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덕으로 나아가는 길 ◎그리스도적 실존의 근원 사람은 구세주께서 세우신 구속공로에 개인적으로 그리고 주관적으로 참여하여 자기 몫을 차지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의 구원은 기계적으로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하느님을 받아들여 영접하고 최선을 다해 하느님께 협력 함으로서만 실현되는 것입니다. 7성사중 특히 '세례성사'로써 예수그리스도의 신비체의 한 부분이 됨으로서 초자연적인 생명(초성은혜)을 얻게됩니다. 그러나 각자가 이 생명을 합당하게 발전시키려고 노력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이내 시들어 버리고 맙니다. 새가 날기 위해서는 날개짓을 해야만 날 수 있고, 진수 성찬이라도 먹으려는 행동을 할때에만 먹을 수 있듯이 세례만 받았다고 구원되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합당한 생활을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1) 서양현자(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스피노자, 라이프니츠, 괴테, 칸트.)
2) 동양현자(인도의 석가, 중국의 노자, 공자, 맹자, 순자.) 이들은 유익한 도덕적 원리주의(主義), 학설, 그리고 좋은 금언(金言)을 남기고 가르쳤지만 그리스도 신자들에게는 별로 중대한 의의를 가지지 못합니다. 이들을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와 비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실로 차원이 다르기 때문이며 인간과 전능하신 하느님과의 차이이기 때문입니다. 세례는 실로 우리에게 놀라운 변화를 가져다줍니다. 어느 누구도 세례를 받지 않고는 하느님과 화해할 수 없기 때문이며 영생으로 나아갈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세례성사의 효험 세례성사는 우리의 원, 본죄와 죄벌까지 온전히 사함을 받고 하느님의 자녀가 되고 가톨릭교회의 지체가 되고 다른 성사를 받을 자격을 얻게 해줍니다. ('묵은 인간'에서 새롭게 변모된 '새 인간'이 되는 것입니다.) 세례성사때에 받은 인호는 비록 지옥에 빠지더라도 지워 버릴 수 없고 또한 세례 받기 이전의 상태로도 돌아갈 수 없습니다. 인호는 세례성사를 통하여 하느님의 백성임을 표시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더 쉽게 말해 하느님의 자녀가 됨으로 새로운 표식을 받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인호 세례성사때에 받은 인호는 재생 되었다는 생명의 씨앗이 영혼에게 심겨진 것입니다. 세례성사를 받은 사람은 성체성사를 토대로 하여 '완덕'의 건물을 세워야 합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 같이 너희도 완전한 자 되어라" (마태 5,48) 가톨릭 신자들이 '완덕' 수행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은 단순한 권고가 아니고 '의무'를 요구하는 엄하고 거룩한 '명령'입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이름으로 새로 태어났으며 그분의 공덕으로 사함을 받았고, 구원되어야만 하는 위치에 있으며, 그분이 우리를 세상에 보내셨기에 그분께 돌아가야만 하는 필연적인 원인을 제공받기 때문입니다. 세례성사 때와 견진성사 때 하느님은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이것은 하느님이 우리에게 거룩한 '완덕의 길'로 나아가라는 하느님의 사명을 받은 것입니다. 동시에 이 길의 목적지에 실제로 도달할 수 있는 능력도 아울러 주신 사실은 인간을 무한히 사랑하고 계심을 의미합니다. 이런 사랑은 사랑으로만 보답할 수 있으며 이 보답은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일입니다. ①신덕 초자연적 생명은 믿음(신덕)을 기초로 합니다. 우리의 영신생활에 있어서의 뿌리는 바로 믿음(신덕)입니다. 우리 신앙의 뿌리가 영혼의 기름진 땅속에 깊숙히 박혀 있을수록 은총의 생활은 더욱 발랄해지고 활력이 넘쳐 흐르게 됩니다. 약한 믿음, 평범한 신앙을 가지고서는 결코 '완덕'의 극치에 이룰 수 없습니다. ②망덕 망덕은 하느님께서 주신 초성 덕행(인간의 본성을 초월한 은혜)으로 예수님의 공로를 보시어 허락하신 영원한 행복을 바라고, 그 복을 얻기에 요긴한 모든 은총을 하느님의 성실하심과 자비하심으로 인해 간절히 바라는 덕입니다. 믿음이 없다면 망덕은 생겨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세례를 받았을 때 하느님은 우리 영혼의 밭에 '신덕'외에 또 다른 덕성의 씨앗을 뿌려 주셨는데 믿음(신덕)의 자매 덕성인 '망덕'입니다. 영적인 생활에 있어 '망덕'이 절실히 요구되는 이유는 영생의 길이 내세에 속한 것이기 때문이며 우리는 하느님께 바람으로 그분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초자연적 희망없이는 자주 어려움에 부닥치는 천국에로의 순례의 길을 단 하루라도 갈 수 없을 것입니다. (등산을 하는 사람이 정상에 오르려는 희망을 상실한다면, 그는 더 이상 산행길을 걸을 수가 없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③애덕 세례성사때에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초성덕행입니다. 사랑(애덕)은 가톨릭 신앙에 있어 '완덕'의 정점이요, 극치입니다. '애덕'은 만선미호 하신 하느님의 지선(至善) 하심에 모든 것 보다 사랑하는 덕입니다. "사랑을 실천하십시오. 사랑은 모든 것을 하나로 묶어 완전하게 합니다.(콜로 3:14) 애덕을 닦을 때는 다른 덕성 (신덕, 망덕, 감사, 헌신, 마음의 명랑 등)도 동시에 수연(修蓮)하게 됩니다. 영세때 하느님께서 우리 영혼의 농토에 초자연적인 생명과 함께 이를 성장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귀중한 씨앗들도 아울러 심어 주셨습니다. 씨앗 : 덕성, 능력 씨앗 중에서 가장 중요한 씨앗(애덕)이며 씨앗의 열매와 꽃은 : 초자연적 생명의 결실(완덕, 일치)입니다. ④감사하는 마음 " 말로 다할 수 없는 선물을 주시는 하느님께 감사합니다.(고린 후 9,15)" " 여러분은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에 뿌리를 박고 그 터위에 굳건히 서서 가르침을 받은 대로 믿음을 더욱 견고히 하여 넘치는 감사를 하느님께 드리십시오.(골로 2,7)" 한량없이 자비하신 하느님께 항상 어디에서든지 진실한 마음으로 감사드리는 태도야말로 완덕으로 나아가려고 노력하는 그리스도 신자의 특징적 수덕 자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선하신 하느님께 끊임없이 감사드림은 그리스도 신자의 독특한 경신행위입니다. 우리가 하느님께 받았으니 감사해야 함은 당연한 이치인 것입니다. ⑤겸손한 마음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사람은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높아진다.(마태 23,12) 감사드릴 줄 아는 마음에 가까운 덕성은 '겸손한 마음'입니다. 자기의 재능이나 장점이나 덕행을 무조건 감추고 혹은 부정하는 것이 겸손은 아닙니다. (이는 비굴함 입니다) 오히려 자기의 이러한 재질, 본분을 올바르게 인식하고 그것이 모두 자비하신 하느님께서 베풀어 주신 과분한 선물임을 항상 잊지 않고 하느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는 태도야 말로 '참된 겸손'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참으로 '겸손한 사람'은 자기의 장점을 자랑하지 않고 과소 평가하지도 않으며 오로지 정당하게 그 장점을 살리고 키워, 이 은혜를 주신 하느님께 심판날에 합당히 보고드릴 만한 생활을 해나갑니다. 그러므로 '겸손한 마음'이란 자기를 낮추어 어디서나 항상 하느님의 뜻에 맞갖기로 노력하고 성모님과 같이 "이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지금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 지기를 바랍니다. (루카 1,38)" 하며 지성으로 하느님을 섬기고 하느님께 '봉사하는 마음'입니다. '섬기는 마음'이란 헌신하는 마음입니다. 그리스도 신자란 무엇보다도 '겸손'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그리스도를 섬기고 그리스도께 헌신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겸손'이야말로 크리스챤 생활의 '근본적 덕성'이니 누구나 '겸손'덕의 수련을 게을리 해서는 안됩니다. 사실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분을 평가하는 기준은 '겸손'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성인과 그렇지 않은 사람과의 차이는 이 '겸손'의 깊이에 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⑥희생적 헌신 세례성사 때에 신비적으로 '묵은사람'은 주님과 함께 죽고 은총의 '새 사람' 이 된 그리스도 신자는 영세 후에도 계속하여 이 부활과, 재생의 신비속에 머무르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비록 세례성사 때에 원, 본죄가 모두 사하여 졌다고 하더라도 본시 원죄로 말미암은 악한 욕구(사욕편정)는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에 어떤 사람 비록 열심한 사람일지라도 모든 죄를 피하고 덕을 닦아 나가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따라서 끊임없는 '자기희생'이 따라야만 합니다. 누구든지 희생적 헌신,헌신적 마음, 자제와 극기 없이는 수덕 생활에 있어 절대로 진보하거나 발전할 수 없습니다.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마태 16,25)" ⑦명랑한 마음 " 여러 가지 시련을 당할 때 여러분은 그것을 다시 없는 기쁨으로 여기십시오. (야고 1,2)" " 주님과 함께 항상 기뻐하십시오. 거듭 말합니다. 기뻐하십시오.(필립 4,4)" 진정한 그리스도 신자는 어떠한 경우일지라도 결코 비관론자 혹은 염세(厭世) 적인 사람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오히려 비관이나 실망을 모르는 '낙천가'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안에 실망이나 낙담이란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도들은 고난이나 심한 박해를 받아 가면서도 항상 즐거운 마음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며 전교에 열심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 영혼의 밭에 씨앗을 심어주신 덕성들 중 물론 제일 필요하고 귀중한 것은 '신','망'.'애' '3덕'이지만 그 밖에 감사, 겸손, 극기, 헌신, 명랑 등의 덕성도 매우 중요함은 두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이러한 덕성들은 수련하며 완덕으로 나아가는 것이 곧 우리를 불러 주신 하느님께 보답하는 길인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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