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신약] 마르코 복음서 이야기4: 성경 이야기 세계 1 - 이상적 수신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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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23-01-29 | 조회수1,482 | 추천수0 | |
마르코 복음서 이야기 (4) 성경 이야기 세계 1 – 이상적 수신자
복음서에는 하나의 이야기(Story)로서 지닌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오늘은 이상적(혹은 함축적) 수신자에 관해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카라바조의 ‘토마스의 의심’(Incredulity of Saint Thomas, 1601-1602) 이란 작품을 함께 보겠습니다.
그림은 토마스 사도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이야기(요한 20,19-29)를 모티브로 하고 있습니다. 토마스는 스승님의 부활을 체험한 제자들에게 자신은 그분의 상처를 직접 만져보지 않고는 믿지 못하겠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림 속 토마스 사도는 예수님의 옆구리에 손가락을 넣으면서도 여전히 믿기지 않는 듯한 표정입니다. 이마에 깊게 패인 여러 갈래 주름과 허리에 손을 얹은 모습은 의심하는 토마스를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토마스 사도와 함께 있는 뒤편의 다른 두 제자의 입장도 토마스와 크게 달라 보이지 않습니다. 반면 예수님은 자상하고 인자한 얼굴로 한 손으로는 옷깃을 잡아 자신의 상처를 열어 보여주시고 다른 한 손으로는 제자의 손을 자신의 옆구리로 이끌면서 토마스의 불신을 해소시켜 주십니다.
그림에는 예수님과 제자들 외에 숨겨진 또 다른 시점이 있습니다. 바로 그림을 감상하는 관찰자 시점입니다. 카라바조는 감상자가 예수님의 자상함과 제자들의 불신을 동시에 들여다 볼 수 있는 각도로 그림을 구성했습니다. 작품을 바라보는 감상자 또한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부활하신 주님을 체험하고 믿도록 초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림에는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지만 화가가 기대한 감상자의 이미지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 이야기도 이와 동일합니다. 저자는 글을 접할 수신자(청중과 독자를 염두에 두고 복음서를 집필하였습니다. 마르코 복음서는 “하느님의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1,1)이라는 말로 시작하는데, 이 표현은 복음서 이야기를 접하는 수신자에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물 위를 걸으신 사건을 보도하던 저자가 “제자들은 빵의 기적을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마음이 완고해졌던 것이다”(6,52)라고 마무리한 구절 또한 수신자에게 전하는 말입니다. 이처럼 복음서에도 저자가 의도한 독자 상(像)이 있습니다. 이를 이상적(혹은 함축적) 수신자라고 합니다. 복음서를 접하는 모든 이(가령, 우리)가 이야기를 읽거나 들을 때 찾아야 할 이미지이며, 그 입장에서 이야기를 이해하도록 초대받고 있는 것입니다. 카라바조 그림에서 실제 감상자가 화가에 의해 ‘제자’로서 주님의 부활을 믿도록 초대받고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와 같은 이상적 수신자는 성경 이야기를 구성하는 본질적인 부분으로 복음서 메시지를 파악하는데 핵심적인 관점입니다.
[2023년 1월 29일(가해) 연중 제4주일(해외 원조 주일) 광주주보 숲정이 3면, 김영남 가브리엘 신부(광주가톨릭대학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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