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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경] 성지에서 만나는 성경 말씀: 할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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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3-01-01 조회수1,678 추천수0

[성지에서 만나는 성경 말씀] 할례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에서 제일 먼저 정복한 성읍 예리코(여호 6장) 근처에는 ‘길갈’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여호 5,2-9에 따르면 백성이 가나안에서 처음으로 할례를 받은 곳입니다. 아브라함 계약의 표징인 할례(창세 17,10-11)는 탄생 여드렛날 받아야 하지만(루카 2,21), 광야 체류 동안 할례를 받지 못한 백성이 그 예식을 한꺼번에 치른 것입니다. 그래서 길갈에서는 할례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게 됩니다.

 

아브람이 하느님과 맺은 계약의 표징으로 할례를 받은 건 아흔아홉 살 때의 일입니다(창세 17,1). 그때 그는 “아브라함”(5절)이라는 새 이름도 받습니다. 창세 12,2에서는 단순히 “큰 민족”이 되리라는 예고를 받았지만, 17,5에서는 “많은 민족들의 아버지”가 될 운명으로 의미가 확장됩니다. 당시 이름을 붙여주는 행위는 상대에 대한 지배권의 상징이었습니다. 아담이 세상의 피조물들에게 이름을 붙여준 데도 이런 의미가 담겨 있지요(창세 2,18-19). 이 같은 맥락에서 하느님께서는 아브람에게 새 이름을 주심으로써 그와 그의 후손에게 주군이 되실 것을 표명하신 셈입니다. 이 계약 공동체에 속한다는 표시로 받은 것이 바로 할례입니다.

 

그렇다고 할례가 이스라엘에만 존재하던 관습은 아닙니다. 이집트, 에돔, 암몬, 모압 등에서도 있었고, 헤로도토스의 『역사』(2,104)에 따르면, 페니키아인도 이집트의 영향으로 할례를 받았습니다. 예언자 예레미야가 “몸의 할례만 받은 자들”(예레 9,24)이라고 언급할 때, 그것은 유다와 더불어 이집트 · 에돔 · 암몬 · 모압을 지목한 것이었습니다. 다만 이들은 사춘기에 할례를 받았는데요, 그것이 혼인 생활을 준비하는 단계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반면, 필리스티아인(판관 14,3 등)과 메소포타미아인은 받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할례가 이스라엘 고유의 상징처럼 여겨진 것은 남왕국 유다가 멸망해 바빌론으로 유배(기원전 6세기)를 간 이후일 것입니다.

 

이렇게 할례는 이스라엘 백성됨의 상징이었기에, 이방인이 이스라엘에 합류하려면 반드시 할례를 받아야 했습니다(탈출 12,48). 그런데 레위 26,41-42에서는 육의 할례를 넘어 마음의 할례도 받아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육신의 포피만이 아니라 마음의 포피를 벗겨야 하느님 말씀에 귀 기울이고 가슴에 새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신명 30,6; 예레 6,10 등). 이는 그만큼 아브라함 계약의 힘만 믿고 백성이 그에 안주할 위험이 존재하였기 때문입니다. 세례자 요한도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는 이유만으로 죄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을 버리라고 경고하였지요(마태 3,9).

 

그러다 육의 할례가 완전히 의미를 잃게 된 건 신약 시대에 선민과 이방인의 경계가 허물어진 이후입니다. 이는 “속으로 유다인인 사람이 참유다인이고 (···) 성령으로 마음에 받는 할례가 참할례”(로마 2,29)라는 바오로 사도의 가르침에서 잘 드러납니다. 신약을 경전으로 보지 않는 유다인은 지금도 탄생 여드렛날에 할례를 받지만, 그리스도교에서는 성령으로 마음에 받는 할례를 통하여 구원의 백성에 속한다고 믿고 가르칩니다.

 

* 김명숙 소피아 - 예루살렘 히브리대학교 구약학과에서 공부하여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으로 일하며, 수도자 신학원 등에서 구약학을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는 <에제키엘서>와 <예레미야서 1-25장>, <예레미야서 26-52장>이 있다.

 

[2023년 1월 1일(가해)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세계 평화의 날) 의정부주보 2면, 김명숙 소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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