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Re:시편 110,7의 성경풀이 (아래 글번호 9158 관련) - 검색인용글 | 카테고리 | 천주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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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삼용 | 작성일2017-06-07 | 조회수2,157 | 추천수0 | 신고 |
검색한 자료를 글쓴이의 허락없이 공유하고자 이곳에 옮겨보았습니다. 그리고 난해한 성경풀이를 좀 더 명확하게 이해하고 싶어서 "한님성서연구소"에 추가로 질문하여 답을 얻었습니다. 아래 "댓글"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군중들은 메시아의 도래를 확신하고 기뻐하였다. 윤경재 [whatayun] 2007-06-08 ㅣ No.28040 <군중들은 메시아의 도래를 확신하고 기뻐하였다> “어찌하여 율법 학자들은 메시아가 다윗의 자손이라고 말하느냐? 다윗 자신이 성령의 도움으로 말하였다. ‘주님께서 내 주님께 말씀하셨다. ′내 오른쪽에 앉아라, 내가 너의 원수들을 네 발아래 잡아 놓을 때까지.′’ 이렇듯 다윗 스스로 메시아를 주님이라고 말하는데, 어떻게 메시아가 다윗의 자손이 되느냐?” 많은 군중이 예수님의 말씀을 기쁘게 들었다. (마르 12,35-37) 우리가 ‘소월의 진달래꽃’하고 말하면 그 시의 내용 전체를 떠올리듯이 유대인들은 시편을 인용할 때 첫 구절로서 전체 내용을 대표하는 것으로 인식했습니다. 한 시편의 첫 구절이 제목과 같은 역할을 한 것입니다. 복음서에서 예수님께서 인용한 시편 110편은 다윗 왕이 지었다고 되어 있습니다. 다윗은 자신이 많은 면에서 부족한 가운데 하느님께서 뽑아 왕으로 세워 주셨다는 것을 잘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느님을 향한 찬양시와 감사송, 참회의 시, 군왕시 등을 지었습니다. 그 중에 메시아를 노래한 것으로 보이는 작품이 시편 110편과 시편 2편입니다. 이 두 시편이 신약성경에서 비중 있게 다루어지며 인용되고 있습니다. 특히 110편은 예수님께서 직접 인용하신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해석상 난해한 대목이 들어있지만 그래도 예수님 시대에는 메시아(그리스도)를 노래한 것으로 이해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비롯하여 백성들 모두 공통된 인식이 있어서 별 곤란 없이 이해하고 대화 꺼리가 되었습니다. 시편 110편은 모두 7절로 된 짧은 시입니다. 그러나 신약성경에서 복음서와 사도행전, 바오로 서간과 히브리서, 요한묵시록에서 폭 넓게 인용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잘 익혀 두어야할 시편입니다. 1. 주님께서 내 주군께 하신 말씀. “내 오른쪽에 앉아라, 내가 너의 원수들을 네 발판으로 삼을 때까지.” 2. 주님께서 당신 권능의 왕홀을 시온으로부터 뻗쳐 주시리니 당신께서는 원수들 가운데에서 다스리소서. 3. 당신 진군의 날에 당신 백성이 자원하리이다. 거룩한 치장 속에 새벽의 품에서부터 젊음의 이슬이 당신의 것. 4. 주님께서 맹세하시고 뉘우치지 않으시리이다. “너는 멜키체덱과 같이 영원한 사제다.” 5. 주님께서 당신의 오른쪽에 계시어 진노의 날에 임금들을 쳐부수시리이다. 6. 그분께서 민족들을 심판하시어 온통 주검들로 채우시고 넓은 들 위에서 머리를 쳐부수시리이다. 7. 그분께서는 길가 시내에서 물을 마시고 머리를 치켜드시리이다. 여기서 주님으로 번역된 단어는 신성4문자 ‘야훼’이며, 주군으로 번역된 단어는 ‘아도나이(主)’입니다. 그리고 의미상 ‘당신’은 아도나이를 지칭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즉 야훼 하느님께서 主께 약속을 하시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그 主를 시인이 찬양하고 따를 것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 시를 짓고 노래한 다윗이 야훼 하느님과 主를 분명히 구별하였고, 두 분 모두에게 찬양을 올렸다는 예수님의 해석은 그 당시 사람들에게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主는 야훼 하느님으로부터 오른편에 앉아 있도록 허락 받았으며, 왕권을 하사받아 시온을 다스리고 원수들마저 다스리실 것입니다. 그러니 主께서 진군하시는 날 모든 당신의 백성이 따를 것입니다. (1~3절a) 3절 “새벽의 품에서부터 젊음의 이슬이 당신의 것” 이 부분은 해석이 다양합니다. 많은 경우 시편 2편7절과 연관시켜 이해합니다. “주님의 결정을 나는 선포하리라. 나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내 아들. 내가 오늘 너를 낳았노라.’” 4절은 신약에서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멜키체덱은 아브라함이 이방민족과 전쟁에서 승리하고 십일조를 바친 살렘의 왕이며 사제입니다. 그는 아브라함을 대신해 빵과 포도주를 하느님께 봉헌합니다. 그는 하느님께서 인정해주신 영원한 사제이며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사제입니다. 그는 혈통에 의하지 않고 오로지 하느님의 뜻으로 선택된 사제입니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사제는 레위지파에서 나와야만 했으며 다른 지파 출신은 사제가 될 수 없었습니다. 그러니 레위지파가 아니고 유다지파 다윗의 후손이신 예수께서 사제가 되시는 것은 오직 하느님의 선택에 의해서 된 것이지 사람의 혈통으로 된 것이 아닙니다. 멜키체덱이 영원하고 영생을 누린 사제인 것처럼 예수님도 영원한 사제이시라는 것이 히브리서에서 나타납니다. 또 예수님께서는 당신 스스로 빵과 포도주가 되시어 하느님께 봉헌하시니 멜키체덱보다 더 뛰어난 사제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5절 ‘오른편’은 신약성경 곳곳에서 인용되고 있습니다. 7절도 왕의 권한을 지녔는데도 길가에서 시냇물을 엎드려 마시는 것을 교부들은 모두 예수께서 수난의 잔을 마시는 것으로 해석합니다. 특히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그리스도께서 죽음에 이르기 까지 자신을 낮추시어 수난의 잔을 마셨고, 그러 인해 모든 이들보다 뛰어난 이름을 받으시고 머리를 높이 드신다라고 해석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예수님께서 스스로 어떤 분이라는 것을 군중들에게 알려 주신 것입니다. 그러니 그 군중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서 메시아가 도래했다고 기뻐하게 된 것입니다. 물론 그 기쁨이 비록 잠시 동안이었지만 군중들은 자기들이 학수고대했던 메시아가 오신 것에 대해 자기들의 원한을 풀어 주리라고 큰 희망을 걸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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