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롯의 두 딸과 유다의 며느리 타마르 | 카테고리 | 천주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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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정임 | 작성일2017-08-26 | 조회수2,399 | 추천수0 | 신고 |
모압족과 암몬족의 기원 창세기 19장 30부터 38절까지를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창세기 19장 30절 이하의 내용을 보면 소돔이 멸망하는 과정에서 롯의 부인이 뒤를 돌아보는 바람에 죽고 롯과 두 딸만 살아남았습니다. 그리하여 "롯은 초 아르를 떠나 산으로 올라가서 자기의 두 딸과 함께 살았다. 초아르에서 사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롯은 자기의 두 딸과 함께 굴속에서 살았다. 그때 맏딸이 작은딸에게 말하였다. '우리 아버지는 늙으셨고, 이 땅에는 세상의 풍습대로 우리에게 올 남자가 없구나. 자, 아버지에게 술을 드시게 하고 나서, 우리가 아버지와 함께 누워 그분에게서 자손을 얻자."(창세 19,30-32 참조) 그렇게 해서 모압족과 암몬족이 탄생하게 되었다는 기원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일반적으로 모압족과 암몬족의 기원이 정상적이지는 않다는 것, 곧 한 아버지 와 두 딸이 동침을 해서 그렇게 생겨난 민족이라는 그러한 기원을 통해서, 이스 라엘을 늘 괴롭혀 왔던 모암족과 암몬족의 기원을 약간 비하적으로 설명하는 대 목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구약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부분은 자손의 번성이었습니다. 것입니다. 아버지는 늙으셨고, 이 땅에는 세상의 풍습대로 우리에게 올 남자가 없고... 그렇게 되면 롯의 가문은 여기서 대가 끊어지게 되어 사라지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한 위기에서 두 딸은 자손의 번성을 위해 그러한 선택을 한 것에 대한 것도 한편으로 이해해 볼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그러니까 인륜적, 도덕적 그런 관점에서만 생각하지 않고, 롯의 두 딸은 어떻게든 하느님의 명령(?)인 자손을 많이 낳고 번성하여라 하신 그 말씀을 어떻게 수행하고 있는지, 그러한 방향에서도 우리는 생각해 볼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러니까 요즘의 윤리신학적 잣대로만 이해할 것이 아니라, 고대 사람들의 어떤 시 대적 배경 안에서도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것도 좋은 방향이 아닐까라고 생각해 봅니다. 롯의 두 딸처럼 사실 유다의 며느리(창세 38장 유다의 타마르 참조)도 시아 버지를 속여 몰래 자고 그럼으로써 유다 지파의 시조를 이루었고, 그 유다 지파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셨다는 점을 우리는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모님께서 처녀로 임신하게 되면 그 당시 돌에 맞아 죽을 그러한 위험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의 요청에 예라고 응답하셨던 어떤 그런 의미와 맞물려 생각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롯의 두 딸 역시도 어떤 면에 서는 자기 아버지와 동침해서 아이를 낳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사람들로부터 얼마 나 따가운 눈총과 질타를 받겠습니까?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롯의 두 딸은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에 대한 묵상도 우리 는 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인륜 도덕적인 어떤 법을 어기면 서까지 하느님의 명령에 충실하려고 했던 그 마음, 그러니까 롯의 두 딸이 선택했던 그러한 방법으로 후손을 낳았을 때 그들이 받을 어떤 고통 등이 있을 것을 알면서도 불구하고 그러한 선택을 하면서까지 하느님의 어떤 명령, 자손을 낳아 번성하라는 그 명령에 충실(?)하려 했다는 점을 우리는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모압족과 암몬족은 그렇게 해서 탄생한 이상한(?) 민족이야라는 것을 알려주는 어떤 말씀이라고만 묵상할 것이 아니고, 롯의 두 딸이 그러한 방법으로 아이를 낳아 후손 을 이어갈 때 두 딸이 세상 사람들로부터 받을 그러한 멸시 등을 감수하고까지 하느 님의 명령을 충실히 살려고 했을 거라는 그 마음까지도 우리는 볼 수 있어야 하지 않 을까 하는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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