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의 비유 (18) 약은 집사의 비유(루카 16,1-8)
정직하지 못한 집사가 신앙인의 모범?
- 목숨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지 못한 채 돈을 헤아리는 어리석은 부자는 종말이 다가옴을 알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나타낸다. 그림은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렘브란트 작).
이 비유는 예수의 비유 중에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것으로 알려졌다. 옛날부터 지금까지 많은 학자가 그 뜻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 노심초사했다. 가장 어려운 것은 일단 주인공이 정직하지 못한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그 사람이 모든 사람이 닮아야 하는 모범으로 제시된다는 것이다.
주인의 이해하기 힘든 칭찬
이 비유에 나오는 집사라는 직업은 자기 주인의 재산을 관리하는 사람이다. 주인을 대신해서 사업 경영을 총괄하는 권한과 의무를 지닌 사람으로서, 물건을 판매할 수도 있고, 대출을 줄 수 있었다. 그리고 주인 대신 빚을 회수하고, 경감하거나 면제해줄 수도 있었다. 그의 수입은 여러 판매나 대출에서 나오는 수수료나 보상금이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집사가 주인의 재산을 낭비했다고 고발한다. 왜 고발했는지, 그것이 진실인지 아닌지 설명이 없다. 아마도 사실이라고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주인이 그것을 추궁할 때 어떤 설명이나 자기변호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집사는 소환당해서 해고된다.
여기에서 집사의 내적 독백이 나오는데, 이는 루카복음서의 특징으로, 주인공의 생각을 독자가 같이 읽으면서 동참하게 한다. 집사는 땅을 파자니 힘이 부치고 구걸하자니 창피하다고 생각하며 주인 재산으로 친구들을 만들어 그들 덕으로 살아갈 결심을 한다. 그러고는 주인에게 빚진 사람들을 하나씩 불러 그들의 채무를 경감해 준다.
처음에 나오는 사람이 빚진 기름 백 항아리는 올리브유 4000ℓ에 해당한다. 집사는 50%를 낮추어 얼른 앉아 오십 항아리로 고쳐 적으라고 한다. 이 비유에는 두 사람의 채무자만 나오지만 모든 채무자가 빚을 경감받았고 모든 것이 빨리 진행됐음을 보여주는 표지이다.
채무자들은 그 상황에서 집사가 해고되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고 또 알 수도 없었을 것이다. 다만 집사에게 그런 권한이 있었으므로 사실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이 비유에 나오는 다른 채무자의 빚은 백 섬에서 팔십 섬으로 경감된다. 백 섬으로 번역됐지만 본래의 양은 두 배보다 많은 약 220섬에 해당한다.
그런데 이 일을 알게 된 주인은 그 불의한 집사를 칭찬한다. 바로 이 구절에 비유의 어려움과 핵심이 담겨 있다. 주인이라고 번역된 “퀴리오스”라는 용어는 주인이나 주님으로 번역될 수 있다. 주인이라고 볼 때, 주인이 자신에게 손해를 끼친 집사를 왜 칭찬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그래서 어떤 학자는 주인이 아니라 주님이 집사를 칭찬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영리하게 자신의 앞날을 준비한 자세를 칭찬하며 본보기로 세우셨다는 것이다.
신속한 상황 판단과 결단은 높게 사야
그러나 많은 학자는 주인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본다. 왜냐하면 집사의 행동 다음에 주인의 반응이 나오는 것이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손해를 끼친 집사를 칭찬한 이유에 대해서는 크게 두 가지 설명이 있다. 첫 번째로는 집사가 주인에게 손해를 끼친 것이 아니었다는 설명이다. 당시 집사는 따로 월급을 받은 것이 아니라 소작인들이나 채무자들과 계약을 맺으면서 주인에게 돌아갈 원금과 이자 외에 자신의 수수료를 따로 받는 것이 그의 수입이었다. 이 수수료는 법으로 규정된 것이 아닌 만큼 임의대로 악용될 소지가 있다. 그래서 이 이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집사가 소작인이나 채무자들에게 부린 횡포 때문에 고발을 당하고 해고됐다고 보면서, 집사가 줄여준 채무는 주인의 몫이 아니라 집사 자신의 몫이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두 번째 설명은 집사가 주인에게 손해를 끼쳤다고 본다. 이 이론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고대 문학에서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손해를 끼치거나 골탕을 먹이는 이야기들이 있으며 그중 몇몇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랫사람이 칭찬을 받거나 상을 받는 내용이 나오는 것을 근거로 든다.
집사는 소작인들과 채무자들의 빚을 경감시켜 줌으로써 그 사람들에게 영웅 대접을 받았을 것이다. 집사가 사람들 앞에 나타나면 사람들은 환호하며 감사의 표시를 했을 것이다. 만약 주인이 자기가 집사를 해고했기 때문에 집사로부터 받은 계약서가 무효라고 이야기하면 사람들은 자기에게 분노와 조롱을 퍼부을 것이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면서 주인은 결국 집사가 한 일을 받아들이고, 화가 나지만 그 교활함에 탄복했다는 것이다.
주인이 칭찬한 것은 그의 부정직함이 아니라 “영리하였기 때문” 즉, 위기에 대한 신속한 상황 판단과 단호한 결단이었다. 복음서에서 영리하다는 표현은 흔히 종말론적 차원을 파악하고, 그에 대비하는 사람의 태도를 지칭한다. 아마도 예수께서는 하느님 나라가 도래하였는데도 민첩하게 대처하지 못하는 유다 백성들과 지도자들에게 대한 경고의 뜻으로 이 비유를 말씀하셨을 것이다.
루카 복음사가는 원래의 이 비유 말씀을 제자들에게 주신 가르침으로 기술하면서 이 집사의 태도를 예수의 재림을 준비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도 하나의 귀감으로 제시하고 있다. 세속의 자녀들이 자신들의 앞날을 위해 얼마나 현명하고 단호하게 처신하는지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보고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이 집사의 비유는 예수께서 이미 가까이 왔다고 선포하신 하느님 나라를 맞이하기 위해 지금 단호하게 결단을 내리고 행동하라는 메시지이다. [평화신문, 2014년 10월 5일, 이성근 신부(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서울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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