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구약] 성경에 빠지다14-15: 사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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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23-03-13 | 조회수2,104 | 추천수0 | |
[리길재 기자의 성경에 빠지다] (14) 사울 1 하느님이 선택한 이스라엘의 첫째 임금
이스라엘의 첫째 임금은 사울입니다. 히브리어 사울은 우리말로 “요구된 사람”, “바쳐진 사람”이란 뜻입니다. 사울의 헬라어식 이름이 ‘바오로’입니다. 사울의 족보는 사무엘기 상ㆍ하권과 역대기 상권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습니다.(1사무 14,51; 1사무 31,2; 2사무 2,10; 1역대 8,33 참조) 정리하면 사울은 벤야민 지파 출신으로 키스의 아들입니다. 아내는 아히마아츠의 딸 아히노암이고요. 자녀는 8명입니다. 여섯 아들은 요나탄, 이스위, 말키수아, 아비나답, 에스바알, 이스 보셋이고, 두 딸은 메랍과 미칼입니다. 요나탄과 아비나답, 말키수아는 필리스티아인들과 벌인 길보아 산 전투에서 전사합니다. 이스 보셋은 사울이 죽은 후 아브네르에 의해 임금으로 추대되어 2년간 이스라엘을 다스렸습니다. 작은딸 미칼은 다윗의 아내가 되었다가 사울의 미움을 받아 갈림 출신 라이스의 아들 팔티에게 버려집니다.
사울의 족보가 불확실하고 복잡한 이유가 있습니다. 이 답을 풀기 위해선 먼저 구약 성경의 역사서들이 어떻게 분류되는지 알아야 합니다. 구약 성경 역사서는 ‘신명기계 역사서’와 ‘역대기계 역사서’ 그리고 ‘기타 역사서’로 나누어집니다. 여호수아기, 판관기, 사무엘기, 열왕기가 신명기계 역사서에 속합니다. 가장 먼저 구성된 이 신명기계 역사서는 남왕국 유다가 멸망한 후 쓰였습니다. 역대기, 에즈라기, 느헤미야기가 역대기 역사서로 분류됩니다. 이 책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빌론 유배에서 돌아온 후 집필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기타 역사서에는 룻기, 토빗기, 유딧기, 에스테르기, 마카베오기가 있습니다. 사울의 이야기가 나오는 사무엘기 상ㆍ하권과 역대기 상권의 저자들은 남왕국 유다의 역사가들이었습니다. 그들의 관심사는 유다 지파 출신의 다윗이었습니다. 그들은 유다 왕조의 태조인 다윗을 현양해야 했기에 사울에 대해선 별 관심이 없었고 호의적이지도 않았습니다. 당연히 사울의 족보도 다윗의 족보만큼 중요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울은 하느님으로부터 선택되어 이스라엘의 첫째 임금이 됩니다. 하느님의 명에 따라 사무엘은 사울의 머리에 기름을 붓고 입을 맞춘 다음 “주님께서 당신에게 기름을 부으시어, 그분의 소유인 이스라엘의 영도자로 세우셨소”(1사무 10,10)라고 선포합니다. 사무엘의 이 말처럼 사실 사울은 이스라엘의 ‘멜렉’(히브리어로 임금)이라기 보다 ‘나기드’(히브리어로 영도자)에 가까운 인물입니다. 나기드 곧 영도자는 구약 성경에서 사울에게 처음으로 주어진 호칭입니다. 일부 성경학자들은 나기드는 절대 군주라는 개념보다 ‘군 통수권자’라고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사울은 다윗이나 솔로몬과는 달리 이스라엘의 12지파 부족 구조를 중앙집권 체제로 바꾸려 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사울은 왕정제를 반대한 사무엘의 우려(1사무 12장 참조)와 달리 백성들에게 세금을 부과하지 않고, 징병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지원병만 참전시켰습니다. 또 관료제를 만들거나 후궁을 두지도 않았습니다. 사울은 하느님의 영을 받은 영도자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자기 권위를 내세웠을 뿐 고대의 절대 군주가 아니었습니다.
하느님의 영을 받은 사울은 암몬족을 물리치고 요르단 건너편에 있는 ‘야베스 길앗’이라는 도시를 구합니다. 그러자 이스라엘의 온 백성은 필리스티아인들의 억압에서 자신들을 구출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사울을 임금으로 추대합니다.(1사무 11장 참조) 사울이 30살에 이스라엘의 임금으로 뽑혀 활동한 시기는 기원전 1030년에서 기원전 1010년께라고 추정합니다. 사울은 판관이 활동하던 구질서가 무너지고 신체제인 왕정이 확고히 수립되기 전까지 과도기의 이스라엘을 통치한 인물입니다. 그는 구질서를 대표하는 마지막 판관 사무엘과 새롭게 떠오르는 다윗 사이에서 이스라엘의 첫째 임금이라는 운명적인 삶을 살아야 했던 비극의 영웅이었습니다.
사울은 이스라엘의 임금이 된 후 재임 기간 내내 끊임없이 전쟁합니다. 그의 임무는 나기드로서 ‘하느님의 전투를 치르는 것’이었습니다. 사울은 임금이 된 후 네 차례 큰 전투를 치릅니다.
첫 번째는 필리스티아인들과의 전투입니다. 이 전투는 예루살렘 근처에 있는 미크마스와 베텔, 게바에서 펼쳐졌습니다. 전투는 사울과 그의 장남 요나탄이 이끄는 부대가 게바의 필리스티아인의 전초 부대를 공격하면서 시작됐습니다. 산악 지대에서 게릴라전을 펼친 사울은 필리스티아인들을 아얄론까지 내쫓습니다.(1사무 13─14장)
두 번째 전투는 아말렉족과 펼쳤습니다. 성경은 이스라엘과 아말렉족이 적대 관계임을 여러 번 알려줍니다.(탈출 17,8-16; 민수 14,43-45; 신명 25,17-19; 판관 3,13 참조) 사울 임금은 예언자 사무엘의 지시에 따라 브에르 세바에서 멀지 않은 아말렉 성읍 텔 메소스와 하윌라에서 이집트 동쪽 수르까지 쳐서 아말렉 임금 아각을 생포하고, 엄청난 전리품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사울은 이 전투에서 하느님께 대한 그의 충성심이 시험대에 오르고 결국 하느님께서는 그를 버리십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23년 3월 12일, 리길재 기자]
[리길재 기자의 성경에 빠지다] (15) 사울 2 하느님께 내쳐져 비참한 최후를 맞은 사울 임금
- 이스라엘의 첫 번째 임금 사울이 하느님께 버림받고 비참한 최후를 맞은 것은 그가 하느님을 신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림은 질투심에 휩싸인 사울이 이스라엘 백성들로부터 칭송받고 있는 다윗을 창으로 죽이려 하고 있는 장면이다. 구글 챕쳐.
구약 시대 이스라엘 백성이 지켜야 할 법 가운데 ‘헤렘’이라는 율법이 있습니다. 헤렘은 이스라엘과 적대 관계에 있는 이민족과 싸워 이겼을 때 남녀노소는 물론 가축까지 전멸시켜야 한다는 법입니다. 또 노획물은 하느님께 속하는 것이므로 함부로 사적으로 취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헤렘을 어기는 것은 하느님을 거스르는 중죄였습니다. 현대인의 사고로는 반인권 야만의 학살 행위인 헤렘을 구약 이스라엘 백성이 율법으로 지킨 이유는 하느님께 대한 순수 신앙을 유지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가 차지하러 들어가려는 땅으로 너희를 데려가시고, 많은 민족, 곧 너희보다 수가 많고 강한 일곱 민족인 히타이트족, 기르가스족, 아모리족, 프리즈족, 히위족, 여부스족을 너희 앞에서 몰아내실 때, 그리고 주 너희 하느님께서 그들을 너희에게 넘겨주셔서 너희가 그들을 쳐부수게 될 때, 너희는 그들을 반드시 전멸시켜야 한다. 너희는 그들과 계약을 맺어서도, 그들을 불쌍히 여겨서도 안 된다. 너희는 또한 그들과 혼인을 해서는 안 된다. 너희 딸을 그들의 아들에게 주지도 말고, 너희 아들에게 주려고 그들의 딸을 맞아들여서도 안 된다. 그런 짓은 너희의 아들이 나를 따르지 않고 돌아서서 다른 신들을 섬기게 만들 것이다. 그러면 주님의 진노가 너희를 거슬러 타올라 주님께서 너희를 곧바로 멸망시키실 것이다. 오히려 너희는 그들에게 이렇게 해야 한다. 그들의 제단들을 허물어뜨리고 그들의 기념 기둥들을 부수며, 그들의 아세라 목상들을 찍어 버리고 그들의 우상들을 불에 태워 버려야 한다. 이는 너희가 주 너희 하느님의 거룩한 백성이며,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를 선택하시어 땅 위에 있는 모든 민족들 가운데에서 너희를 당신 소유의 백성으로 삼으셨기 때문이다.”(신명 7,1-6)
이스라엘 영도자 사울이 하느님께 내쳐진 이유도 헤렘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울은 왕이 된 후 두 번째로 치른 아말렉족과의 전투에서 큰 승리를 거둡니다. 그는 아말렉 임금 아각을 생포하고 가축과 재물을 노획했습니다. 하지만 사울은 헤렘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사울과 그의 군사들은 아각뿐 아니라, 양과 소와 기름진 짐승들 가운데에서 가장 좋은 것들과 새끼 양들, 그 밖에 좋은 것들을 모두 아깝게 여겨 완전히 없애 버리지 않고, 쓸모없고 값없는 것들만 없애 버렸습니다.(1사무 15,9)
사울의 이 행위에 예언자 사무엘은 크게 노합니다. 사무엘은 사울이 하느님의 말씀을 배척했기 때문에 주님께서도 그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인정하지 않는다고 소리치면서 아말렉 임금 아각을 난도질해 죽여버립니다.(1사무 15, 23-35 참조) 그리고 사무엘은 죽는 날까지 사울을 만나지 않았습니다. 예언자가 떠난 것은 하느님께서 떠난 것과 마찬가지였습니다. 이제 사울은 하느님께 버림받은 인간, 질투의 자아에 갇혀 방황하는 인간이 되어 버렸습니다.
사울은 세 번째로 엘라 골짜기에서 필리스타인들과 전투를 치릅니다. 다윗과 골리앗이 이 전투에 참전합니다. 18세 청년이던 다윗은 사무엘로부터 비밀리에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았습니다. 사무엘기 상권 마지막 부분(18─27장)은 다윗과 사울의 대립을 집중 조명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골리앗을 죽인 후 이스라엘의 미래 왕으로 등장합니다. 다윗은 가는 곳마다 성공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여인들은 “사울은 수천을 치시고 다윗은 수만을 치셨다네”(1사무 18,7)라며 다윗을 찬양했습니다. 이것은 사울에게 참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급기야 사울은 다윗을 죽이려 했고, 다윗은 사울을 피해 적인 필리스타인 진영으로 망명했습니다.
사울의 네 번째 마지막 전투는 필리스타인 군대와 벌인 길보아 산 전투입니다. 길보아 산은 오늘날 제린(zerin)으로 불리는 이즈르엘 근처에 있습니다. 이 전투에서 사울의 세 아들 요나탄과 아비나답, 말키수아가 전사합니다. 그리고 화살을 맞고 심하게 다친 사울은 자기 칼을 세우고 그 위에 엎어져 자결합니다. 왕을 잃은 이스라엘 군대는 크게 패했습니다. 필리스타인인들은 사울의 머리를 자르고 시신을 벳 산 성벽에 매달아 승리를 자축했습니다.(1사무 31장 참조)
사울이 하느님께 버림받고 비참한 최후를 맞은 것은 순전히 그의 태도 때문이었습니다. 성경학자들은 “사울은 하느님을 신뢰할 줄도, 하느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계약 관계 안에서 스스로의 역할을 이해할 줄도 몰랐다”고 평합니다. ‘불순종’과 ‘자만’이라는 근본적인 죄가 그를 파멸로 이끌었다고 진단합니다. 따라서 성경학자들은 “하느님께서 변덕스러운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신뢰하지 못한 사울의 행위가 만들어 낸 결과”라고 결론짓습니다.(「성경 역사 지도」 89쪽 참조) [가톨릭평화신문, 2023년 3월 19일, 리길재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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