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이야기] 야포 항
요나에서 베드로까지… 이방인 선교 열정 시작된 곳 - ‘베드로 환상 성당’ 내부. 제대는 서쪽을 향하며, 제대 앞에는 베드로가 환상을 보는 성화가 봉헌돼 있다.
이스라엘 지중해 연안에는 ‘야포’라 불리는 옛 항구가 있다. 예루살렘에서 북서쪽으로 한 시간 거리이고, 텔아비브 바로 남쪽이다. 야포라는 말은, ‘아름답다’라는 히브리어 ‘야파’에서 파생한 것으로 추정한다. 이름에 걸맞게 야포는, 이스라엘에서도 이국적인 정취를 느끼게 할 만큼 고풍스럽고 아름답다. 고대 전승은, 노아의 막내 아들 ‘야펫’이(창세 9,18) 세운 곳이라서 야포가 되었다고도 전한다. 여호수아 시대에 야포는 단 지파에게 분배되었으나(여호 19,46), 단 지파는 필리스티아인들에게 밀려 북쪽 ‘라이스’(판관 18장)라는 곳으로 이주했다(라이스는 현재 ‘텔 단’이라 불리는 유적지다). 왕정 시대에는 솔로몬이 야포 항으로 레바논산 향백나무를 들여와 예루살렘 성전을 봉헌했다(2역대 2,15). 기원전 6세기 후반 경 바빌론 유배가 끝나 유다인들이 고향으로 귀환했을 때도, 야포 항에서 레바논산 향백나무를 수입해 제2성전을 지었다(에즈 3,7).
야포하면, 잊을 수 없는 예언자도 있다. 사흘 동안 물고기 뱃속에 갇혔던 요나다. 그는, 이방 성읍 니네베로 자신이 파견된 것을 알고 반발한다. 그래서 하느님의 명령을 거부하고, 야포 항에서 배를 타고 타르시스로 도망가려 했다(요나 1,3). 스스로도 하느님이 바다와 물을 만드신 주님임을 고백하고도(요나 1,9), 바다로 도망가면 가능하리라 생각했던 것일까? 타르시스는 당시 이스라엘에서 세상 끝처럼 여겨진 곳이었는데(이사 66,19 참조), 현 스페인 남쪽의 타르테수스 유적지로 추정된다. 곧, 요나는 불가능할 것을 알면서도, 추상같은 하느님 명령을 피해 지구 끝까지 도망가려 했던 셈이다.
- 아래 쪽으로 보이는 문이 ‘무두장이 시몬의 집’ 입구다.
신약 시대에는 야포에서 베드로 사도의 활동이 두드러진다. 베드로는, 자선과 선행을 베풀어온 ‘다비타’ 또는 ‘도로카스’라 불린 여제자가 죽었다는 소식에, 부랴부랴 야포로 가서 그녀를 소생시켰다(사도 9,36-42). 당시 베드로는 ‘리따’라는 곳에 있었는데(사도 9,38), 지금의 ‘벤구리온 국제공항’ 근처다. 야포까지 버스로 15분가량 소요되므로, 아주 먼 거리는 아니다. 베드로는 또 야포에서 ‘무두장이 시몬’의 집에 머무르는 동안, 무아경에 빠져 환상을 보았다(사도 10,9-16). 무두장이는 가죽 다루는 기술자를 뜻한다. 지금도 야포 항에 가면, 무두장이 시몬의 집을 순례할 수 있다. 다만, 일반 가정이 살고 있는 집이기에, 바깥에서만 순례가 가능하다. 기념 성당은 ‘시몬의 집’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따로 봉헌되었다.
사도행전은, 야포에서 베드로가 본 환상을 이렇게 서술한다. 그가 옥상에 앉아 있을 때, 허기를 느꼈다. 그런데 사람들이 먹을 것을 장만하는 동안, 베드로가 갑자기 무아경에 빠진다. 그리고 환상 속에서 ‘큰 아마포 같은 그릇’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았다. 하느님은 베드로에게 그 안에 담긴 짐승들을 잡아먹으라 하신다. 그러나 베드로는 정결하지 못한 동물이라며 거부한다. 그러자 하느님은, 당신께서 정결하게 하신 것을 부정하다고 말하지 말라 하신다. 이렇게 세 차례 계속되다가, 그 그릇이 하늘로 다시 올라갔다. 부정한 짐승을 안 먹겠다고 반발한 베드로의 모습은 얼핏, 이방 성읍으로 파견되자 반발한 요나를 떠올린다. 이 환상이 무슨 뜻일까 생각하던 참에, 몇 사람이 베드로를 찾아왔다. 바로 카이사리아의 백인 대장 코르넬리우스가 파견한 전령들이었다(사도 10,17). 그들과 함께 카이사리아로 떠난 베드로는, 그곳에서 비로소 환상의 의미를 깨닫는다(사도 10,34-35). 곧, 예전에는 엄격하게 구분되었던 선민과 이방인 사이의 경계를 하느님께서 완전히 없애셨다는 것. 그래서 모든 민족이 정결해졌음을 깨달으면서, 이방인 선교의 첫걸음을 내디딜 수 있었던 것이다.
현재 야포 항에는 베드로가 본 환상을 기념하는 성당이 있다. 그런데 안에 들어가면, 제대가 서쪽으로 보인다. 원래는 ‘빛이신 예수님’을 상징하면서 제대를 동쪽에 봉헌하지만, 야포만큼은 반대다. 신약 시대의 이방인들을 상징하면서 로마 방향으로 제대를 봉헌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방인이었다가 하느님 백성에 접붙여진 우리에게도 야포는 특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푸른 지중해와 야포의 이국적인 정경도 아름답지만, 요나에서 베드로에 이르기까지 이방인들에 대한 열정이 시작된 곳이라 애정이 더 각별한 것 같다.
- 멀리 보이는 야포 항 풍경.
* 김명숙(소피아)씨는 이스라엘 히브리 대학교에서 구약학 석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예루살렘 주재 홀리랜드 대학교에서 구약학과 강사를 역임했으며 현재 한님성서연구소 수석 연구원으로 활동 중이다.
[가톨릭신문, 2015년 5월 10일, 김명숙(소피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