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 카테고리 | 성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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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윤식 | 작성일2017-06-24 | 조회수2,357 | 추천수0 | 신고 |
이 글은 임도훈 님의 질문과 비슷한 오래 전의 어떤 분의 물음에 답한 내용입니다. 그분은 예수님 제자 중 한분인 인간 가롯 유다의 배반과 희생을 통하여 구원사업이 이루어 진 것을 두고 배반자를 통해 하느님 당신 영광 드러냄 차원에서 하느님은 과연 사랑이신지를 여쭌 것입니다. 그 때도 ‘그래도 사랑이십니다.’라는 답변 내용의 일부입니다. 참조해 주셨으면 합니다. 하느님은 누가 뭐래도 사랑이시기 때문이니까요.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미리 계획된 하느님의 구원사업이며, 십자가 죽음과 부활은 제자인 인간 가롯 유다의 배반과 희생을 통하여 이루어진 것이다. 즉, 유다의 배반은 우연히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하느님의 구원계획에 인간 유다가 제물로 희생된 것이다. 그렇다면 ‘하느님은 사랑이시다.’라는 이 말은 이율배반적이라 여겨진다. 유다의 배반이 없었다면 십자가 구원은 실패하고, 인류는 아직도 원죄에서 해방되지 못했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유다에게 감사의 기도를 해야 하며, ‘하느님은 사랑이시다.’라는 말에는 허구성이 많다. 어떤 분이 인터넷상에, ‘하느님은 사랑인가요?’라고 질문한 내용이다. ‘사랑이신 하느님의 구원계획에 인간 유다가 이용되었기에, 우리는 유다에게 감사해야 함과 그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라는 것이다. 믿음의 사람인 우리는 가끔 이런 종류의 질문을 주위에서 많이 받는다. 그런데 우리의 짧은 맘으로는 하느님께서 계획하신 구원의 원대한 뜻을 시원스레 답할 수 없다. 그렇지만 한 번쯤 되새겨 봄 직한 질문이기도 하다. 우리는 하느님은 사랑이심을 믿고, 그분 사랑과 이웃 사랑을 하면서 살고 있다. 사랑인 것과 사랑이 아닌 이 모든 것을 사랑이신 하느님은 손수 창조하셨다. 사랑인 것을 더 많이 사랑하게 하시려고, 사랑이 아닌 것도 만드셨다. 그 속에는 이브를 꾀어 죄를 짓게 한 뱀, 세례 받은 예수님을 광야에서 유혹한 사탄, 예수님을 팔아넘긴 열두 제자의 하나인 가롯 유다, 바라빠를 풀어 주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한 빌라도 총독,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라고 예수님 처형을 외친 성난 군중과 같은 사랑이 아닌 것들이 많이 있다. 가끔 우리도 이런 군중과 같은 사랑이 없는 행동을 하곤 한다. 이처럼 사랑이 아닌 것들도 있지만, 감사와 기도를 해야 할 사랑인 것은 더 많이 있다. 아기 예수님으로 몸소 오신 하느님, ‘이 몸은 주님의 종, 지금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란다.’라며 그분의 부름에 순명한 성모님, 사제와 레위인들의 다그치는 물음에, ‘나는 예언자 이사야의 말대로 주님의 길을 곧게 하는 외치는 이의 소리요.’라고 일러 준 세례자 요한 등이 있다. 이분들의 업적이 사랑의 실체요, 우리 믿음의 기준이다. 따라서, 사랑과는 거리가 먼 헤로데, 유다 등과 같은 인물에게, 하느님의 구원 계획에 등장하는 인물이라 여겨 감사의 기도를 해야 할 필요는 있을까? 정반합[正反合]이란 말의 의미를 되새겨 본다. 사랑인 것과 그것에 정 반대되는 사랑이 아닌 것의 총합된 결실에서, 더 값진 아름다운 사랑이 생겨날 것이다. 때로는 사랑인 것을 더 많이 사랑하려고, 사랑이 아닌 것을 사용할 수도 있다. 이처럼 사랑이 아닌 이것에 감사의 기도를 하다 보면, 사랑인 것에 대한 기도를 할 수 없을 것이다. 지금도 사랑이 아닌 온갖 죄악들이 우리네 삶에 많이 들어와 있다. 그래서 믿음의 사람들인 우리는 매번 회개를 하여서 하느님 보시기에 좋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것이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에, 우리는 그분 사랑과 이웃 사랑을 하면서 살고 있다. 지금 이 시각 누군가가 ‘하느님은 정말 사랑이십니까?’라고 묻는다면, ‘예, 그분은 진짜 사랑이십니다.’라고 자신 있게 답해야 할 우리들 아닌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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