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가 믿어야 할 성부의 아들인 동시에 우리가 온 생애를 바쳐 따라야 할 인간의 모범이라는 사실을 가르쳐준다. 대 레오 교황은 공의회에 직접 참석할 수 없었음에도 편지로 주도적 역할을 수행했다. 모든 교부들은 "레오의 입을 통해 사도 베드로가 말한다"고 입을 모았고, 교황의 의견을 전적으로 수용했다. 즉 공의회를 통해 사도들의 가르침이 변함없이 지속한다는 것을 고백한 것이다.
 
 이상의 첫 네 공의회에서 '삼위일체 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신원'이라는 그리스도교 교리의 핵심이 사도들의 후계자인 주교들에 의해 만장일치로 확정, 반포됐다. 이후 533년과 680년 두 차례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그리고 787년 니케아에서 공의회가 열렸는데, 이는 모두 첫 네 공의회의 가르침을 확인하는 장이었다. 이렇게 첫 일곱 공의회의 가르침은 동서방교회와 개신교인을 포함한 모든 그리스도교인들이 인정하고 지켜가고 있다.
 
 1054년 동서방교회가 오해로 말미암아 갈라진 이후 공의회는 서방에서만 개최됐다. 중세의 공의회로는 5번에 걸쳐 로마의 라테라노성당에서 교회생활 전반을 다루기 위해 개최된 라테라노공의회와 동서방교회의 화해를 모색했으나 최종적인 결실을 얻지 못했던 리옹공의회와 피렌체공의회, 대립 교황 등장 이후 갈라진 교회를 수습하고 교회 재정비를 위해 소집된 콘스탄츠공의회와 바젤공의회, 루터와 칼뱅의 종교개혁을 수습하기 위해 소집됐던 트리엔트공의회 등이 대표적이다.
 
 공의회, 성령의 이끄심으로
 교황이 프랑스 왕의 영향 아래 프랑스 아비뇽으로 자리를 옮겼다가 로마로 돌아온 적이 있었다. 이 과정에서 세 명이 동시에 정통 교황임을 주장해 교회가 셋으로 갈라졌다. 이 문제는 콘스탄츠공의회를 통해 해결된다. 세 교황이 동시에 사퇴하고, 새로운 교황을 선출했다. 이로 인해 공의회 권위가 교황 권위보다 높다고 생각하는 '공의회 우위설'이 등장해 한동안 지속됐다.
 
 후대에는 교황 절대주의도 등장했다. 교황은 홀로 하느님에게서 권한을 받아 행사하고 주교들은 교황의 대리자에 불과하다는 주장이다.
 
 오늘날 교회는 공의회가 교황보다 높다고 하지도 않고 교황이 공의회보다 높다고 하지도 않는다. 로마의 주교인 교황이 주교단 전체와 함께하는 공의회를 통해 교회의 최고 권한을 행사한다고 가르친다.
 
 공의회는 교회가 세상 안에서 위기에 직면했을 때마다 사도들의 후계자인 전 세계의 주교들이 모두 함께 모여 성령의 이끄심을 따라 한마음 한뜻으로 교회의 갈 길을 정했던 교회 최고 결정 기구다.
 
 여기서 가톨릭교회의 보편성이 잘 드러난다. 각각의 주교들이 홀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 함께 결정했기 때문에 그 결정은 전 세계에서 구속력을 지닌다.
 
 또한 사도로부터 현재까지 이어오는 주교들의 계승은 교회 가르침이 시대를 뛰어넘어 일관된다는 것을 보증한다. 공의회는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사도들에게 전해진 복음 말씀이 오늘날에도 그대로 전해지도록 하는 가톨릭교회의 보물이라고 할 수 있다. 정리=백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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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의회 과정]14-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마리아론/손희송 신부(가톨릭대 신학대 교수)

 

 

▲ 손희송 신부

성모 마리아에 관한 가르침은 1964년 11월 24일 반포된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교회에 관한 교의헌장」(교회헌장) 마지막 장(제8장)에서 집중적으로 다룬다. 이 내용을 다루기에 앞서 마리아론 배경부터 살펴보자.
 
 초세기(3~4세기)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에 초점을 두었다. 신약성경 초점은 하느님 아들이며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다. 마리아도 예수 그리스도와 관계에서 이야기하는데, 이는 그리스도가 누구신지를 명확히 하려는 의도였다.  

 그 당시, 특히 2~3세기엔 영지주의 흐름이 강했다. 그리스도교에 위협을 준 영지주의는 그리스도의 인성(人性)을 부정했다. 인간은 영혼(靈魂)과 육(肉身)으로 이뤄졌다. 영지주의자들은 영혼은 거룩하고 선한 것으로, 육신은 더럽고 죄스러운 것으로 여겼다. 따라서 구원은 육신에서 벗어나 영혼만 하느님께로 간다고 생각했다. 더욱이 하느님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가 더러운 육신을 가졌다는 것을 인정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는 가톨릭 신앙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영혼과 육신을 함께 지녔다. 예수는 동정녀에게서 성령으로 인해 육신을 취하셨다. 신성(神性)과 함께 인성도 지니게 된 것이다. 인성을 부정하는 영지주의 흐름에 대항해 초기 교회 교부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지 명확히 하고자 구원론적 관점에서, 또 교회와 관련 속에서 마리아를 고찰했다.
 로마서(5,12-21 참조)를 보자. 한 사람(아담)을 통해 죄가 세상에 왔지만, 또 한 사람(예수 그리스도)을 통해 구원이 세상에 왔다. 그리스도는 새 아담이다. 그리고 한 사람(하와)의 불순종과 반대로 한 사람(성모 마리아)의 순종으로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에 오실 수 있게 길을 열어 놓았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라는 마리아의 순종적 응답은 하와의 불순종을 극복한 것이다. 마리아는 새 하와다. 

 따라서 교회는 마리아처럼 그리스도의 뜻을 따라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마리아는 교회가 탄생하기 이전부터 이처럼 예수를 잉태하는 과정에서 하느님께 순종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는 교회의 자세를 미리 보여주는 것이다.
 
 초기 교회 교부들의 이같은 관점에 따라 성모 마리아에 관한 4대 믿을교리가 확립됐다. 믿을교리는 다음과 같다. 

 첫째, 마리아는 하느님의 어머니시다. 예수 그리스도는 인성과 신성을 함께 지녔다. 마리아가 인성을 지닌 예수를 낳았지만 신성은 뗄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마리아는 하느님의 어머니시다. 

 둘째, 마리아는 평생 동정으로 사셨다. 성경에는 예수의 형제, 누이가 나온다. 그러면 그들은 친형제, 친자매인가? 당시 사촌이나 가까운 이도 형제, 자매로 표현했다. 사실 그들은 형제, 자매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고대 교부들은 마리아가 성령으로 인해 동정녀로 예수를 잉태했고, 평생 동정으로 살았다고 믿었다. 이는 가톨릭교회 전통 안에서 성경을 읽기에 가능했다. 종교개혁을 한 루터도 마리아가 평생 동정이었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았으나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받아들이지 못한 것이다.
 313년 신앙의 자유 이후 순교의 길이 없어지면서 '동정'이 부각됐다. 예수 그리스도는 인성과 신성을 함께 지녔기에 우리와는 거리가 멀어 인성만을 지닌 마리아가 동정의 모델이 됐다.  

 셋째, 마리아는 승천하셨다. 마리아는 예수를 낳은 거룩한 분이기에 생애의 마지막도 남달랐을 것으로 고대 교부들은 보았다. 그러면서 성모승천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고 6~8세기에 교회 전례 안에서 성모승천 축일이 자리잡아갔다. 교황 비오 12세는 1950년 11월 1일 성모승천 교리를 믿을교리로 선포했다.  

 넷째, 마리아는 원죄없이 잉태되셨다. 마리아 생애 시작도 중요했다. 성모의 원죄 없으신 잉태 교리는 1854년 선포됐다. 

 가톨릭교회는 교회 전통 안에서 성모승천과 성모의 원죄없으신 잉태를 믿고 받아들이며 축일로 거행하고 있지만 개신교는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예수가 마리아를 통해 우리 인간에게 왔기에 마리아는 또다른 중개자다. 마리아는 예수 그리스도의 중개성을 나눠받아 우리를 위해 중개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예수의 신성에 더 초점을 두고 하느님은 정의를 심판하는 무서운 분으로만 여겼다. 반면 성모는 자비로운 분으로 생각했다. 하느님에 대한 이런 잘못된 생각으로 중세시대부터 시간이 흐를수록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가 없어진 지나친 성모 신심이 나타나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까지 계속됐다.  

 그래서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성모 마리아를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에서, 교회와의 관계에서 고찰했던 고대 교부들의 사상을 받아들여 마리아론을 다뤘다. 

 마리아론을 집중적으로 다룬 「교회헌장」 제8장의 제목은 '그리스도와 교회의 신비 안에 계시는 천주의 성모 복되신 동정 마리아'다.  

 공의회 소집 당시에는 마리아에 관한 독자적 문헌을 발표하자는 요청에 따라 '하느님의 모친이며 인간의 모친, 지극히 복되신 동정 마리아에 관해서'라는 제목의 초안이 작성됐지만 첫 회기에서 토의되지 않았다. 이후 일부 주교들이 마리아 교리를 「교회헌장」에 첨부하자는 의견이 제시되면서 특히 마리아의 위치에 관한 문제를 둘러싸고 논쟁이 벌어졌다. 표결 결과 절반이 약간 넘는 주교들의 찬성을 얻었다.  

 제목이 1차 초안과 비교해 마리아 개인의 특권과 영광에 초점을 둔 '특권 마리아론' 경향을 지양하고 마리아를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관계 안에서 고찰하려는 의도를 드러냈다. 

 「교회헌장」에서 마리아에 관한 내용은 5절(52-69항)로 구성돼 있다. 제1절(52-54항)은 마리아론의 방향을 제시한 서론 부분이다. 53항은 마리아가 하느님의 "뛰어난 은총의 선물로" 다른 인간보다 특별히 앞서 계신다는 점을 밝히며 그 분 역시 우리와 같은 교회의 한 지체라는 점을 밝힌다. 

 제2절(55-59항)은 구원계획과 구세주 업적 안에서의 마리아 위치와 역할에 대해, 제3절 '복되신 동정녀와 교회'는 마리아의 이중 역할에 대해 다룬다.
 제4절 67항에서는 올바른 마리아 공경에 대한 사목적 규범을 제시한다. 특히 마리아 공경을 거부하는 '협착한 마음'과 '거짓 과장' 두가지 극단을 피하도록 경고한다. 제5절은 종말론적 전망에서 마리아를 바라보며 마리아가 "하느님의 순례하는 백성에게 확실한 희망과 위로의 표지"라고 고백한다.
 
 공의회는 과장된 마리아 공경에서 벗어나 성경적이고 교부학적인 바탕에서 마리아론을 정립하려고 노력했다. 신앙의 원천으로 되돌아가면서 마리아를 그리스도론적, 교회론적 관점에서 고찰했다. 앞서 얘기했듯이 개인에 대한 새롭고 특별한 찬미를 보내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관계에서 마리아의 구세사적 역할을 밝히는 데 초점을 두었다. 

 "아드님의 공로로 보아 뛰어난 방법으로 구원을 받으신"(성모의 원죄 없으신 잉태) 동정녀 마리아는 천주 성자를 낳으심으로서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는 영예를 누린다(53항). 그런데 마리아 모성은 단순히 생물학적 차원의 사건이 아니다. 하느님 뜻에 온전히 자신을 맡긴 신앙적 응답을 통해 그리스도 모친이 됐고 그 다음에 비로소 육체적 모친이 된 것이다. 마리아는 구세주를 보내시려는 하느님 뜻을 믿고 받아들여 끝까지 순종함으로써 하느님 구원 사업에 협력한 '새로운 하와'가 됐다. 

 마리아의 믿음과 순종은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이들의 공동체인 교회의 전형이 된다. 또한 천상에서 이미 영혼과 육신이 영광을 누리시는 마리아(성모승천)는 교회를 위한 중개를 계속하는데,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무이한 중개에 의지하는 것이다.  

 구세주가 오실 수 있도록 길을 마련하고 믿음과 순종을 끝까지 지속한 성모 마리아의 삶은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가야할 길이다.
정리=이연숙 기자 mirinae@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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