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Re:성경쓰기를 하다 궁금해서 문의합니다. | 카테고리 | 성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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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정임 | 작성일2017-07-07 | 조회수3,844 | 추천수0 | 신고 |
현시들과 계시들을 자랑하다(2코린 12,1-10)
적수들은 신비적 현시들을 코린토 교우들에게 자랑했다. 그런 신비적 체험들은 체험 당사자들에게는 몰라도 교회 공동체에는 "이로울 것이 없으므로"(1절) 함 구하는 게 좋다고 바울로는 생각했다. 신비체험의 일종인 "신령한 말"(심령기도) 은 공동체 모임에서 삼가라고 한 지시를 상기하라(1코린 14장).
그렇지만 전에 코린토 교우들이 신령한 말에 혹했듯이 이제는 적수들이 자랑하 는 현시들과 계시들 같은 신비적 체험담들에 빠져들어가고 있으니, 바울로도 부 득이 자신이 체험한 현시들과 계시들을 자랑한다. 자신이 누구보다도 "신령한 말" 을 더 잘 했듯이(1코린 14,18), 신비스러운 현시들과 계시들도 더 많이 체험했노 라고 본의 아니게 자랑하게 된 것이다(1-10절). 적수들이 신비적 체험담을 떠벌이고, 바울로는 신비가가 아니라고 비방했기 때문 에, 바울로는 "자랑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무엇이든 자랑하는 것은 이로 울 게 없고, 더군다나 주님과 당사자간의 사사로운 사건인 신비적 체험을 자랑하 는 것은 전혀 이로울 게 없다. 그렇지만 바울로는 자랑을 강요당한다. "현시들"은 신비적 시각 체험들이요, "계시들"은 신비적 청각 현상들이다. 그러나 여기서 바울 로는 두 가지 낱말을 구별하지 않고 혼용한다. 바울로가 "눈물의 편지"(C서간 = 2코린 10ㅡ13장)를 57년쯤 썼다고 하자. 그렇다 면 2-4절의 무아지경 체험은 43년쯤 있었던 일이겠다. 왜 그는 자신의 체험을 이 야기하면서 마치 남의 이야기인 양 3인칭을 썼을까? (2.3.5절). 자아의식을 상실한 무아지경의 체험이었기 때문에 3인칭을 썼다는 설(랑), 실명을 감추고 가명을 사용 하는 묵시문학의 영향을 받았다는 설(귀트게만스) 등 여러 설들이 있으나, 아주 쉽 게 추론하자. 바울로는 정말 자랑하고 싶지 않은 체험을 만부득이 발설하다 보니, 마치 다른 사람의 이야기처럼 엮었을 것이다. 무아지경 · 무의식에서 체험한 일이라, 몸을 지니고 승천했는지, 몸을 땅에다 두 고 영만 승천했는지 알 길이 없다는 것이다(바울로의 인간학적 개념들에 관해선 7,1 주석 ① 참조). 근동의 옛사람들은 여러 층층 하늘을 상상했다(3.5.7.8.12층). 바울로 및 동시대 사람들은 흔히 하늘을 3층으로 상상했으니, 제3층은 제일 높은 하늘로서, 지존하 신 하느님이 현존하시는 곳이다. 여기 "낙원"은 의인들이 죽어서 또는 의인들이 종말에 부활하여 가는 곳이다(루카 23,43; 묵시 2,7). 바울로는 낙원(4절)과 제3천(2절)을 같은 곳으로 여겼다. 그는 제3천과 낙원에서, 인간의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말, 남들에게 발설해서는 안 되 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루카는 바울로가 자주 이런 체험을 한 신비가였던 것처럼 기록했다(사도 16,9; 18,9; 22,17-18; 23,11; 27,23). 신비적 체험은 되도록이면 혼자 간직할 일이지 동네방네 선전하고 선동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러니 무슨 현시, 무슨 계시를 받았답시고 떠벌이는 자들을 조심하 라. 십중팔구 혹세무민하는 사기꾼들이다. 게다가 죄와 벌, 죽음과 말세를 밑천삼 아 순박한 그리스도인들을 협박하는 신앙공갈배들이기 일쑤다. 이상은 200주년 기념 신약성서 주해서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도움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같은 내용의 질문이 많이 올려졌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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